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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전체 초·중·고등학교를 아우르는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이 올해 초 발표된 후, 학교 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커졌다. 성교육 표준안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공교육 체계가 확립된 이래 최초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각 학교 급에서 다뤄야 할 성교육의 체계를 가다듬었다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각계에서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현재 성교육 현장에서 일반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야동'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연수했다가 교사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또 성교육 수업 시간 확보를 위한 법정 보건교육 시수 준수, 보건교사 충원 등의 인프라 구축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제시 없이 생물, 기술·가정 등의 관련 교과의 내용을 성교육 내용으로 편입하다 보니 교과별 성교육 끼워 넣기 내지는 성교육 시수 쪼개기를 합리화하는 방편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게다가 일부 학교 밖 청소년 성 관련 단체에서는 국가수준의 보건교육과정에서 다루는 성교육보다 후퇴한 내용이 포함됐다며 강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학교에서 보건교육 시간을 통해 성교육을 가르치는 보건교사로서, 성교육 표준안을 둘러싼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대하면서, 솔직한 심정은 반가움과 안타까움의 교차였다.  

미국의 경우에는 성교육 가이드라인이 제시돼 있고, 보건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성교육을 포함하고 있는데, 주마다 지역의 특색과 상황을 고려하여 학교와 주 교육 당국이 함께 성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있다. 성교육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은 없고 참고자료로 활용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학교 현장의 보건교사들은 물론 학교 밖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성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대안마련에 대해 촉구했지만 정작 교육 당국의 적극적인 행보가 아쉬웠다고 평가된다. 그러던 차에 성교육 표준안을 기점으로 교육부가 직접 나섰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각 계에서 제기된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면서 개선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해본다.

그러나 성교육 표준안 발표 이후 정작 학교 성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 교육방법, 교육과정의 내용, 시수, 사회적 합의 과정이나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일례로 학생들의 성교육에 대한 관점과 지향성은 매우 폭넓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다양한 토론과 협의과정이 필요하지만, 성교육 표준안 고수로 교육부의 독주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일견 단체 간, 그룹 별 힘겨루기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당장 단위 학교에서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이 성교육을 받고 있는지, 받는다면 어떤 교육과정으로, 어느 수업시간에 몇 시간의 수업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성교육에 관심이 많아 직접 학교에 문의해 알아보는 방식 외에는 공식적으로 협의회에 참석하여 의견을 내고 조율하는 단위가 없기 때문이다.

학부모가 참여하여 학교의 주요 과제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는 학교운영위원회의 법률적 의제 사항(초중등교육법 제32조)에서 성교육을 포함한 보건교육, 아이들의 건강의 문제는 제외돼 있다.

미국이 지역성교육위원회를 구성하여 학부모들과 협의하면서 성교육의 방향, 성교육의 내용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더구나 성이나 건강에 대한 아이들의 목소리는 들어줄 창구가 없으니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일쑤다. 

일전에 대화 도중 의제가 '우리에게 개인은 있는가'로 옮겨간 적이 있었다. 문제 제기를 한 친구는 자신의 의견을 내고 타인과 조율하는 장이 많아야 개인이 발달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는 아직도 그런 공론의 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다.

어찌 보면 성교육이야말로 '개인'에게 가장 초점을 맞추는 영역인데도, 여지껏 소통하고 참여하는 기본적인 공론의 장도 마련하지 않은 채 정책이 결정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성교육, #보건교육, #학교보건, #성교육표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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