메뉴 건너뛰기

close

"유엔은 전쟁을 없애기 위해 적극 노력하라!"(U.N. TAKE ACTION FOR NO MORE WAR!) "한반도는 하나 되기 원한다"(TWO KOREAS WANT TO BE ONE!)

지난 8월 28일, 점심시간에 맞춰 유엔 건너편 건널목 앞에서 이런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젊은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기 팔 생각만 하는 나라가 우방이라고?"

유엔 앞 길거리 토론.
 유엔 앞 길거리 토론.
ⓒ 고은광순

관련사진보기


"유엔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유엔이 남북 분단을 결정한 것이 67년이나 됐다. 한국은 휴전협정을 했을 뿐이며 종전협정을 맺지 않았으니 아직 전시 중이다. 그러니 분단된 남북관계는 계속 불안정하고 군사적 경쟁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휴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종전협정(PEACE TREATY)에 사인을 할 자격이 없다. 미국이 종전협정에 사인을 해야 하는데 미국은 사인을 하지 않고 있다. 종전협정을 한 뒤 미군은 한국에서 나가야 한다. 그래야 남북은 제대로 된 소통을 차근차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았나?"
"그랬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이 최고의 우방이라고 배웠다. 미국 덕분에 우리가 잘살게 됐다고 교육받았다. 미국 때문에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됐다고 배웠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우방이라면 70년간이나 분단 상태에 놔두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어떻게 같은 민족이 70년 동안이나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할 수 있나? 분단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국방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엄청나게 무기를 사들이고 있다. 어떻게 평화협정에 사인도 안 해주면서 무기 팔아먹을 생각만 하는 나라를 '우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
"물론 많지 않다. 18년간 헌법을 수차례 고쳐가며 군사독재를 했던 자의 딸이 현재의 대통령이다. 일제 식민지하에 친일을 했던 자들과 그 후예가 해방 후 반공을 앞세우고 여전히 친미 일변도의 남북 분단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니 남한에는 사상의 자유가 있을 수 없다. 북한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면 공산주의자가 되고 외국 시민권을 가졌어도 추방당하고 있다. 사상의 자유가 용납되지 않는 나라, 상상할 수 있나?"

그는 "그래도 미국은 많은 돈을 주한미군에 투입한다"며 꿍얼거리면서 자전거에 올랐다.

미국이 전쟁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뉴욕 가톨릭 워커 말사(MARTHA)와 함께한 피켓시위.
 뉴욕 가톨릭 워커 말사(MARTHA)와 함께한 피켓시위.
ⓒ 고은광순

관련사진보기


워싱턴과 뉴욕에서 내 눈을 잡아끄는 건 '홈리스'(노숙인)들이었다. 흑인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의외로 젊은 백인 청년들도 있었다. 미국이여, 세상의 경찰 노릇하느라 사방팔방 미군을 파견하고 무기를 배치하면서 세계 제1의 국가로 우뚝 서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 나라에서 길거리를 헤매는 수많은 홈리스부터 어찌 해보라. 당신들 나라 시위대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보라. "MONEY FOR JOB, MONEY FOR HOUSE, MONEY FOR EDUCATION. NOT FOR WAR!"(전쟁 말고 일자리를 위해, 주거지를 위해, 교육을 위해 투자하라!) "Taxes for Peace Not War!"(세금 걷어 평화를 위해 쓰고 전쟁에는 쓰지 마라!"

상점에 들른 김에 화장실에 가려고 했더니 주인은 화장실이 없다고 쌀쌀맞게 고개를 흔든다. 동전 쓸 일이 많아 동전을 바꾸려했더니 레게머리로 멋을 낸 점원은 물건을 사야만 동전을 바꿔줄 수 있단다. 물건을 사고 나니 거스름돈 외에는 동전을 바꿔줄 수 없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캠핑장에서 떠날 때였다. 체크아웃 시각이 지났다며 10달러를 더 내란다. 인심이 사납기 그지없다. 원리원칙을 철저히 따지는 그들 사회가 익숙해지면 좋은 점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총기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도 총기 소지 불허 청원이 통과 안 되는 이유는 총기 회사의 로비 때문이고, 축산회사가 외국에 질 나쁜 고기를 판매할 수 있는 것은 축산회사의 로비 때문일 테다. 세계 10대 무기회사 중 7개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 전쟁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전쟁에 몰입하는 건 전쟁을 통해 얻는 막대한 이익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 아닌가?

작은 것에는 원칙을 준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큰 욕심 앞에선 물불 가리지 않는 것을 보면 딱하기 그지없다. 선진무기를 통한 전쟁에서 1등을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주변국의 삶의 질이 높아지도록 도와야 1등 국가가 되는 것 아닐까.

'그럼 끔찍한 북한 체제에서 살 건가'라는 질문

'분단 70년, 미국은 한반도 통일에 걸림돌이 되었다'라고 적힌 피켓구호를 보고 발끈하는 다혈질 미국인을 만나기도 했다. 자기네가 한국의 경제성장을 도왔고 지금도 북한의 위협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논리다. 북한에는 끔찍한 독재자가 있다는데 어쩔 거냐고 묻는다. 

38선이 강대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최선의 합의안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 국민들이 많지만, 사실 38선은 1945년 8월 11일 미국 육군성 작전국 정책과 찬스 본스틸 3세(CHARLES H. BONSTEEL Ⅲ) 대령과 딘 러스크(DEAN RUSK) 대령이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가져다 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일제의 무장해제를 위해 미군과 소련군과의 작전 범위를 잠정적으로 나눈 선이었다.

당시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던 소련은 쉽게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미국의 대령 둘이 백악관 근처에서 지도 위에 마음대로 그었던 선은 지금까지 70년 동안이나 한민족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선이 돼 버렸다.

미국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도왔다거나 지금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있는데 북한의 끔찍한 지배자 밑으로 들어가겠느냐는 말은 국내 분단 마피아들도 주야장천 하는 이야기들이다.

나는 그 같은 질문에 "No Problem!"(문제없다!)이라고 답했다. 통일 한반도의 주인은 남이든 북이든 소수의 정치권력자가 될 수 없다. 통일 이후 한반도의 주인은 북과 남의 평범한 국민이 될 것이다.

문제는 항상 멍청하고 탐욕스러운 작자들이 만들어 왔다. 조작하고 왜곡하고 묵살해왔다. 그러나 남북에 촛불을 들고 피켓을 들 국민들이 있다면 대체 뭐가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촛불을 들고 피켓을 든 국민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의 많은 나라들처럼 한반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아주 건강한 새로운 나라로 거듭날 것이다.

그들을 공권력으로 밀어붙였던 자들의 대국민 협박은 각각 남침 혹은 북침이었을 터인데 외세가 사라지고 남침과 북침의 염려가 사라진 그곳에서 남과 북의 주민들은 각각 역사의 주인공이 돼 머리를 맞대고 공동의 미래를 재미있게 생산해내지 않겠는가. 그곳에 홈리스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백악관 앞 이집트 청년들 "10년 뒤엔 우리가..."

그때 그때 피켓을 제작하다 보니 '피켓 장터'가 됐다.
 그때 그때 피켓을 제작하다 보니 '피켓 장터'가 됐다.
ⓒ 고은광순

관련사진보기


미국은 한국에게 우방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가? 세계 최강국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가? 그렇다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통해서가 아니라 분단의 골을 메워 남북통일이 제대로 안착되도록 돕기 바란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하지 않던가? 한미합동군사훈련으로 계속 분단의 골을 파는 것은 세계 제1국가가 할 짓이 아니다.

70년이나 군인을 주둔시키면서 한 나라의 분단이 70년이 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소치다. 한 겨레 8000만 인구를 둘로 쪼개놓고 그렇게 무기나 사라고 한다면 언제 강국이 되겠나.

백악관 앞에 있으면 정말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오늘(9월 3일)은 백악관 19차 시위. 처음 시위를 시작할 때는 피켓을 들고 관광객들과 긴장된 시선을 주고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는 경찰들과도 농을 주고받을 정도로 배짱이 생겼다.

관광객과의 대화를 통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그때그때 추가해 피켓을 새롭게 만들었더니 두 손으로 관리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됐다. 아예 바닥에 늘어놓고 '피켓 장터'를 만들었다.

진작 이렇게 할 것을…. 관광객들은 오히려 더욱 자연스럽게 바닥에 늘어놓은 문구들을 차근차근 읽는다. 정말 잘 생긴 청년들 무리가 가까이 다가와 차근차근 읽더니 피켓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당근이지. 감사할 따름.

이집트에서 법학이며 무슨 소통학을 공부한다는 청년들은 '뿌리가 같은 하나의 민족이 이토록 오랫동안 분단상태에 있는 것은 정치를 잘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늘어놓은 모든 피켓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전쟁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무기 산업이 이토록 번성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그들에게 "당신들 같은 젊은이들이 많아져 미래의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라고 했더니 자기들이 이곳 백악관으로 온 게 바로 그 이유 때문이란다. 10년쯤 뒤에 자기들이 정책 결정권자가 되면 이런 문제들을 다 바로잡을 생각이란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지구위의 생명들을 꽃 피우기 위해 우주는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물과 산소와 생명들이 존재하는 지구는 우주 속에서 무척 귀한 공간인데 그곳에 폭탄을 떨어뜨린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젊은 사자들이여, 한반도에서든 오대양 육대주 어디에서든 씩씩하게 자라다오. 탐욕스러운 무기장사꾼들이 더러운 정치가들과 손잡고 지구의 생명을 함부로 취급하지 못하도록.

백악관 앞에서 이집트 청년들과 함께.
 백악관 앞에서 이집트 청년들과 함께.
ⓒ 고은광순

관련사진보기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고은광순, #평화어머니, #백악관, #피켓장터, #38선
댓글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