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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카약을 즐기고 있다
 부부가 카약을 즐기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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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카약을 즐기는 지인 중 한 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섬진강 기차 마을에서 압록까지 카약을 즐길 예정인데 함께 가실래요?"
"섬진강을 카약타고 내려간다고요? 무조건 오케이입니다. 거긴 내 고향이고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수영하던 곳이라 꼭 한번 카약을 타고 내려가 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지난 5월 카약을 타고 전남 여수 남면에 있는 안도와 연도, 금오도를 돌아봤다. 그 후 이번이 두 번째였지만 큰 걱정은 안 했다. 지인이 지시한 대로 따르면 되기 때문이다. '혹시 카약이 뒤집히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시절 섬진강에 홍수가 났을 때도 친구들과 큰 물결을 헤치고 건너편 고달까지 헤엄쳐 갔다가 되돌아온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기차 마을에는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어 침곡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일행이 장비를 내리고 막 출발하려는 찰나 그곳을 담당하는 수상 안전 요원이 "여기는 위험한 곳이니 더 안전한 곳으로 내려가 타라"고 저지한다. "우리는 깊은 바다에서도 탔고 이곳 물길은 내 고향이기 때문에 잘 안다"고 했으나 거절됐다. 

승강이 끝에 군청 안전 요원에게 허락을 받고 출발했다. 2명 1조로 4대가 동시에 출발한 일행의 카약은 인플레이트 카약으로 평소에는 접어뒀다가 사용할 때 풍선처럼 바람을 넣어 사용한다.

며칠 전 비가 와서 적당히 불어난 섬진강은 카약 타기에 괜찮았다. 출발 지점인 호곡(일명 범실)은 옛날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침곡에서 건너 편 호곡을 가려면 줄배를 타고 간다. 지금도 줄배가 있어 아련한 옛 정취가 묻어나는 곳이다.

일행 중에는 미국에서 온 영어 교사 첼시가 있었다. 여수에서 2년간 영어를 가르치다 주말에 미국으로 돌아가는 첼시는 한국이 좋아 다시 오겠단다. 그녀의 얘기다.

"한국에 있는 동안 나는 운이 좋았어요. 내 주위에 있는 한국인이 항상 나를 도와주려고 했어요. 내 한국인 아버지와 카약을 타는 건 가장 행복한 추억입니다. 한국에서 사는 동안 내가 꿈꿨던 이상의 것들을 보고 배웠습니다."

한 주먹씩 잡히던 다슬기, 이젠 귀한 몸

옛정취를 한껏 풍기는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섬진강변을 달리는 모습을 보면 기차를 타고 다녔던 분들의 가슴이 뛴다
 옛정취를 한껏 풍기는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섬진강변을 달리는 모습을 보면 기차를 타고 다녔던 분들의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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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는 여수에서 사는 동안 자신을 돌봐주고 카약탈 때 데리고 다녔던 분을 한국인 아버지라고 불렀다. 

출발 지점인 호곡은 급류가 형성되는 곳이다. 뾰족한 바위들이 많이 나와 카약타는 기분보다는 래프팅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물살이 세고 파도가 치는 곳이다. 카약이 심하게 흔들리며 온몸이 물에 젖었지만 모두 즐거워했다. 이런 맛으로 카약을 타지 않을까?

급류 지점을 벗어나 잔잔한 호수 같은 지점에서 우리는 물 흐르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야말로 유유자적이다. 양쪽 산 그림자가 물 위에 비쳐 탄성을 자아낸다. 100여m 앞 뾰족 솟은 바위에서는 왜가리가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강물이 흐르고, 카약이 흐르고, 자전거 도로에는 자전거가, 아스팔트 도로에는 승용차들이 흐른다. 때마침 경적을 울리며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를 탄 관광객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 옛날 생각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중학생 시절 겨울 방학이 되면 아버지와 형과 나는 리어카를 끌고 압록 근방까지 나무하러 다녔다.

포장 도로는 생각할 수 없고 신작로에 자갈이 깔렸던 시절. 아버지가 앞에서 끌고 나와 형이 뒤에서 밀며 10여km를 나무하러 다니던 길이다. 당시 나는 카약이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영화나 외국 뉴스속에서나 보는 꿈같은 얘기로만 알았다. 

섬진강에서 다슬기를 잡는 분의 모습. 옛날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별로란다.
 섬진강에서 다슬기를 잡는 분의 모습. 옛날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별로란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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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다리 밑 풍경. 여름이 가는 걸 아쉬워하는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압록다리 밑 풍경. 여름이 가는 걸 아쉬워하는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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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살 인근 강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깨비인 마천목장군 상이 서있다
 도깨비살 인근 강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깨비인 마천목장군 상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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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동상이 서 있는 곳에 오니 일행이 연유를 물었다. 어른들이 살뿌리라 불렀던 지역은 물이 깊고 소용돌이가 치는 곳으로 고기가 굉장히 많이 잡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깨비인 마천목장군 상이 있는 이곳은 도깨비마을 전설이 있는 곳 중에서 풍광이 가장 좋은 곳이다.

물 속 바위만 들면 팔뚝 만한 고기가 잡히는 섬진강. 목욕하다 모래 속에 발을 묻으면 때로 발 밑에서 꼼지락거리는 팔뚝만한 모래무지를 잡고 환호했다. 독일 라인강가에 있는 로렐라이 언덕보다 아름다운  섬진강. 이곳을 4대강처럼 개발했으면 어땠을까? 어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친구들은 여름철이면 종일 물 속에서 놀다 등에 허물이 다 벗겨지고 새까맣게 타도 신경쓰지 않고 놀았다. 동자개, 송사리, 은어, 메기, 가물치와 잉어가 잡히고 가끔 홍수가 나면 참외와 수박이 떠 내려와 수영 잘하는 우리 차지가 됐던 추억 어린 곳이다.

미국 출신의 영어교사 첼시와 일행이 잠시 포즈를 취했다
 미국 출신의 영어교사 첼시와 일행이 잠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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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에 젖어 물 흐르는 대로 내려가다 기차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카약이 바위에 걸렸다. 간신히 물이 많은 곳을 택해 빠져 나오려고 노력했지만 바위에 걸려 요지부동이다. 이리저리 비틀다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가슴까지 물이 찬다. 강 기슭에 배를 대고 뒤집어 보니 카약이 찢어졌다.

찢어진 카약을 강 기슭에 둔 일행은 3명 1조가 되어 종착지인 압록 근방까지 오니 강 속에서 열심히 다슬기 잡는 사람이 있었다. "많이 잡았냐?"고 묻자 "예전에는 많았는데 하도 많이 잡아서 지금은 별로 없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슬기는 요즘 귀한 대접을 받는다. 없어서 중국에서 수입까지 한다고 하니 그럴 법하다. 어릴 적 밤에 고무 타이어에 불을 붙여 다슬기 잡으러 나가 큰 돌을 하나 들고 손으로 쓸어내리기만 하면 한 주먹씩 잡히던 곳인데... 어디 그뿐인가? 배구 그물을 강 양안에 걸어놓고 다음날 아침에 가면 참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곳이었다. 지금은 "아! 옛날이여!"를 외친다는 고향 친구들의 전언이다.

자동차로 10여 분이면 닿을 거리를 두 시간여 만에 목적지인 압록에 도착하니 200여 명의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피서객이 가장 많을 때는 2천 명정도가 온다고 한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압록 다리 밑은 수심이 6m정도나 되어 위험하기도 하다.

바위에 얹혀 안간힘을 쓰다 카약 밑창이 찢겨 3명 1조가 되어 카약을 타고 있다
 바위에 얹혀 안간힘을 쓰다 카약 밑창이 찢겨 3명 1조가 되어 카약을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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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이 탄생하면서부터 흐르던 물이 바위를 기기묘묘한 형태로 깎았다
 섬진강이 탄생하면서부터 흐르던 물이 바위를 기기묘묘한 형태로 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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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왜가리가 물속을 응시하고 있다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왜가리가 물속을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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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익사자가 많아 수영 금지 구역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어릴 적부터 섬진강을 잘 아는 기자의 상식에 의하면 고운 모래가 떠내려오는 끝 지점에 서면 순식간에 모래 속에 잠긴다. 경험 없는 사람은 당황하게 마련이다. 수상 안전 요원의 말이다.

"익사자는 대개 수영에 자신 있다며 깊은 물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2년 전에 죽은 사람은 안전 요원이 말려도 욕하며 들어갔어요. 구명 조끼를 비치해 놓고 공짜로 입어라고 해도 안 입어요. 그럴땐 참 밉지요."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에서 카약타기보다 강에서 카약 타기는 훨씬 쉬웠다.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맡기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바위가 나와 있는 지점을 주의해야 한다.

래프팅처럼 심한 격류를 통과한 일행이 잠시 쉬며 환담하고 있다
 래프팅처럼 심한 격류를 통과한 일행이 잠시 쉬며 환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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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고도 송고합니다



태그:#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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