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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일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7월 8일 오후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던 차광호씨가 주먹을 불끈 쥐어 들어보이고 있다.
 408일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7월 8일 오후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던 차광호씨가 주먹을 불끈 쥐어 들어보이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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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일만에 굴뚝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병원행도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30분 검사가 끝나니 곧바로 유치장 행이었습니다. 영장청구까지 했지만 다행히 나올 수 있었습니다. 45m 굴뚝 위에서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단 한 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었던 날들입니다.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고는 하지 않으렵니다. 그러면 지지하고 연대해주신 많은 분들이, 가족들이 가슴 아파할테니까요. 408일 동안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이 아파질테니까요. 

며칠 전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멀리서도 잊지 않고 연대해주었던 고마운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한동안 병원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김진숙 동지가 얘기하던 땅 울렁증이 어떤 것인지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멍하고 붕 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눈과 머리가 너무 아팠고 눈알이 빠져나올 것 같았습니다. 입은 굳어 있었고, 말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기도 했습니다. 서서히 가족들과 동료들의 사랑으로 다시 사람 사는 평지에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것, 그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다시 느꼈습니다. 하여튼 조금은 자신이 붙어 처음으로 멀리 나선 길이었습니다.

짧은 시간 만났던 이들이 저를 다시 팽팽하게 해주었습니다

처음 노동자의 길을 일러주셨던 전태일 노동대학의 김승호 선생님, 그리고 다리 골절 수술을 받고 누워 계신 백기완 선생님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모든 이들을 만나 뵙고 고마웠다고, 반갑다고 인사 나누고 싶었지만, 역시 아직은 조금은 무리였습니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지만 만났던 이들이 모두 저를 다시 팽팽하게 해주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에 열심인 사람들, 오랜 해고에도 굴하지 않는 전해투 동지들, 오늘도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쌍용자동차, 재능 등 투쟁하는 벗들. 친형제 같은 기륭,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활동가들 등, 참 고마운 사람들. 외로운 고공농성이었지만 제가 버틸 수 있었던 힘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스타케미칼 희망버스를 만들어 함께 해주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그렇지만, 우리들 중 누구도 고공농성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말 목숨을 걸지 않고는 오를 수 없는 길이었고, 그 누구도 그런 길을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이 사회와 자본가들은 우리들의 평화로움을 뺏고 저 하늘로 오를 것을 강요합니다. 우리는 우리도 인간임을 호소하기 위해, 우리를 인간으로 봐달라고, 함께 살자고 저 하늘로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408일 만에 간신히 저는 이 평지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다시 저 하늘로 올라간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로 82일째인 기아자동차비정규직 최정명, 한규협. 144일째인 대우조선 사내하청비정규직 강병재. 139일째인 부산 생탁의 송복남과 택시의 심정보 동지들입니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 세상이 서럽고 분노스럽습니다. 언제까지,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저 하늘로 올라야 이 세상이 조금은 밝아지고, 깨끗해질까요.

현대기아차는 명백한 불법파견으로 정규직화하라는 대법원의 판결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수만 명의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고용하고, 착취한 정몽구 회장은 조사도 받지 않습니다. 신규 채용이라는 미끼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동료를 버리고 영혼을 팔라 합니다.

거제도 대우조선해양은 무려 3만여 명의 비정규직들을 쓰고 있습니다. 부산 생탁은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껏 120여 명인데 사장이 40명이라고 합니다. 1970년대 합동양조를 꾸리면서부터 지금까지 대를 이은 사장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배당금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일요일 특근 때는 고구마 한 개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인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해고는 더 쉽게, 임금은 더 적게, 비정규직은 더 많이' 쓸 수 있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하반기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겠다고 합니다. 1%도 안되는 자본가들을 위해 모든 노동자들의 삶을 벼랑 끝이나, 저 까마득한 고공으로 내몰겠다는 악마와도 같은 짓에 다름 아닙니다.

이 모든 불의에 맞서 9월 12일 희망버스가 다시 출발한다고 합니다. 가동이 중단된 캄캄한 공장 안 굴뚝 위에 있을 때, 희망버스가 출발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정말이지 석달 열흘 가문 땅에 단비처럼 고마운 소식이었습니다. 너희에게 자본과 권력과 공권력이 있다면, 내겐 희망버스라는 연대의 무기가 있다고 소리라도 질러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즐겁고 신나는 소식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한 사람의 승객이 되어 9월 12일, 그 희망버스에 오르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27일 새벽, 혼자 굴뚝 난간을 오를 때의 그 간절한 심정과 굳은 결의로 희망버스의 승차 계단을 오르고자 합니다. 부디 당신도 함께 해주시길 바라봅니다. 누군가 또 혼자 고공의 계단을 밟지 않아도 되려면 더 많은 이들이 희망버스에 올라주셔야 합니다.




태그:#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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