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한화 감독. 사진은 지난 23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벌어진 KIA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와 경기 당시 모습.

김성근 한화 감독. 사진은 지난달 23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벌어진 KIA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와 경기 당시 모습. ⓒ 연합뉴스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한화 이글스는 최악의 8월을 보냈다.

25경기에서 9승 16패. 승률 3할 6푼은 SK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좋지 않은 월별 성적이었다. 또한 이는 한화의 올 시즌 최저 월별 승률이기도 했다. 한화는 올 시즌 5월(13승 14패. 승률 .481)을 제외하면 모두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다.

불행 중 다행은 한화가 놀랍게도 5위를 아직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5강 경쟁팀들의 동반 부진 덕분이었다. 공교롭게도 한화와 5위 싸움을 펼치고 있는 SK-KIA-롯데 등이 한화가 부진할 때 같이 수렁에 빠지면서 중위권 판도를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한화가 위기 상황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 없다. 시즌 초반에 비해 힘이 떨어졌다는 것은 허약해진 뒷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8월 들어 당한 16패 중 무려 11번이 역전패였다. 그것도 경기 종반인 7회 이후에 리드를 빼앗긴 것만 4번이나 된다.

또한 8월에만 총 9번의 1점 차 승부를 펼쳤는데 2승 7패에 그치며 박빙의 승부에서 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좀처럼 연패에 쉽게 빠지지 않는 것이 장점이었던 한화지만 8월에는 각각 시즌 최다인 7연패와 5연패를 각각 한 차례씩 기록했다. 이는 모두 7월까지의 한화와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들이다.

한화 부진, 마운드가 문제다

한화의 부진은 역시 믿었던 마운드의 붕괴에서부터 비롯된다. 사실 8월 팀 평균 자책점은 4.96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시즌 평균(4.92)과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변수가 포함돼 있다. 외국인 투수 에스밀 로저스(5경기 40.1이닝 자책점 1.79)가 등판한 경기에서의 호투와, 일부 주축 불펜 투수들의 난조가 겹치면서 기록이 엇갈렸다.

한화가 상대적으로 부실한 선발진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불펜 필승조의 맹활약이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막강한 불펜진이 후반기들어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다.권혁은 구위 저하로 임시 휴식기를 가졌음에도 8월에 13경기에서 자책점이 5.50으로 치솟았다.18이닝을 동안 볼넷을 11개나 내줬고 피안타율은 무려 3할4리에 달했다.

또 다른 축인 박정진 역시 8월 자책점이 3.77로 겉보기에는 준수했지만 실제 내용 면에서는 안정적인 피칭을 보인 경우가 드물었다. 심지어 마무리 윤규진은 8월 14일 이후 부상으로 올 시즌 두 번째 전열에서 이탈했다.

이러한 한화의 위기는 바로 김성근 감독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김 감독은 매경기 모든 승부에 올인하는 총력전과, 많은 선수를 동원하는 '벌떼야구'를 앞세워 올 시즌 한화의 돌풍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무리한 선수 혹사와 내일이 없는 경기 운영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김 감독의 용병술에 대한 비판은 특정 선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와 원칙없는 기용으로 요약된다. 이는 야수보다 투수 부문에 편중돼 있다. 김 감독은 시즌 초반부터 권혁, 박정진, 윤규진 등 불펜진 운영에서 철저한 '소수 정예' 시스템을 고집했다. 2, 3일 연투는 기본이고 한 번에 2~3이닝을 던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심지어 지고 있거나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투수를 믿지 못하고 필승조만 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표 사례로 권혁은 불펜 투수임에도 벌써 개인 시즌 최다인 101.1이닝(종전 기록은 2004년 삼성 시절 81이닝)을 넘겼다. 투구 수 역시 1848개로 최다다. 리그에서 권혁보다 많은 이닝과 투구 수를 기록한 불펜투수는 없다. 또 다른 필승조 박정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스윙맨 송창식 등도 많은 이닝과 투구 수를 소화해야 했다.

반면 선발진은 호투하다가도 조금만 흔들리면 강판하기 일쑤였다. 한화는 리그에서 선발진의 5회 이전 조기강판이 가장 많은 팀이다. 불펜에서 대체 선발로 전업한 안영명은 1주 사이에만 3번이나 선발로 등판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배영수나 김민우는 노히트 행진을 이어가다가 승리 조건을 눈앞에 두고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자 가차 없이 교체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반대로 김성근 감독의 애제자로 꼽히는 송은범은 계속된 부진에도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에 기용하는 등 전체적으로 일관성 없는 마운드 운용이 너무 잦다.

컨디션이 좋은 선발 투수를 무리하게 당겨 쓰다가 탈이 나는 것도 김성근식 마운드 운용의 부작용이다. 에스밀 로저스와 미치 탈보트 등 외국인 투수들이 좋은 피칭을 보일 때마다 굳이 로테이션을 바꿔가며 당겨 쓰다가 낭패를 봤다.

심지어 후반기 세 차례의 완투승을 거두며 한화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로저스는 3번이나 4일 휴식후 마운드에 오르며 평균 120구 가까이 되는 공을 던졌다가 지난달 27일 NC전이후 갑자기 휴식이라는 명목으로 엔트리에서 빠졌다. 시즌의 가장 중요한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서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 결정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이후 인터뷰를 꺼리며 로저스의 엔트리 제외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무리한 총력전, 여름 위기설 불렀다

많은 이는 이미 시즌 초반 한화가 돌풍을 일으킬 때부터 김성근 감독의 무리한 총력전이 후반기 부작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여름 위기설'을 예상했다. 김성근 감독은 초반 분위기싸움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유지했고, 선수 혹사에 대한 비판 여론도 모두 개의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화의 마운드 운용은 시즌 초반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았고, 여름 위기설 역시 현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문제는 시즌 후반으로 가면서 김성근 감독의 계산과 경기 장악력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8월 들어 한화가 잦은 역전패와 접전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데는 김 감독의 작전 실패와 판단 미스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잦은 선수 교체와 작전야구는 여전하지만 상대팀에게 한 발 앞서 간파당하거나 선수들의 컨디션 저하로 의도대로 되지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김 감독이 시즌 막바지로 갈수록 그만큼 성적에 대한 조급증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 한화의 부활을 이끌 구세주라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등장했다. 자연히 팀 성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야구 스타일에 대한 여러 호불호에도 항상 이기는 야구를 통해 자신의 소신을 증명해온 것이 김성근 감독의 철학이기도 하다. 한화 구단 역시 FA와 외국인 선수 영입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한화 팬들이 김성근 감독을 영입한 이유는 장기적으로 이전보다 더 강한 팀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지만, 그게 반드시 올해 가을 잔치에 한 번 참가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화는 마치 내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듯 무리할 정도로 올 시즌 성적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냉정히 말해 올 시즌 한화가 5강에 진출한다고 해도 우승 전력과는 거리가 있다. 더구나 올 시즌 무리하게 혹사 당한 선수들이 내년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는 보장이 없으며, 그나마 주축들 대부분이 나이가 적지 않은 베테랑급들이다. 리빌딩과 성적은 함께 병행해가야 할 부분이지, 한 쪽에만 치우치다 보면 엄청난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최근 여유를 잃고 매일의 승부에 쫓기는 듯한 김성근 감독의 모습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야구의 신'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시즌 초반 김성근 감독에게 쏟아지던 일방적인 찬사도 후반기 한화의 부진과 우려했던 시나리오들이 차츰 현실화되면서 온도가 달라지고 있다.

한화가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던 당시 얻은 애칭이 '마리한화'다. 매 경기 끝까지 포기하지않는 끈끈한 야구가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다고 해서 붙여진 수식어다. 그러나 마약이 그러하듯 모든 치명적인 중독은 항상 그만큼 대가를 필요로 한다. 눈앞의 승리와 짜릿한 접전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잠시 취해있는 동안, 그 사이 누적된 부작용이 어느새 지금의 한화를 괴롭히고 있다.

어차피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왔는지도 모른다. 가을야구라는 고지를 앞두고 김성근의 '마리한화'는 지금 지독한 금단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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