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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7일, 안성 오일장에서 배추 모종을 사다 옥상 텃밭에 심었다. 그 뒤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물을 주며 배추벌레도 잡아주곤 했다. 그랬더니만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이렇게만 자라준다면 올해는 김장배추를 사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단, 벌레나 진딧물이 끼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지난 13일간 배추는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하루가 다르다는 말이 실감 났다. 간혹 이파리를 파먹은 흔적을 따라가면 배추벌레가 있었는데 한 마리가 먹어치우는 양이 엄청나다. 그것도 부드러운 속살만 파먹으니 밉기도 하다. 매일매일 손으로 잡아줄 시간은 되질 않아 인터넷 검색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검색어는 '배추벌레 퇴치법'이었다. 검색어를 치자마자 어렵지 않게 친환경 유기농 방법으로 배추벌레를 퇴치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자세하게 사진과 함께 나왔다. 게다가 정보의 주최는 2014년 일상, 생활부문 파워블로거다. 이 정도면 믿을 만 하지 않은가?

나로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하루라도 빨리 그 조처대로 처방해서 자식 같은 배추를 배추벌레로부터 지키고 싶었다. 배추벌레와 동거하면서도 이렇게 잘 자라주는데, 배추벌레를 없애준다면 얼마나 빨리 자랄 것인가? 내심 기대하면서 말이다.

블로그 보고 만든 벌레 퇴치약... 다음날 경악했다

제조법은 아주 간단했다. 빙초산 3㎖에 물 2L, 이것이 전부였다. 세상에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을까 싶었다. 빙초산을 구하는 것이 조금은 번거로웠지만, 그래도 어젯밤 음식재료상에 가서 빙초산을 샀다.

아침에 일어나 제조법에 따라 유기농 배추벌레 퇴치재료를 준비하여 스프레이에 장착했다. 먼저 배추 하나하나 배추벌레를 잡아주고, 빙초산과 물을 섞은 배추벌레 퇴치제를 뿌렸다. 빙초산의 냄새가 은은하니 좋았고, 배춧잎에 뿌려진 약제는 물방울처럼 송골송골 배춧잎에 맺혀 흡사 이슬처럼 보였다. 아, 기분 좋은 아침이다.

오후, 햇볕이 너무 따갑다. 배추구경도 할 겸 옥상 텃밭에 올라갔는데 기절할 뻔했다. 배추이파리가 말라버린 것이다.

타들어간 배춧잎, 아마도 배추벌레를 제거하기 위해 제조한 약품이 너무 독했나 보다.
▲ 배추 타들어간 배춧잎, 아마도 배추벌레를 제거하기 위해 제조한 약품이 너무 독했나 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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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초산이 너무 독했나? 아닌데, 정확하게 제조를 했는데? 얼른 물을 뿌려주며 타죽어 가는 배추들을 하나둘 바라보니 부드러운 부분까지 말라버렸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대체로 말랐어도 아직은 속에서 자라나는 중이니 며칠 지나면 다시 회복될 가능성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들은 모두 수포가 된 것이다. 진딧물과 배추벌레로 고민할 때에 지인들이 식구들 먹을 건데 농약을 치지 말라며 다양한 방법들을 알려주었다. 아무튼, 농약은 치지 않기로 했다. 일일이 잡아내는 것은 매번 배추벌레에도 미안한 일이라 친환경적인 방법을 찾아본 것인데 결과가 이리 되었다. 이걸 누구에게 호소한단 말인가?

잘 자라던 배추, 오늘 아침에 유기농 배추벌레 퇴치법을 따라 제조하여 뿌렸다가 된서리를 맞아 말라버렸다.
▲ 배추 잘 자라던 배추, 오늘 아침에 유기농 배추벌레 퇴치법을 따라 제조하여 뿌렸다가 된서리를 맞아 말라버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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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블로거의 말이라고 무조건 믿은 내가 잘못이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혹시라도 배추벌레 퇴치법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금빛 훈장을 달고 있는 블로거의 꼬임(?)에 빠져 배추농사를 망치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검색창에 '배추벌레 퇴치법'이라고 검색하는 순간, 결과 첫화면에 파워블로거의 글이 나온다.

다른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빙초산을 섞을 때 물의 비율을 더 많이 해서 빙초산을 희석해줘야 하거나 아니면 그 방법은 배추벌레를 잡는 방법이 아니라 배추를 잡는 방법이거나. 그리고 만일, 빙초산의 비율이 높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에 대한 조언이 덧붙여져 있었다면 각별한 주의를 했을 것이다. 텃밭이 아닌 옥상 화분에서 자라는 배추라 면역력이 약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아, 그러나 후회한들 어찌하리. 그런 정보를 덜컥 믿어버린 내가 바보 아니겠는가?

사나흘 직접 잡으면서 배추벌레에 미안하면서도 내심 뿌듯했었다. "이젠 나도 젓가락이 아니라 손으로 그냥 배추벌레를 잡는단 말이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젠 배추에게 한동안 미안할 것 같다. 무식한 주인 만나서 그야말로 생고생을 하니 말이다.

그래도 상태를 보아하니 아주 죽을 것 같지는 않다. 햇살이 좀 누그러지면 가위라도 들고 올라가 말라버린 부분들 수술하듯 제거라도 해줘야겠다. 혹시라도 배추벌레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 중에서 '빙초산 어쩌고'하는 방법을 보셨다면, 제 사례를 무심히 넘기지 말기를 바란다.


태그:#배추농사, #유기농, #파워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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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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