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9월 태극호의 지휘봉을 잡은 이래 대체로 순항하고 있다.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과 동아시안컵 우승에 이르기까지. 슈틸리케 호의 행보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역대 대표팀 감독, 특히 외국인 사령탑 중에서 이 정도로 높은 지지와 찬사 일색이었던 인물도 보기 드물다.

하지만 위기는 언제든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 조광래 전 감독은 1년 가까이 무패 기록을 이어가다 임기 말 단 두 번의 결정적 패배로 경질까지 당했다. 역대 최고의 대표팀 감독이라 칭송 받는 거스 히딩크 감독도 평가전에서의 부진으로 한때 국민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까지 기나긴 여정을 남겨두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에게도 언제 어디서 발밑의 함정이 나타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라오스보다 월등한 실력, 하지만...

축구대표팀 선발된 황의조 울리 슈틸리케 축구 대표팀 감독이 내달 3일(라오스)과 8일(레바논) 예정된 대표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을 앞두고 선발한 황의조(성남).

2014년 12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 황의조가 서귀포 시민축구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축구대표팀 선발된 황의조 울리 슈틸리케 축구 대표팀 감독이 오는 3일(라오스)과 8일(레바논) 예정된 대표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을 앞두고 선발한 황의조(성남). 2014년 12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 황의조가 서귀포 시민축구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일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리는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G조 2차전인 라오스 전은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한국 대표팀이 치르는 19번째 A매치다. 슈틸리케 호는 현재까지 총 18전 12승 3무 3패의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2015년만 놓고 보면 10승 3무 1패로 승률이 무려 71%에 이른다.

라오스와의 전력 차도 크다. 피파 랭킹 54위인 한국에 비해 라오스는 177위에 불과하다. 역대 전적에서도 한국이 3전 전승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G조에서 최약체로 꼽히는 라오스는 지난 6월 11일 미얀마와 예선 1차전을 2-2로 비긴 뒤 같은 달 16일 레바논에는 0-2로 무릎을 꿇었다.

이정협, 구자철, 박주호 등 일부 주전급 선수들의 공백에도 한국이 충분히 낙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라오스를 상대로 굳이 새 시즌 개막과 이적 문제 등으로 어수선한 유럽파들까지 필요하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 월등한 실력 차는 분명하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여전히 완벽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라오스 전을 앞두고 슈틸리케 감독이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도 심리적인 부분, 바로 '방심'에 있다. 아무래도 약체인 라오스를 상대로 한국이 경기 주도권을 움켜쥐고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높고, 그러다 보면 선수들이 팀 플레이를 잊고 이기적인 플레이가 나오거나 조직력이 흐트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라오스 전은 물론 기본적으로 승점 3점을 목표로 하는 경기지만, 넓게 보면 러시아월드컵을 향한 과정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주장 기성용의 지적처럼 한국은 이제 아시아의 약체팀을 상대로 손쉽게 이긴다고 만족할 시기는 지났다. 진정한 강팀은 상대가 강하건 약하건 변함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클래스를 유지하는 꾸준함에 좌우된다. 라오스를 상대로 이기는 것을 넘어서 결과와 내용 양면에서 얼마나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느냐에 눈높이가 맞춰지는 이유다.

라오스 전의 최대 키워드는 '골 결정력'이다. 한국은 그동안 고질적인 최전방 공격수 부재와 득점력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슈틸리케 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승률은 좋았지만, 득점력은 평균 1.3골에 불과하다. 공동 최다 득점자가 이정협과 손흥민으로 각각 4골이었다. 그동안 슈틸리케 호가 맞붙은 상대 중 2~3팀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꼽힌 약체들이었던 것을 감안했을 때 만족할 수 없는 골 결정력이었다.

라오스 전, 레바논 전 대비 위한 점검 기회

 슈틸리케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참가선수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슈틸리케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참가선수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은 그동안 밀집 수비를 구사하는 약팀들을 공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미얀마와의 1차전과 동아시안컵 북한 전 등에서도 이런 약점은 여전했다. 더구나 이번 대표팀에서는 공격진이 또 한 번 물갈이됐다. 이정협, 김신욱, 염기훈, 이용재 등이 대거 빠지고 석현준과 황의조같이 A매치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들로 최전방을 꾸렸다. 더구나 가장 확실한 득점원으로 꼽히는 손흥민은 이번 라오스 전만 뛰고 조기에 소속팀으로 복귀해 오는 8일 레바논 전에는 결장할 예정이다.

라오스만이 아니라 레바논 전까지 이어지는 연속성을 감안하면 슈틸리케 호로서도 현재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만은 아니다. 라오스 전에서 좋은 흐름을 이어가지 못한다면 레바논전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실제 이번 2연전에서의 초점도 레바논 원정에 더 맞춰졌다. 한국은 지난 브라질월드컵 예선에서도 레바논과 두 번이나 한 조에 배정됐고 유독 원정 경기 때마다 상대의 밀집 수비에 고전한 바있다. 라오스 전은 레바논 전을 대비한 사전 점검의 성격도 강한 셈이다.

특정 선수의 활약도 물론 중요하지만, 전술적으로 확실한 득점 루트를 개발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 밀집 수비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공략법이 세트피스다. 한국은 미얀마 전을 포함해 최근 경기에서 코너킥이나 프리킥 등 세트피스에서 만들어낸 득점 찬스가 상당히 많았다.

라오스의 신장이 작기 때문에 석현준, 곽태휘 등 신체 조건이 좋은 선수들의 제공권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손흥민이나 기성용같이 세트피스 전문 키커들의 예리한 발끝도 기대해 볼 만하다. 초반 이른 시간에 선제골이 터진다면 의외로 손쉽게 다득점 경기가 될 가능성도 높다.

새로운 선수들과 젊은 피의 활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세대 교체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이 발굴한 이재성이나 정우영, 권창훈 등은 이번 명단에서 제외된 구자철, 박주호 등 해외파들의 대체자가 되기에 충분한 자원들이다. 그동안 대표팀과 크게 인연이 없었던 석현준과 황의조같은 선수들이 이정협의 빈 자리를 틈타 공격진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눈도장을 받을 수 있을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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