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시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절망탑' 기공식을 진행 중이다.
 1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시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절망탑' 기공식을 진행 중이다.
ⓒ 손지은

관련사진보기


"빚은 쌓였는데 취업은 안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속세와 단절돼 오롯이 학문에만 매진할 수 있다는 뜻에서 '상아탑(象牙塔)'이라고 불렸던 대학에 이번엔 '절망탑'이 등장했다. 대학 등록금이 살인적으로 치솟아 '인골탑', '등골탑'으로 바꿔 부르던 풍자도 옛말이 된 것이다. 청년 실업으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를 넘어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학생들의 묵언시위였다.

1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시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고요했던 캠퍼스가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개강 첫날이었다. 맑은 햇볕이 내리쬐고 선선한 바람이 오가는 캠퍼스 한가운데에서 대학생 10여 명이 흰색 목장갑을 나눠 끼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전공책 대신 삽과 각목 등이 어지럽게 놓였다. 남학생 3명은 빨간색 압류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안전모까지 썼다. '(주)절망건설'의 절망탑 기공식 현장이었다.

약 10여 분 동안 준비를 마친 학생들은 이어 학생들이 지나는 길목을 향해 일렬로 서서 '절망선언'을 시작했다. 기공식 사회를 맡은 이장원(23)씨는 "청년들이 지금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며 스스로 가학하는 밑바탕에는 비현실적인 사회구조가 놓여있다"며 "청년들의 빚은 쌓여있는데 취업이 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헬조선에 절망탑 세운 학생들 "우린 이미 망했다"

다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양다혜(21·여) 알바노조 성공회대 분회장은 "올해 최저임금이 450원 올라 6030원이 됐지만 밥 한 끼 사 먹기도 힘든 금액"이라며 "알바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은 물론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모든 수당을 받아도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린 이미 망했다"고 말했다.

1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시 구로구 성공회대학교에서 '절망탑' 기공식을 진행 중인 학생들.
 1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시 구로구 성공회대학교에서 '절망탑' 기공식을 진행 중인 학생들.
ⓒ 손지은

관련사진보기


이들은 이날부터 일주일 동안 2미터 높이의 탑을 세울 예정이다. 직접 각목을 잘라 뼈대를 만든다. 외벽엔 절망의 상징인 '폐지'를 덧붙일 계획이다. 그렇게 완성된 탑에는 성공회대 학생들의 빚이 채워진다. 신문지를 동그랗게 구겨 만든 공은 한 개당 백만 원을 뜻한다. 이곳을 지나는 학생들이 본인이 짊어진 빚만큼 공을 탑 안에 넣으면 된다. 또한 벽에는 본인이 망한 이유를 메모지에 조목조목 적어 붙이게 할 계획이다.

현장소장을 맡은 우람(사회과학부·3)씨는 "학자금 대출이 매년 증가하지만 상환율은 높지 못하고, 일자리 문제 역시 심각하지만 인턴과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있으며 곳곳에선 끊임없는 차별과 소수자를 혐오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주)절망건설은 이것을 절망으로 규정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그는 "온 사회에 절망이 퍼져나가고 보수언론조차도 더 이상 개인에게 노력을 하면 희망을 얻을 거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절망탑으로 우리의 현실을 폭로함과 동시에 절망상태를 해결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계속하겠다"고 전했다.

빨간색 리본을 가위로 자르며 기공식을 마친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톱질을 시작했다. 목표는 일단 한 개를 세우는 거다. 그러나 제1의 절망탑이 학생들의 빚으로 차고 넘친다면 제2의, 제3의 탑을 계속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태그:#헬조선, #절망탑, #성공회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