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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4년 11월 10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는 한-중 정상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4년 11월 10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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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3일 항일전쟁 승리를 기념해서 열리는 중국 전승절 및 열병식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두고 미국과 일본의 반응이 좋지 않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27일 "한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그것은 공식적인 반응일 뿐이다. 미국은 내심 불쾌해 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쪽의 불편한 감정은 좀 더 명확하다. 비교적 점잖은 보도에 속하는 8월 27일 자 <요미우리신문>의 '박 대통령, 중국 군사 퍼레이드 참석'이란 기사에서는 "박 정권의 중국 중시 자세가 한층 분명해졌다"면서 "일본·미국은 박 대통령의 참가에 대해 우려의 뜻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일원인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우는 게 아닌가 하고 우려하고 있다. 자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중국 측 행사에 한국 대통령이 참가하니 일본으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에 참가하는 것은 한·중 간의 경제교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6자회담을 통해 한·중 간의 외교적 공조가 상당 부분 강화된 데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미동맹을 지지하는 한국 내 보수층도 중국과의 이 정도 '썸타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 중국이 한국 경제나 대북 압박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본다면,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가는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미군이 수도 서울에 주둔하고 있고 한국이 그 영향력 하에 놓인 상태에서 한국 대통령이 미국이 싫어하는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결정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에 얽매인 명분 외교가 아니라 국익을 중시하는 실리 외교를 지향한 점 때문이다.

두 나라에 조공 보낸 장수왕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중국과 미국처럼 상호 대립하는 두 국가 사이에서 실리 외교를 추진한 모범적 사례 중 하나는 서기 439년 이후의 고구려다. 이 시기의 고구려 군주는 장수왕(정식 명칭은 장수태왕)이었다.

4세기 초부터 북방 유목민들이 북중국을 점령하고 기존의 중국 한족이 남중국으로 밀려남에 따라 중국 대륙은 대혼란에 빠졌다. 이 시기 북중국에서는 여러 개의 왕조가 난립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고구려가 만주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혼란 덕분이었다. 이때가 바로 고구려의 전성기였다. 광개토대왕(광개토태왕)도 이 시기에 활동했고, 그 아들인 장수왕도 이 시기에 재위 기간의 3분의 1을 보냈다. 

그런데 서기 439년, 북중국의 혼란이 선비족 국가인 북위에 의해 통일되었다. 이로써 북중국에는 원칙상 하나의 왕조가 존립하게 되었다. 북중국이 원칙상 하나의 국가로 통합됨에 따라, 북중국이 남중국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북중국을 지배하는 왕조가 동아시아의 최강 왕조가 되었다.

북중국에 강력한 국가가 등장하자 고구려의 영토 확장 정책에 제동이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중국 쪽을 향한 고구려의 영토 확장이 중단되었다. 고구려는 북중국이 자국보다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시점에서 고구려 군주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장수왕이다. 412년에 고구려 군주로 등극한 그는 439년에 북중국이 북위에 의해 통합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때 장수왕이 선택한 외교전략은 최강국 편중 전략이 아니었다. 최강국인 북위에 편중되는 외교노선을 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북중국뿐만 아니라 남중국도 함께 중시했다. 남중국을 지배하는 유송, 유송을 뒤이은 남제도 북위 못지않게 중시했다.

양쪽을 똑같이 중시한다는 표시로 장수왕은 양쪽에 똑같이 조공을 보내고 그 답례로 회사(回賜)를 받아냈다. 일반적인 경우에 조공보다는 회사의 양이 더 많았기 때문에, 경제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장수왕은 상호 대립하는 두 개의 중국 사이에서 무역흑자를 얻어냈던 것이다.

장수왕이 조공을 보낸 것은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중국 못지않은 군사력을 갖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뒤처졌기 때문에 조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공을 받는 쪽은 상국(上國) 대우를 받는 대신 무역적자를 감내해야 했기 때문에, 중국보다 경제력이 약한 고구려로서는 조공을 하는 편이 받는 편보다 실익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장수왕은 상호 경쟁하는 남북 중국 사이에서 그 같은 실리 외교를 추구했다.

한 나라가 상호 대립하는 두 개의 나라에 조공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좋게 말하면 등거리 외교 혹은 균형 외교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양다리 외교였다. 장수왕의 조공을 받는 북중국과 남중국 모두 내심으로는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참가를 두고 미국 정치권이 내심 불쾌해 하는 것 이상으로 남북 중국도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장수왕의 실리 외교,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

고구려 군주의 행차 장면을 재현한 모형. 황해도 안악군의 고구려 무덤인 안악 3호분에 나온 벽화에 근거한 것이다. 경기도 구리시의 고구려 대장간 마을에서 찍은 사진.
 고구려 군주의 행차 장면을 재현한 모형. 황해도 안악군의 고구려 무덤인 안악 3호분에 나온 벽화에 근거한 것이다. 경기도 구리시의 고구려 대장간 마을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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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의 실리 외교는 특히 북위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동아시아 최강국인 북위는 고구려가 북위와 남중국을 똑같이 취급하는 게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참다못해 북위는 소극적인 보복을 가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따르면, 장수왕 재위 68년인 480년 북위는 남제로 가는 고구려 사신단을 해상에서 나포했다. 고구려와 남제의 교류를 방해한 것이다. 하지만 북위의 훼방은 그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북위의 유명한 황제인 효문제가 장수왕에게 서한을 보내 '왜 의리를 지키지 않느냐?'는 수준의 항의를 제기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장수왕은 그런 항의마저도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장수왕은 이듬해인 481년에 남제로 한 번 더 조공 사신단을 보냈다. 북위를 더 자극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484년에 북위에 조공 사신단을 보냈다.

장수왕이 이렇게 하는데도 북위가 실효적 제재를 가하지 못한 것은 고구려의 강력한 군사력 때문이었다. 장수왕은 물론이고 그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이 보여준 군사력이 중국인들의 기억에 남아 있었기에, 남북 중국은 고구려의 실리 외교를 지켜보며 무역 적자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강력한 군사력이 장수왕의 실리 외교에 뒷받침이 되었다.

전작권 환수 없이 무슨 실리 외교를...

고구려의 군사력을 반영하는 <수렵도>를 약간 변형한 그림. 고구려 대장간 마을에서 찍은 사진.
 고구려의 군사력을 반영하는 <수렵도>를 약간 변형한 그림. 고구려 대장간 마을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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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상위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자국 군대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전작권은 이번 전승절 문제로 내심 불쾌해 하고 있는 미국의 수중에 있다.

당연한 언급이지만, 치열한 세계 경쟁에서 실리 외교를 하자면 세계 여러 나라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런 충돌은 경우에 따라 군사적 대립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실리 외교를 하자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자국 군대에 대한 전작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당연함이 대한민국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은 박 대통령 임기 중인 2015년 12월 1일부터 전작권을 환수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2014년 10월 박 대통령은 전작권의 환수를 무기한 연기했다. 미국 측이 한국군 전작권을 꼭 갖고 싶어 하는 게 아닌데도, 한국 정부가 전작권 환수에 대해 열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리 외교의 기본 조건은 강력한 국방력이다. 국방력이 약한 나라가 실리 외교를 하려고 하면, 국제무대에서 얻어맞거나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방력의 기본 조건은 자국 군대에 대한 지휘권이다. 따라서 실리 외교의 근본적 조건은 전작권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전작권을 확보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세계 최강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려 하고 있다. 군대 지휘권을 미국의 손에 맡겨놓은 채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는 행보는 대한민국을 정말로 위험한 데로 몰고 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실리 외교에는 '기본'이 빠져 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전승절, #열병식, #전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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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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