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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살다보면 쉽게 와닿지 않는 수치들이 종종 있다. 이명박 정권이 날려 먹은 자원외교 수조 원의 손실액이 그렇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뿌렸다는 몇억 원씩의 로비자금도 서민들에게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다. 현실적이지 않으니 허탈감이나 분노조차도 울림은 크지 않다. 그냥 '억' 소리만 나올 뿐이다.

수치의 현실 괴리는 또 있다. 2014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6000달러 정도라는 통계가 그렇다. 환율을 1달러 당 1000원으로 계산하더라도 약 2600만 원. 4인 가족이면 1억 400만 원 정도가 가구당 평균 소득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노동자, 비정규직, 자영업자, 농민 등 서민의 굴레를 쓰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억' 소리 나는 수치일 뿐이다. 가구당 1억 원이 넘는 소득을 평균의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었다면 가계부채 1천조 원의 저주는 아예 생겨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5%의 부자들이 소득의 30%를 독점하고 있다. 10%의 부자들에게 자산과 소득원의 대부분이 몰려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구소장이 2012년을 기준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득 순위상 중간 계층의 총급여는 1910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평균 가족 구성원 3.2명. 돈버는 구성원 1.8명을 감안하면 국민 소득은 500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2014년 1인당 국민소득 2만 6000달러는 부자들이 수치의 허구를 나눠준 결과다. 평균이 될 수 없는 국민소득 2만 6000달러. 3만 달러가 된다고 해도 달라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수치의 허구

지난 8월 24일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24일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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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의 노조 때리기가 도를 넘고 있다.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임금 피크제를 강요하고 손쉬운 해고에 팔뚝을 걷어붙인 모양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여기에서 한발 더나가,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넘어설 수 없는 걸림돌로 노조를 지목했다. '불법 파업' '쇠파이프' '눈을 찔러 실명'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발언은 노조에 대한 적대감을 여지없이 담았다. 노동 개혁이 아니라, 차제에 노조를 와해시켜 버리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여당 대표의 말이라 하기에는 근거도 논리도 없다. 박근혜 정부 출범 전부터 남 탓하는 버릇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전직 대통령을 끌어 들이고, 통합진보당을 와해시키고 전교조에 과녁을 겨누며, 끊임없이 공분의 대상을 생산해 지지율을 끌어 올리며 정치 생명을 유지했던 새누리당. 성장의 걸림돌로 민주노총을 지목한 저의가 재벌에게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망친 경제에 대한 비난을 피해 보자는 수순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보수 언론 경제지가 새누리당을 거들어 노조 때리기로 전면에 나선다면 다가올 총선 구도에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다.

허나, 따져보자. 국민소득 2만 6000불 시대. 국민들이 1천조의 가계 부채를 머리에 이고 사는 이유를 말이다. 환율을 '조작'해서 기업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서민들을 물가고에 몰아 넣었던 건 2009년 이명박 정권의 일이다. 비정규직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저임금 구조를 고착시킨 것 또한 이명박 정권에서 행해진 일이다. 부동산 시장을 자극해 서민들의 주거환경을 혼란시킨 건 박근혜 정권의 일이다. 경제 민주화 약속을 뒤집어 버리고, 재벌 위주 경제 성장론의 첨병 역할을 자인한 것도 박근혜 정권이다.

내수 시장은 이렇게 무너졌다. 값싼 노동력을 만드는 정책은 기업에게 쌍수로 환영받는 일이었지만, 서민들은 생활고에 허덕였고 비례해서 대출 규모는 날로 커졌다. 씀씀이를 줄여야 하니 시장이 어려워지고 자영업자들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수출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수출이 고공행진을 한 건 고환율과 정부의 퍼주기식 지원에 기댄 결과였지, 경쟁력이 아니었다. 글로벌 경제 위기에서 수출조차 고역을 겪는 건 경쟁력 강화보다는 저임금과 고환율에 기대왔기 때문이다.

내수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고,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주문하지 못한 건 누가 뭐래도 '이명박근혜' 정권의 잘못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넘어가지 못한 책임도 당연히 이명박근혜 정권과 여당으로 군림해온 새누리당의 책임이다. 그러나 책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허울뿐인 1인당 국민소득 2만 6000달러(2014년 기준)조차도 상위 10%가 독식하고, 대부분의 서민들은 국민소득 500만원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한 책임은 그 무엇보다 크다.

방향이 틀렸다, 경제 회생은 오히려 멀어질 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김무성 대표는 "새누리당은 개혁적 보수의 길을 걷겠다"며 "더불어 함께 사는 ‘포용적 보수’,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먼저 챙기는 ‘서민적 보수’, 부정부패를 멀리하는 ‘도덕적 보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책임지는 보수’의 길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 김무성, 교섭단체 대표연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김무성 대표는 "새누리당은 개혁적 보수의 길을 걷겠다"며 "더불어 함께 사는 ‘포용적 보수’,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먼저 챙기는 ‘서민적 보수’, 부정부패를 멀리하는 ‘도덕적 보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책임지는 보수’의 길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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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노동 개혁을 주장하며 청년 일자리 창출과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 노동시장 안정성을 목표로 제시하고 연공서열제, 호봉승급제 등 임금체계 불공정성을 직무와 성과 중심의 선진체계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개혁이나 선진체계라는 미사여구도 뜯어보면 기업 이익을 보호하고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하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해고를 쉽게하고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는 노동 개혁 아래서 서민의 생활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삶으로 모두가 하향평준화 될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의 경제 성장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59번이나 '경제'라는 단어를 언급했고, 여당은 야당을 향해 말끝마다 경제 살리기에 발목 잡지 말라고 한다. 모양만 보면 정부와 여당은 어느 정권보다 경제 회생을 위해 헌신적이다. 그러나 성적표는 초라하다. 2분기 국민소득이 4년 반만에 감소했고 경제 관련 각종 지표들이 연일 뒷걸음치고 있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걸음을 빨리 할수록 목표에서 멀어지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이 이와 다르지 않다. 저임금 구조, 손쉬운 해고를 통해 국민소득 3만 달러에 도달한다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혁은 경제 회생과는 정반대의 길이다. 그렇게 해서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이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설령 국민 소득 3만 달러가 된다고 해도 그것은 빈부격차의 간극을 나타내는 수치일 뿐 노동자, 서민들에게는 결코 축복이 아니다.

경제에 올인해야 한다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그러나 방향이 틀렸다. 지금까지 온 길은, 그리고 가고자 하는 길, 국민들에게 가자고 말하는 길은, 경제 회생과 정반대의 길이다. 중산층 70% 육성. 국민 소득 4만 달러 초석을 놓겠다는 것, 대통령의 공약이다. 그러나 저임금 하향평준화를 지향하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혁과 대선 공약은 절대 양립할 수 없다. 둘 중 하나는 거짓이다. 아니면 둘 다 국민들을 속이는 궤변과 사탕 발림이거나.


태그:#김무성, #노동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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