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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회장은 지난 7월 16일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바로 전날 신 회장은 일본에서 롯데홀딩스 이사회를 열어 대표이사에 올라섰다. 신 회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아버지) 신 총괄회장의 뜻에 따라 한국과 일본 사업을 모두 책임지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장들은 이른바 '충성 서약'을 했다.

이후 이른바 '형제의 난' 혹은 '부자간 갈등'으로 표현되는 경영권 분쟁이 표면화되면서 사장단의 충성 서약은 다시 나왔다. 8월 4일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 등 37개 계열사 사장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눈물로 경영 복귀를 호소했다. 봉건 시대처럼 왕위를 두고 왕족끼리 다투고, 신하들은 머리를 조아리는 모양새다.

1~2% 지분 가진 총수 일가가 지배한 대기업들

롯데의 경영권 분쟁은 총수 일가는 자신들이 주인인 것처럼, 임원들은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총수 일가의 싸움으로 소비자는 외면하고, 회사 가치와 매출이 추락하며, 다시 국민연금을 포함한 주주 손실이 발생하는데도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소유 지분 0.05%) 등 총수 일가 지분은 2.41%에 불과하다. 적은 지분으로도 회사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그룹들도 마찬가지다. 삼성그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세습을 위해 소액주주들에게 손실을 안기면서까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했다. 사업상 시너지라고 밝혔지만, 대부분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주는 등 경영권 세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2013년 말부터 삼성에버랜드와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비롯해 계열사 간의 합병 혹은 매각 등도 같은 목적이었다. 그사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했고, 구조조정 명목으로 잘리거나 다른 그룹으로 소속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평소 가장 중요시 여긴다는 임직원들의 의사는 이 과정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소유 지분 0.71%) 등 삼성 총수 일가의 지분은 롯데보다 적은 1.28%다.

아울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의 편법 상속도 진행됐다. 삼성의 삼성SDS, 현대차의 글로비스·이노션, SK의 SKC&C, 한화의 한화S&C, 한진그룹의 싸이버스카이 등은 '영업비밀'이나 '전문성'을 이유로 설립된 회사들이다.

공교롭게도 이 회사의 지분 대부분은 총수 자녀들 몫이다. 회사들은 그룹 계열사로에서 일감을 받아 빠르게 컸고, 그 성장의 열매는 총수 자녀에게 돌아갔다. 또 재벌가 자녀들이 하나둘 성장하면서 그들도 부의 한몫을 차지하려고 경쟁이 덜한 국내 시장에서 사업을 했다.

떡볶이·제과·제빵 등 골목상권을 침입하거나 중소기업이 주력하던 분야에 진출해 경쟁하는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롯데 역시 신격호 총괄회장의 손자인 장재영 씨가 한때 '유니엘'이라는 출판인쇄업을 차려 2007년까지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등의 전단지를 도맡아 수억 원의 배당금을 받아간 바 있다.

일감 몰아주기나 중소기업이 주력하던 시장에 진출하면서 재벌 총수 일가가 배를 불린 반면 대·중소기업 간,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재벌 체제가 한국 경제 성장의 주축과 경제력 집중의 온상이라는 이중적인 평가를 받아왔지만, 해가 갈수록 긍정적인 부분은 줄어들고 부정적인 영향은 더욱 커졌다.

경제력 집중과 고용 없는 성장

재벌 체제 아래서 '고용 없는 성장'으로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경제력 집중은 커져만 갔다. 중소기업 노동자는 1995년 826만 명에서 1226만 명으로 400만 명이 늘어난 반면, 대기업 노동자들은 같은 기간 283만 명에서 187만 명으로 오히려 96만 명이 줄었다. 거꾸로 재벌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늘어만 갔다. 30대 재벌의 국가 총자산의 비중은 2001년 31.73%에서 37.41%로 5.68%P가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여당과 야당 후보들은 모두 '경제 민주화'라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 재벌 체제의 강화를 견제해야 한다고 모두 인정한 셈이다. 헌법(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밝힌다. 재벌의 힘에 대한 견제와 공정한 경쟁이 경제민주화의 알짜라는 것이다.

하지만 재벌의 힘에 대한 견제는 쉽지 않았다. 죄를 지어도 일자리 창출, 경제 활성화 기여 등의 명목으로 집행유예를 받거나 구속된 이후 사면받았다. 재벌 개혁을 위한 법을 마련하려고 해도 재벌의 글로벌 경쟁력이 낮아진다거나 투자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가 커진다.

아울러 재벌의 장점은 인정하면서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삼성 특별법으로 3세들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되, 경영을 잘못할 경우 정부가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문제는 사회적 합의에 앞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세습이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라는 '복병'을 만나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을 제외하고는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어, 정작 삼성 쪽은 이런 주장에 응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걱정을 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라는 말로 장하준 교수의 의견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자정능력 없는 재벌, 외과수술 불가피

결국 현실성 있는 경제 민주화는 정부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관리·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이사회의 기능과 소액주주의 보호는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개선하지 않기 때문에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이 갈수록 높아져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친(親) 재벌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조차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동반 성장을 위한 규제를 도입했던 것"이라고 밝혔다(<한국자본주의> 중). 재벌 스스로 변화하거나 자정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아 외부의 압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외부 압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삼성이 경영권 세습을 위해 계열사를 떼었다 붙였다하는 과정에서 증권거래소는 삼성이 깜짝 발표를 하기 전 숱한 소문과 언론보도에도 조회공시를 요구하지 않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의결권 행사를 늘 하던 대로 전문위원회에 넘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찬성으로 결정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호텔롯데를 지배하는 일본 롯데홀딩스나 L투자회사 등에 대한 지분 정보 등을 한 번도 요구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도 롯데의 허술한 공시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언론 역시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않았다. 결국 각 기관이나 조직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를 위한 외부 압력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삼성·현대차 등 상위 그룹에 대한 견제가 우선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삼성·현대차가 먼저 '한탕'한 뒤 다른 재벌들도 따라하려고 하지만 그때는 규제가 생겨 장애가 발생한다. 상위 재벌과 하위 재벌간 격차가 커지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상위 그룹을 잘 감시하면 다른 재벌에 대한 견제는 손쉽게 이뤄질 수 있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 실천도 보탬이 된다. 박 대통령은 당시 주주들이 권한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 의무화나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약속했다.

전자투표제는 주주총회 현장에 못가는 주주들이 전자시스템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며,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의 잘못으로 모회사가 손실을 봤을 경우 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3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1주에 3명을 뽑을 수 있는 3표가 부여되는데, 3표를 모두 한 이사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집중투표제다. 주주들이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정훈 님은 <한겨레> 경제부 기자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고용률, #경제민주화,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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