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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분기 기준 30대 재벌의 710조 원에 달하는 사내유보금을 노동자·서민을 위해 써야 한다는 주장이 사회적으로 힘을 얻고 있다. 이에 재벌들은 그러한 주장은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며 반론해왔다.

그리고 지난 2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까지 앞장서서 재벌개혁을 외치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끈했다. 전경련은 노동계의 재벌개혁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노동시장개혁이 먼저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들은 한국의 사내유보금이 외국에 비해 적은 편이며, 재벌 지배구조 등도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사내유보금이라는 개념이 아직 생소한 우리는 재벌들의 주장에 솔깃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반론이 사실인지 파헤쳐보자.

사내유보금은 현금이 아니다?

"사내유보금의 대부분은 이미 투자되어 있다. 현금성자산의 비중은 1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사내유보금은 쌓여 있는 현금이 아니다. 이를 오해해서 과세나 환수의 대상으로 삼지 마라."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설령 저들의 주장대로 사내유보금 중 현금성자산이 15%에 지나지 않는다 쳐도 그것은 '차입금 상환/생산설비 운영을 위한 예비적/거래적 현금보유 목적'의 쌈짓돈 수준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전경련 홍성일 금융조세팀장의 계산에 따르면, 사내유보금은 2010년 말 기준 비금융상장사 591개사만을 놓고 따져도 88조4천억 원이나 되는 막대한 규모의 돈이다. 그러나 더 큰 오류는 따로 있다. 전경련 등이 주장하는 15% 비율은 현금성자산에 마땅히 포함되어야 할 항목들을 빼버리고 의도적으로 축소시켜 잡은 수치로, 다른 계산에 의하면 15%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가 나온다.

민주노총 오민규 미조직비정규전략본부 실장에 의하면, 2014년 기준 삼성전자의 사내유보금 대비 '현금에 가까운 자산' 비중은 158조 중 61조로 무려 약 39%에 달한다. 금융자산과 매출채권 등 사실상 현금과 다르지 않게 규정해야 하는 항목들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10대 재벌 산하 비금융 상장기업들의 자산구조
▲ 10대 재벌 산하 비금융 상장기업들의 자산구조 10대 재벌 산하 비금융 상장기업들의 자산구조
ⓒ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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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재벌 전체로 확대시켜 보더라도 현금성자산은 무려 260조에 달한다(2014년 기준 10대 재벌 97개 상장사 중에서 금융 계열사를 제외한 87개 기업들의 감사보고서에서 확인). 특히 최근 자산 변화 추이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2012년에서 2014년 사이 10대 재벌의 투자 부분은 21조, 금융자산 부분은 36조, 종속기업 등 주식 부분에 12조 원이 늘어났다.

이는 사내유보금이 70조 증가한 수치와 비슷한 수치인데, '대부분이 투자된다'는 전경련의 주장과 달리 단지 30%만이 실제로 투자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게다가 굳게 믿고 있는 '투자' 부분도 과세나 환수를 피해갈 수 있는 정당성이 있는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재벌이 가진 부동산 자산은 실제로 검토해보면 최근 현대차가 10조를 풀어 사들인 한전 부지처럼 긴요한 생산과는 상관없는 투기목적이 상당 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백한 진실을 숨기기 위해 재벌들은 한편으로는 회계학을 왜곡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회계학을 이용한다. 앞에서 봤듯이, 사실상 현금에 가까워 사회적 활용의 여지가 큰 금융자산 부분을 현금성자산 계산에서 빼버린다던가, 재벌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극악한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인 종속기업/관계기업 지분 부분을 마치 실물 투자인 것처럼 위장한다던가 하는 수법이다.

투기목적의 부동산처럼 유형자산/무형자산 중에서도 분명히 실제 생산과는 관계없는 부분이 있음에도 이를 세밀히 구분하지 않고 마치 유형자산/무형자산에 속하면 무조건 실물 투자로 규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더 큰 힘은 회계학의 왜곡이 아니라 회계학에서 온다.

'재무상태표, 대변, 현금성자산, 당좌자산, 재고자산, 투자자산, 고정자산, 유동부채, 비유동부채' 전경련이 사내유보금 주장을 위해 내뱉는 생소한 개념어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는다. 그래서 재벌의 주장이 수긍할 만한 학적 권위를 가진 내용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고 더 의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 사내유보금은 상법, 회계학 상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3만8800%라는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솟은 SK텔레콤의 사내유보율(올 1분기 말, 3월 31일 기준)로 상징되듯이, 사내유보금이라는 개념은 이미 회계학의 좁은 범위를 넘어 현실에서 새롭게 규정되고 있다. 설령 앞에서 내가 주장한 모든 논리가 회계학 전문가에 의해 박살나더라도, 재벌 사내유보금이 더 이상 재벌 배불리기가 아니라 노동자·서민을 위해 사회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주장은 그 근거를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삶의 고통이 심해지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서민이 간절히 열망하는 복지확대, 임금인상, 정규직화 등의 요구는 오직 재벌 사내유보금을 환수할 때만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쓰여야 할 사회적 재원, 그것이 오늘날 한국 국민들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운 정의다. 따라서 그 앞에 대고 '현금이 쌓여있는 게 아니니 과세나 환수의 대상으로 삼지 마라'는 재벌들의 반론은 허약하다.

우리는 그것이 현금이기 때문에 또는 회계학상으로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환수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개악을 비롯한 경제위기 책임을 노동자·서민에 전가하는 '재벌 살리기'에 맞서 우리들의 삶에서 절박한 생존권적 요구를 실현해 '노동자·서민 살리기'로 나아가기 위해 환수하자는 것이다.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노동자·서민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온갖 언론들, 경제연구기관, 전경련 등 재벌단체 등은 사내유보금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과장을 풀어주겠다고 자신들의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거기에 선동되지 말자.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사내유보금의 실체가 무엇이고 재벌들이 어떤 부분을 왜곡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사내유보금 문제를 비롯해서 재벌들이 숨기려 하는 치부를 샅샅이 밝혀내야 한다.

최근 재벌들이 07년부터 14년까지 8년간 해외 조세도피처로 508조 원을 송금하고 186조 원을 탈세와 자금은닉을 위해 해외에 남겨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처럼 저들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서민 살리기'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같이 고민하자. 30대 재벌 사내유보금 710조는 우리를 위해 써야하고 충분히 쓸 수 있는 돈이다.

덧붙이는 글 | 김시웅님은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와 재벌 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는 2012년 무소속 김소연 선거운동본부를 함께했던 이들이 2016년 1월 노동자계급정당 창당을 목표로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태그:#재벌개혁, #사내유보금, #사내유보금 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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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재벌이다. 사내유보금 환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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