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25일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 2일 오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하고 있다.

개봉 25일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 2일 오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하고 있다. ⓒ 권우성


"기업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고, 수사 기관은 제대로 수사하고, 그랬으면 될 일인데, 그걸 다들 제대로 안 해서 두 시간짜리 썰을 풀 수 있는 영화가 된 거다. 자기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안 좋은 결과가 날 걸 알면서도 보다 큰 권력을 원하면서 사건이 난 거지. 그런 분위기에 (내가) 약간 화가 나 있었던 거 같다. <베테랑>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이야기를 한 게 아니다. 내가 갖고 있던 분노와 화에 솔직하게 반응했고, 그 결과가 이 영화가 된 거다.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은 것은) 나와 같은 분노와 좌절을 가진 분들이 그만큼 많았던 거 같다."

류승완 감독이 '천만 감독'이 됐다. 그는 이 수식어를 안겨준 영화 <베테랑>의 제작 배경에 대해, 그리고 흥행 요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는 천만 돌파를 두고 "정말 소 뒷걸음질 하다 개구리 잡은 격"이라고 겸손을 덧붙였지만, "천만이라는 숫자보다 더 와 닿는 건 영화를 보신 분들의 다양한 반응들이다, 그걸 토대로 다음 영화를 정신 차리고 만들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확실히 관객의 열띤 반응은 감독에게 큰 자극제가 된다.

류 감독이 지난 2일 <오마이뉴스>가 만드는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을 찾았다. 그는 "(현실에서 영화 속 형사인) 서도철 같은 베테랑들이 많아지길 바란다"면서도 "하지만 모두가 서도철이 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류 감독이 직접 말하는 <베테랑>과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베테랑>은 상식에 대한 이야기이자 선택에 대한 이야기"

 영화 <베테랑>의 황정민과 유아인.

영화 <베테랑>의 황정민과 유아인. ⓒ CJ엔터테인먼트


타락한 재벌3세와 그들을 징벌하려 고군분투하는 형사들 이야기. 단순한 구성인데 가슴을 뜨겁게 한다. 가상 설정이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이 상당 부분 반영된 느낌이다. 그래서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

류승완 감독은 "많은 분들이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 분)를 내세워서 경제 권력을 비판하는 걸로 보시는데 표면적으론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베테랑>의 기본 골격에 대해 "상식에 반응하고 그걸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위에서 서술한 "기업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고, 수사 기관은 제대로 수사하고" 하는 그 상식 말이다. 경제 권력 비판이라고 해서 무슨 거창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베테랑>은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재벌 3세 조태오는 애초에 상식과 도덕 교육에서 벗어난 괴물이라고 치자. 그를 보필하는 최상무(유해진 분)나 여타 기업인들은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적어도 알고 있다. 힘없는 노동자 배 기사(정웅인 분)가 당한 사고에 의심을 품은 서도철 형사(황정민 분) 역시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자신의 선택을 끝없이 합리화 하며 권력을 잡아왔고, 후자는 그 상식에 솔직하게 반응해왔다는 점이다. 류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자기 합리화의 결과가 바로 <부당거래>(권력층의 부패를 다룬 류승완 감독의 전작)이고, 처절하게 잘못에 저항한 결과가 <베테랑> 같다. 어쩌면 <베테랑>은 우리 세대보단 그 이후 세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영화 일을 해야겠다는 자의식이 들기 훨씬 전부터 보던 게 성룡의 영화들, 그리고 존 웨인이 나오던 서부극이었다. '여자와 아이는 건들지 말라!' 이러잖나. 물론 (서부극에서) 인디언을 죽이는 설정이 나쁜 일인지는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걸 별개로 하고, 절대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의 중요함을 영화를 통해 배운 거다. <베테랑>이 어떤 깊은 철학을 내포한 건 아니다. 딱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도덕이다. 되게 단순한 건데 거기에 진리가 담겨있다.

이 영화를 10대 여자 관객들이 그렇게 반복 관람한다더라. 조태오가 섹시하다며 환호하는데 그들 역시 조태오의 행위는 나쁘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오히려 위험한 건 일부 성인 남성들의 반응이다. '남자라면 저렇게 살아봐야지!'라던가, '(영화 속 배 기사처럼) 몇 대 맞고 큰 돈 받으면 좋은 거 아냐?'라는."

영화 속 명대사의 근원

 개봉 25일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 2일 오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하고 있다.

개봉 25일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 2일 오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하고 있다. ⓒ 권우성


'베테랑'이라는 영화 제목은 애초 류 감독이 좋아하는 단어다. 그의 전작 <부당거래> OST에도 '베테랑'이라는 노래 제목이 있을 정도다. 여기에 평소 그가 즐겨봤던 스릴러 작가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동명 소설도 있단다. 그가 평소 얼마나 애착을 가져왔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류 감독의 작품은 생생한 대사들이 특징이다. <베테랑>의 명대사 중 하나인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가 없냐?"는 배우 강수연이 평소에 자주 쓰던 말을 차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개봉 이후 영화인들 사이에서 오갔다. 사실일까? 이 질문에 류 감독은 크게 웃으며 인정했다.

"어떤 행사 뒤풀이 때 지금은 부산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이신 강수연 선배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야, 마셔!' 그 말을 했다. 알고 보니 선배의 어록이 있더라. '야, 우리가 술이 없지 간이 없냐?' 등(웃음).

저 여장부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봤다. 한국영화의 슬픈 역사에서 온 거 같다. 내가 처음 영화판에 왔던 1990년대만 해도 일하러 영화사에 가면 꼭 밥을 사줬다. 임금을 제대로 못주니까 밥이라도 먹인 거지. 영화제작사 시네2000의 이춘연 대표님만 해도 당시 택시비를 못 주다보니 자기 차로 직원들을 바래다주곤 하셨다. 한국 영화 제작비가 10억을 넘긴 게 얼마 안된다. 그때만 해도 전체 예산이 3억 원 정도였다. 강수연 선배가 1980년대부터 대스타인데, 스태프들이 현장에 '쭈구리'처럼 있는 게 얼마나 짠했겠나. 그 분의 정확한 말은 '야,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였다. 그 말이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영화 <베를린>에도 그와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표종성(하정우 분)이 아내에게 '가난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하는데, 이건 2000년 초반 명동성당 앞 어느 집회에서 들은 거다. 한 시민이 딸하고 나와서 발언 하는데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대국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존심 있는 나라 될 수는 있다고 믿는다. 당당한 우리나라를 딸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진실함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있더라."

이렇게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이 내뱉는 명대사들은 그의 지인이거나 가족, 심지어 자기 자신의 어투를 살린 결과물이다.

"어차피 우린 재벌은 못 된다, 좀 다르게 행복하게 살자!"

 개봉 25일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 2일 오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하고 있다.

개봉 25일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 2일 오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하고 있다. ⓒ 권우성


<베테랑>은 당당한 나라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픈 어른들의 이야기로도 정의할 수 있다. 특히 재벌 권력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은 경제에 함몰된 한국 사회의 기형적 단면을 상징한다. 조태오의 행동과 그 주변 인물 묘사에서 관객들은 실제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이른 바 'SK 맷값 폭행', '한화 재벌가의 보복 폭행' 등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취재하면서 연상될 수 있는 여러 사건을 끌어다 쓴 거다. 특정 인물을 인신공격 하고 싶지 않았고, 가급적 많은 소스를 끌어온 거다. 누구라고 특정할 순 없지만, 여기에 갖다놔도 저기에 갖다놔도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게 구성한 거다.

한 10년 전인가. 카드 광고인데 '여러분,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지 않은가. 나는 그 말이 되게 무서웠다.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어야 부자일까? 월 천 만원 벌면 부자라고 법으로 정해보든지!(웃음) 월 천 받으면 부자니까 짜증도 부리지 말고 자동차 경적도 울리지 말고 그래야 할 듯. 농담이고, 하여튼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좋지 않은데도 행복하게 사는 국가들을 보지 않은가. 사람들에게 경제가 최고라고 하고 달리게 하면 끝이 없다. 국민 모두가 재벌 기업 회장이 되면 과연 행복할까? 집안 싸움만 더 나지."

질문의 초점을 바꿨다. 영화 <베테랑>을 통해 류승완이 바라본 행복이 조건은 무엇일까? 그는 "자존감"이라고 답했다. "어른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며 류승완 감독이 묵직하게 말했다.

"행복의 기본은 개인의 자존감 회복 같다. 기성세대가 20대, 10대의 자존감 꺾고 있는 게 문제다. 대기업 못 들어가면, 혹은 월 몇 백 만원 못 받으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주입하고 있다. 모두가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걸 다 아는데 말이다. 결국 '루저'(패배자)를 무한 양산하는 사회시스템이다. 그래서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대사를 넣은 거다.

서도철 같은 베테랑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하지만 모두가 서도철이 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저 권력을 잘 지켜만 봐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그래도 적실 수 있고 바위를 괴롭힐 수 있잖나. 그게 더 나아가면 권력을 두렵게 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행복해야 한다. 다들 재벌가 3세 보다 절대 못난 게 아니지 않나. 어차피 우린 재벌은 못 된다(웃음). 좀 다르게 행복하게 살자!"

* 인터뷰 전체 일문일답은 팟캐스트 방송 <장윤선의 팟짱-이선필·이정수의 대중문화 읽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는 5일 새벽 0시5분에 업데이트됩니다.

 개봉 25일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

개봉 25일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 ⓒ 권우성



○ 편집ㅣ이병한 기자


베테랑 류승완 유아인 황정민 부당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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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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