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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헨 성당
 아헨 성당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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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헨성당이 세계유산이 된 이유

독일 오스트리아 여행의 출발지는 아헨(Aachen)이다. 아헨은 독일의 서북쪽에 있는 인구 24만의 중소도시지만, 지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도시다. 지리적인 면에서 아헨은 베네룩스 3국으로 가는 관문이다. 특히 벨기에의 브뤼셀, 안트베르펜과는 고속도로로 바로 연결된다. 브뤼셀로 가면 브뤼헤를 거쳐 바다로 나갈 수 있고, 안트베르펜으로 가면 바로 바다로 진출할 수 있다.

아헨은 또한 독일왕국의 출발인 프랑크왕국의 수도이자 대관식 장소였다. 프랑크왕은 팔츠(Pfalz)로 불리는 궁전을 건설했고, 예배공간으로 팔츠교회(Pfalzkapelle)를 지었다. 그 궁전이 현재까지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고, 팔츠교회는 아헨성당으로 확장됐다. 아헨은 프랑크왕인 칼 대제(Karl der Groβe)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제국의 수도가 됐다.

아헨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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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칼 대제의 아들 루드비히가 813년 아헨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한 이후 600년 동안 아헨성당은 독일 왕과 황제의 대관식 장소가 됐다. 1531년까지 30명의 독일 왕과 황제가 이곳에서 대관식을 했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헨과 아헨성당은 독일의 정치와 역사의 고향이고 중심이다. 그리고 건축학적 예술사적 측면에서도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아헨성당은 1978년 독일의 문화유산 중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다.

아헨성당에는 중세시대 독일 통일에 기여한 칼 대제가 묻혀 있다. 마침 칼 대제를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고 해서 아침 일찍 성당으로 향했다. 버스를 도심 외곽에 세워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헨 극장 앞에서 차를 내렸다. 극장에서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푸치니의 <토스카>가 공연되고 있었다. 그리고 극장 옆으로 아헨 음대가 있어 건물 외관을 살펴볼 수 있었다.

구도심은 이들보다 조금 높은 언덕 위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카푸친 언덕과 하르트만 거리를 지나 돔 광장으로 올라간다. 이곳에 아헨 관광의 백미인 성당과 시청이 있기 때문이다. 성당의 외관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돔 부분의 8각 지붕이다. 비잔틴 양식의 돔을 변형해 796년에서 80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성당의 입구는 서쪽에 있다.  

칼 대제의 금동관, 어떻게 이곳에?

성당의 서쪽 입구
 성당의 서쪽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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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문 입구에는 '칼 대제의 관을 좀 더 가까이 보자'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니 금년이 칼 대제의 금동관이 이곳 아헨 성당에 안치된 지 800년이라고 한다. 자료를 보니 1215년 7월 27일 슈타우펜 왕조의 프리드리히 2세가 칼 대제의 시신을 금과 은으로 만든 관에 안치했다고 한다. 이 시신의 일부를 발견한 사람은 프리드리히 2세의 할아버지인 프리드리히(바바롯사) 황제다.

1215년에 일어난 이 일을 유해의 이관(Translatio)이라 부른다. 이를 통해 그 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칼 대제의 유해가 마지막 안식처를 찾게 된 것이다. 뤼티히(Lüttich) 출신의 수도사 라이네루스(Reinerus)는 당시 프리드리히 2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칼 대제 금동관 후면
 칼 대제 금동관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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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해머를 들고 옷을 벗은 채 아헨 최고의 장인과 함께 비계(飛階)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장인과 함께 관 뚜껑에 못을 박음으로써 작업을 마쳤다." 그 전에 프리드리히 2세는 라이네루스에게 이미 명령한 바 있다. "그의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황제가 땅속에서 찾아낸 칼 대제의 유해를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관 속에 집어넣을 것을."
  
내가 성당을 찾아온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성당의 내·외부 구조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카로링시대에서 고딕시대를 거쳐 바로크시대까지 이어져온 아헨 성당의 건축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이곳에 안치된 칼 대제의 금동장식관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독일 왕조의 뿌리를 찾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당 중앙의 촛대 장식
 성당 중앙의 촛대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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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금동관은 원래 성당의 가장 안쪽 합창대석 앞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이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성당의 중앙에 있는 촛대장식 아래 공간을 지나고 제대를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제대 뒤에 마리아 금동관이 있고, 더 안쪽으로 칼 대제 금동관이 있다. 그 관들이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그런데 우리가 아헨성당을 찾은 날은 공개 하루 전인 7월 22일. 오호 통재라, 이를 어쩐다, 그런데 하늘이 도운 건지 22일이 미디어 데이여서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관리자들이 제재하는 것에 사정도 하고, 눈치도 보면서 아주 가까이서 칼대제 금동관과 마리아 금동관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실내가 밝지 않고 플래시를 터뜨릴 수도 없어 좋은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칼 대제의 금동관
 칼 대제의 금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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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1200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800년 전에 금장식 관에서 안식을 취하게 된 칼 대제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고 영광이었다. 금동 장식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그것을 언제 다시 느껴볼 수 있겠는가? 독일어 표현대로 '더 이상 가까이서 볼 수 없는 칼(Karl so nah wie nie)'을 보았다.   

아헨 성당의 내부를 살펴보다

이제 성당의 내부를 살펴볼 차례다. 아헨성당의 서쪽 입구를 들어서면 현관 양쪽으로 청동조각상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에 있는 것이 늑대고, 왼쪽에 있는 것이 솔방울이다. 늑대는 신성로마제국이 로마제국을 승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로마제국을 건설한 로물루스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동물을 곰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솔방울은 다산의 상징으로 생명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대관식 의자
 대관식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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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지나 본당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대관식 의자가 보인다. 이 의자는 790년대 칼 대제의 명령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의자는 장식이 전혀 없고 아주 단순하다. 5개의 계단 위에 의자가 놓여있는 형태인데, 이 의자는 800년께 예루살렘 성묘교회에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리고 대관식 의자 옆 문 기둥 위 아치에 흰색과 검은색의 교차장식이 보인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바위돔 사원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800년께면 예루살렘이 이슬람 제국인 압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던 때다. 이때 이 지역을 방문한 기독교인들이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한 성묘교회를 찾아 의자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리고 이슬람의 건축양식을 배워 아헨성당에 적용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대관식 의자 위에는 나무로 된 구조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현재 본(Bonn)의 라인 주립박물관에 있다.

돔 천정
 돔 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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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식 의자를 지나면 성당 한 가운데 돔 천정 아래 바바롯사 촛대(Barbarossaleuchter)로 불리는 금동장식이 걸려 있다. 길이가 무려 27m에 이르는 16각형 장식으로 마치 커다란 왕관처럼 보인다. 이곳에는 모두 48개의 초를 켜 불을 밝히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1165~1170년 프리드리히 1세 황제 때 아헨성당의 수호성인인 마리아와 칼 대제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제단 안쪽에 있는 칼 대제 금동관과 마리아의 금동관을 바로 촛대 아래서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두 금동관을 기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촛대 아래 공간으로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금동관을 한 바퀴 돌면서 관을 자세히 살펴본다. 관은 아주 작은 교회 건물처럼 지붕과 벽이 있고, 사방 벽에 부조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었다.

칼 대제 금동관 정면
 칼 대제 금동관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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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가운데 금동관의 주인인 칼 대제가 있다. 좌우에는 당시 교황인 레오(Leo) 3세와 랭스 대주교 투르핀(Turpin)이 호위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내려다보고 있다. 뒷면 가운데는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가 있다. 좌우에는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이 호위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위에는 믿음, 소망, 사랑을 상징하는 세 인물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옆면에도 한쪽에 8명씩 모두 16명의 황제가 부조돼 있다. 그들은 하인리히, 오토, 루드비히, 로타 등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전면과 후면의 칼 대제와 마리아에 비교할 수가 없다. 그것은 위상과 상징성에서 두 인물보다 훨씬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금동관에서는 금빛이 발산되고 있다. 정말 신성하고 아름답다. 그렇지만 금동관을 영원히 볼 수는 없다. 관리자들이 상당히 조심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바라본 아헨 성당

아헨 성당 북쪽 모습
 아헨 성당 북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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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를 다 본 우리는 밖으로 나온다. 이제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외관을 살펴볼 차례다. 돔의 서북쪽으로는 성보박물관이 있고, 돔 노래학교가 있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이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성당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는 북쪽이 좋다. 고딕식 첨탑과 팔각형의 돔 그리고 바실리카 양식의 지붕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당의 남쪽에서는 예배당 중 바로크양식 건축을 하나 볼 수 있다. 그것은 1756~1767년 사이에 지어진 헝가리 예배당이다. 이 예배당은 헝가리 장군 바티야니(Karl Josef Batthyány)의 요청으로 모레티(Joseph Moretti)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이 예배당은 한 때 성보박물관으로 사용됐고, 현재는 성사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배당 밖에는 지구 형상을 한 청동 조각품이 서 있다.

동물 형상 물받이
 동물 형상 물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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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단과 합창대석으로 이뤄진 성당 밖에서 특이한 물받이를 볼 수 있었다. 동물 형상을 한 조각품으로 돔 축성 1200주년인 2000년 현재의 자리에 놓이게 됐단다. 모두 4개로 원본이다. 그래서 그런지 검은 때가 많이 끼었다. 이 동물 형상 물받이는 1200년 성당의 역사를 증거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나는 이곳 아헨 성당에서 1시간 남짓 1200년 성당의 역사와 함께할 수 있었다.


태그:#아헨 성당, #칼 대제 , #칼 대제 금동관, #마리아 금동관, #바바롯사 촛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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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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