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이 역시나 천만 관객을 넘겼다. 개봉초부터 최동훈 감동의 영화 <암살>과 함께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더니 결국 두 영화가 '쌍 천만'이라는 새로운 신화를 기록했다.

혹자들은 <베테랑>의 흥행 요인이 <암살>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지적한다. 두 영화 모두 현실의 결핍을 채워주며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암살>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아직 청산되지 않은 채, 오히려 사회의 주류가 되어버린 친일파를 속 시원하게 제거해 주었다. 또한 <베테랑>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치외법권적인 삶을 살며 온갖 불법적인 행태를 부리면서도 떵떵거리는 재벌들을 응징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베테랑>의 흥행 요인을 <암살>과 하나로 묶으려니 뭔가 부족하다. 물론 두 영화 모두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부분을 이야기하며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제공했다. 하지만 <암살>은 아주 오래되고 근본적인, 그래서 당위성에 가까운 문제를 던졌지만 <베테랑>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비루한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첫 번째 매질

<베테랑>에는 두 번의 매질이 나온다. 영화 초반,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배 기사(정웅인 분)에 대한 조태오(유아인 분)의 매질이 그 첫 번이고, 두 번째는 최 상무(유해진 분)에 대한  조 회장(송영창 분)의 매질이다.

첫 번째 매질은 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5년 전 있었던 SK 최철원(SK그룹 물류업체 M&M 전 대표)의 맷값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감독이 이 장면에 굳이 배 기사의 아들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무력하게 얻어터지는 장면을 그 자식이 보게 하면서 사건의 비극성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그만큼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주었다.

왜일까? 감독은 왜 굳이 그 아들을 등장시키고, 사건도 그 아이의 시선으로 촬영했을까? 이는 결국 그 장면이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은 직설적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당신은 등장인물 중 누구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지켜봤는지.

첫 번째 매질의 주인공 조태오 그는 아직 채 여물지 않은 차악일 뿐이다.

▲ 첫 번째 매질의 주인공 조태오 그는 아직 채 여물지 않은 차악일 뿐이다. ⓒ 쇼박스


사실 맷값 사건은 매우 잔혹한 사안이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을 떠나서, 돈만 있으면 사람을 패도 된다는, 그것도 합법적일 수 있다는 이 시대의 야수성이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이다.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흥분해서 최철원 대표를 잡아먹을 듯 비난했지만, 우리는 늘 그랬듯이 사건을 금방 잊었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회 분위기는 어느새 피해자와 가해자를 헷갈리게 만들어 놓았다.

흔히 가해자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의 막무가내식 진상을 끊임없이 설파하는데, 적지 않은 이들이 어느새 그에 감응되어 자본가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고 만다. 현실에서는 배 기사의 처지에 설 가능성이 월등히 큰데도 우리는 조태오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겠지.'

감독은 이에 배 기사의 아들을 등장시킨다. 이 사건을 누구의 관점도 아닌 아이의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결국 제3자인 우리는 조태오나 배 기사보다 배 기사와 심정적으로 가깝지만 정작 그 자리에선 무력하기만 한 아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입장에서 아무리 돈이 필요하다고 한들 자신의 아버지가 눈앞에서 그렇게 무력하게 얻어맞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해도 어이없는 상황을 그러려니 지켜보는 게 맞는 걸까?

요컨대 감독은 첫 번째 매질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환기한다. 우리가 지금 분수에 맞지 않게 조태오와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두 번째 매질

영화의 두 번째 매질은 첫 번째와 달리 현실에 드러난 적은 없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짐작되는 매질이다. 조 회장은 자기 아들인 조태오가 망나니짓을 하고 다니자 그런 그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최 상무를 대신 매질하는데, 이 장면 역시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상에서 최 상무는 비록 조카인 조태오의 뒤치다꺼리를 주로 해주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현실 사회에서 그는 더욱 무서운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 총수 집안사람 중 한 명으로서 한두 개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요,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굳이 조 회장에게 매질을 당한다. 그리고 참아낸다. 심지어 조태오를 대신해 구속되어 감방에도 간다. 오직 단 하나의 이유. 욕망이다.

두 번째 매질의 주인공 최이사  그의 원동력은 욕망이다.

▲ 두 번째 매질의 주인공 최이사 그의 원동력은 욕망이다. ⓒ 쇼박스


역시나 문제는 그런 인물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이다. 영화에서야 몹시 나쁜 인물로 우리가 욕을 해도 부담이 없지만, 정작 현실에서 그런 인물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아무 말 못 할 가능성이 크다. 그의 자본과 권력이 두렵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멀쩡한 사람을 매질해도 되는 사회 아니던가.

따라서 현실에서는 많은 이들이 최 상무 같은 인물을 욕하기보다 오히려 부러워한다. 그렇게라도 출세할 수 있다면, 욕망을 채울 수 있다면 차라리 그와 같이 되고 싶어 한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져버린 시대, 그렇게라도 성공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용인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체면)가 없느냐고? 아니, 우리는 돈이 없어서 가오도 없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오 팀장에게서 바라본 희망

자, 그러면 우리는 이런 매질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비록 영화에서는 권선징악을 성공적으로 그려내지만, 더 치사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는 현실 속에서 영화와 같은 삶이 가능할까?

이런 맥락에서 영화 내내 나의 시선을 붙드는 이는 서도철 형사의 상관인 오 팀장(오달수 분)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폭주하는 서도철 형사를 현실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똘아이'라고 할 때, 오 팀장은 그나마 현실에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평범한 경찰관으로서 영화와 현실의 중간 고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그를 통해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접할 수 있는 역설을 제시한다. 바로 직업윤리와 현실적인 논리와의 괴리가 그것이다. 그는 중고차 매매범들을 소탕하며 본청으로 승진할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지만, 오래된 동료이자 부하인 서도철이 조태오를 수사한 이후 모든 게 어그러지고 만다. 위에서부터 진급 누락은 물론이요, 팀 해체까지 온갖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소시민적인 경찰관 자기 자리에서 최선만 다 해도 세상은 변한다.

▲ 소시민적인 경찰관 자기 자리에서 최선만 다 해도 세상은 변한다. ⓒ 쇼박스


그러나 그는 그 압박에 굴하지 않는다. 비록 자신의 안위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웬만하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아는 소시민적인 경찰관이지만,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결국에는 동료들과의 신의와 직업윤리를 선택한다. 어쨌든 그것이 옳은 일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서도철과 조태오는 서울 한복판에서 싸움을 벌이는데, 그 장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을 둘러싼 채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군중들이다. 아마도 감독은 그 장면을 통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뀔 것이라고.

영화는 서도철이 조태오를 잡고 서둘러 끝난다. 경찰 정복을 입고 그럴싸한 훈장을 받을 만도 하건만 그런 군더더기가 없다. 이는 결국 영화의 해피엔딩을 위해서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게 사건을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훈장은커녕 수사팀이 해체되는 등의 비극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크다. 일개 형사나 팀장 나부랭이가 윗분들과 관계있는 재벌을 건드렸으니 당연히 좌천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아직도 많은 관객이 <베테랑>을 보러 극장을 찾는다고 한다. 부디 그들이 극장 안에서 느낄 통쾌함을 단순한 추억으로 간직하지 않길 바란다. 결국 영화가 꼬집고 있는 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그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벽에다 대고 욕이라도 해야 가능한 법이다. <베테랑> 후속편이 제대로 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기를.

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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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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