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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

전동차 외벽에 붙어 있던 h사의 셔츠 광고를 보고 그 셔츠를 꼭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 지하철 광고 전동차 외벽에 붙어 있던 h사의 셔츠 광고를 보고 그 셔츠를 꼭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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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지하철과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전동차 안팎에 붙은 광고들을 많이 보게 된다. 당시 가장 눈에 띈 광고가 있었는데 그 광고는 바로 셔츠 광고였다. 노랑머리의 잘생긴 외국인 남성이 한손에 우유를 들고 마시는 사진이었는데 그가 입고 있는 하얀색 셔츠가 너무 예뻐 보였다.

함께 일하던 친구에게 그 셔츠 예쁘지 않냐고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는 이미 찍어둔 셔츠라며 월급나오면 그 셔츠를 사러 갈 거라고 했다. 그 광고속 남자가 입고 있는 셔츠에 반해 우리는 월급날만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라온 나는 번듯한 브랜드가 붙은 옷을 입고 살지 못했다. 지금이야 일부러 싼 옷들만 골라서 사는 편인데 어릴적엔 괜한 브랜드 욕심이 있었다.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엔 특히나 친구들이 브랜드를 많이 따지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엔 어떤 친구가 새로 산 비싼 브랜드의 청바지나 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나머지 아이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목 뒷부분에 있는 태그를 확인하거나 왼쪽 옆구리 안쪽에 붙어 있는 라벨에 '진품도장'을 확인하곤 했다. 시장에서 산 싸구려 옷들만 입고 살던 나는 그런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고 그 친구들을 따라가기 위해 부산 국제시장에서 '짝퉁' 브랜드의 옷을 사입기도 했었다.

그런 브랜드 열풍은 오래 가지 않았고 이내 철이 들면서 일부러 더 저렴한 옷들을 사입기 시작했다. 물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필요할 때는 브랜드 옷들도 샀다. 그래도 어릴적부터 자라온 생활습관 때문인지 비싼 고가의 브랜드 옷은 나 스스로가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주로 중저가 브랜드의 옷을 사입었다.

그 지하철 광고판에 붙은 셔츠는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였다. 당시 캐주얼 브랜드 매장에서 3만 원에서 5만 원이면 아주 괜찮은 셔츠를 사 입을 수 있었기에 당연히 그 셔츠도 그 정도 가격대일 거라고 생각했다.

셔츠를 두고 나오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꾀죄죄한 모습으로 백화점에 들어간 나는 점원의 무관심에 자존심이 상했다
▲ 쇼핑 꾀죄죄한 모습으로 백화점에 들어간 나는 점원의 무관심에 자존심이 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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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막내인 친구와 나는 야간작업을 같이 할 일이 거의 없다. 우리가 둘다 야간작업을 하면 다음 날 아침에 퇴근을 해야 하므로 하룻동안 막내들이 할 일을 할 사람이 없어서다. 그런데 어느 날 이슈가 있어 함께 야간작업을 한 날이 있었다. 그 덕에 우리는 다음날 아침에 퇴근을 했다.

야간작업을 마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함께 퇴근을 하다가 모처럼 평일 낮시간에 자유시간을 얻었으니 이 참에 그 셔츠를 사러 가기로 했다. 야간 작업에 피곤했지만 벼르던 셔츠를 살 거라는 기대감과 비 온 다음날의 화창한 날씨에 기분이 좋았다.

야간작업을 하기 위해 아주 편한 트레이닝 복장을 하고 출근을 했다. 물론 퇴근하는 지금 우리의 복장도 트레이닝 복장이다. 거기에 아저씨들이나 들 법한 회사 서류가방을 한쪽에 메고 있었고 오늘같이 화창한 날씨에 우산을 들고 있었다. 누가봐도 우스운 꼴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당당하게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백화점으로 갔다.

백화점에 들어서 당당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당시 그 브랜드 매장이 위층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 일찍 백화점에 왔더니 아직 손님들이 많지 않아 한산했다. 남자들은 보통 옷가게에 들어갔을 때 혼자 조용히 마음에 드는 옷들을 고르는걸 좋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옷가게에 들어가면 점원이 부담스럽게 옆에 붙어서 이것 저것 추천을 해준다. 그게 너무 부담스러워 오프라인 쇼핑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백화점이 한산한 시간이라 십중팔구 그 셔츠 매장에 들어가면 점원이 귀찮게 달라 붙어 부담스럽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도 나도 그런 상황은 싫었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그 셔츠만 재빨리 찾아서 구매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그 셔츠 매장에 들어섰다. 그 매장엔 한 명의 여종업원이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갈 때 통화를 하고 있었다. 손님 없는 매장에서 혼자 통화를 하다가 손님들이 들어오니까 급하게 전화를 끊으며 인사를 했다.

"어서오세........요."

그런데 그 점원의 말 끝이 흐려졌다. 매장에 들어가던 우리를 아래 위로 한 번 힐끔 훑어보더니 이내 다시 전화를 걸어 통화를 계속했다. 그 순간 우리는 직감했다. 우리 겉모습을 보고 구매력이 없는 손님이라 무시하는 것이라고. 순간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우리는 기필코 그 셔츠를 구매해서 저 점원의 기를 꺾어 놓자고 했다.

평소엔 점원들이 달라 붙는 걸 싫어하던 우리인데 또 저런 류의 무관심은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우린 스스로 광고속의 그 하얀 셔츠를 찾기 시작했고 이내 그 셔츠를 찾을 수 있었다. 하얀색 반팔셔츠. 깔끔하게 떨어지는 핏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특히 셔츠 아래쪽 끝 부분에 붙어 있는 브랜드 로고는 그 위치부터가 특이하고 예뻤다.

그 셔츠를 골라들고 가격표를 찾았다. 가격표를 찾으면서도 우리에게 무관심한 채 전화통화로 수다만 떨고 있는 '업무태만' 점원에게 소심한 복수를 할 생각으로 마음속은 부글 부글 끓고만 있었다. 그리고는 셔츠 안쪽에 달린 가격표를 찾아 꺼냈다. 가격표를 본 우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 셔츠를 도로 내려 놓고 나와 버렸다.

매장을 나오는 그 짧은 시간 내내 뒷통수가 너무나 따갑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그 셔츠의 가격은 17만 8천 원. 당시 보통의 브랜드 셔츠 가격이 3만~5만 원이었고 우리 월급은 80만 원 내외였다. 그야말로 엄청난 고가의 브랜드였던 것이다. 그 점원의 태도에 정말 자존심이 상해서 그 셔츠를 꼭 사서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도로 내려놓을 수 밖에는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태그:#쇼핑, #백화점, #브랜드, #셔츠, #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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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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