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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륙에 도착하다- 터키 이스탄불
▲ [당신에게, 실크로드 42] 새로운 대륙에 도착하다- 터키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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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륙에 도착하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여행한 지 130일째. 버스는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넜다. 지금부터 새로운 대륙, 유럽이다.

유럽 대륙에서 만난 첫 도시는 이스탄불이다. 트램을 타고 생선 비린내가 가득한 갈라타 다리에 서자마자 이곳이 좋아졌다. 생선비린내의 근원은 유명하다는 고등어 케밥이었다. 골목을 돌면 냄새만 멋진 터키 커피와 달달한 바클라바를 먹을 수 있었고,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는 예쁜 고양이들이 있었다. 이스탄불의 명동 이스티클랄 거리에는 고급 백화점도 있지만 저렴한 옷가게도 많았다. 터키의 섬유산업은 세계 6위로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옷은 대부분 유럽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백화점과 쇼핑센터, 팬시한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 이스티클랄 거리 백화점과 쇼핑센터, 팬시한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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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스탄불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순수박물관> 때문이다. 소설 속 케말과 퓌순의 30년에 걸친 사랑의 기록엔 이스탄불의 구석구석이 나왔다. 아름답고 가난한 친척 퓌순을 사랑한 상류층 청년 케말. 그는 가질 수 없는 그녀에 대한 향한 열정을 그녀의 손길이 닿은 물건을 모으는 것으로 대신했다. 소설 마지막에 케말은 추클추마에 있는 그녀의 집을 사서,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전시한 후, '순수박물관'으로 이름 짓는다.

오르한 파묵은 2006년 추클추마에 소설 속 '순수박물관'을 완벽하게 재현한 공간을 만들었다. 이 박물관은 탁심광장과 갈라타타워의 중간쯤에 있다. 이스티클랄 거리에서 돌로 된 골목길을 따라서 내려가다 보면 추클추마 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고서점과 앤티크숍으로 유명하다.

순수박물관 1층에는 퓌순이 피우던 담배꽁초 4213개가 벽 한쪽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담배를 끄는 4213가지 손이 담긴 영상이 나온다. 2층과 3층엔 소설에 나왔던 물건이 가득하다. 케말이 처음 퓌순의 집에 방문해서 그녀의 립스틱을 훔쳤던 세면대 앞에 서자 소설에서 느꼈던 긴장이 몰려왔다. 소설 속에서 케말은 박물관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스티클랄 거리 추클추마거리를 따라 내려가면 있다
▲ 순수박물관을 찾아가는 길 이스티클랄 거리 추클추마거리를 따라 내려가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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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광객이 케말의 기억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 4213개, 퓌순의 담배꽁초 한 관광객이 케말의 기억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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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소설이나 박물과의 목적은, 우리의 기억을 진심으로 설명하여 우리의 행복을 다른 사람들의 행복으로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 오르한 파묵, <순수박물관>


박물관을 지어 행복했던 기억을 함께 나눔으로 그 행복을 공유한다는 거다. 물론 소설에서 공유하는 감정은 행복만은 아니다. 그의 30년을 걸친 사랑엔 찌질함과 비애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순간, 그 모든 흑역사조차 행복으로 치환된다.

그래도 사랑할 수 있었는 그 순간만은 행복했다며. 집요하게 한 여성을 사랑한 남자의 기억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기억을 진심으로 설명하는 곳이 박물관'이라면, 이스탄불은 도시 전체가 세계의 역사를 기억하는 박물관일지도 모른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다. 지금의 이스탄불이다. 하지만 도시의 새 주인은 도시를 파괴하기보다 이슬람문화 특유의 융합력을 발휘해 지금의 이스탄불을 창조했다.

과거부터 실크로드 대상들이 지나다니던 시장에는 돔형 지붕을 덮어 더 많은 상인과 손님이 이용할 수 있도록 지었다. 베야짓역에 위치한 그랜드 바자르다. 15세기 지어진 대규모 실내 시장인 이곳엔 지금도  20개의 입구와 5천여 개의 가게들, 그리고 조상의 상술을 그대로 이어받은 터키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한국인이라니까 엄청 매운 향신료를 맛보게 해주었다.
▲ 바자르에서 만난 아가씨 한국인이라니까 엄청 매운 향신료를 맛보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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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 신발, 가죽제품, 허브, 기념품, 스카프 등 다양한 물건을 볼 수 있으나 길을 잃기 쉬우니 몇번 출구로 들어왔는지 지억하자.
▲ 그랜드 바자르의 한 보석가게 보석, 신발, 가죽제품, 허브, 기념품, 스카프 등 다양한 물건을 볼 수 있으나 길을 잃기 쉬우니 몇번 출구로 들어왔는지 지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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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스만제국의 융합력이 잘 드러난 것은 성소피아 성당(아야소피아)와 술탄아흐메드 모스크(블루모스크)다. 아야 소피아는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인 걸작인 대성당이다. 새 정복자는 이 아름다운 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모스크로 바꿔버린다. 그리고 한 술 더 떠 이 독창적인 건축기술을 모방해 바로 건너편에 파란색 타일로 치장한 술탄아흐메드 모스크를 짓는다.

동서문명의 교류와 융합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 성소피아 성당 동서문명의 교류와 융합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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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지어졌으며 블루모스크로 불린다.
▲ 술탄아흐메드 모스크 17세기 지어졌으며 블루모스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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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이렇게  자신들의 전통문화에 주변 선진문물이나 정복지의 문물을 흡수하고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실크로드는 그들에게 늘 새로운 외래 문물을 전달하는 통로였다.
 
그들이 지킨 건 나무가 아니다

"저 나무들을 봐."

탁심광장을 지나며 친구들은 한 공원의 나무를 가리켰다. 몇몇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저 나무가 자신들이 지켜낸 나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2013년 6월에 있었던 반정부 시위의 이야기다.

"우리는 경찰차에 불을 질렀어. 물대포에 온 몸이 젖은 채로 탁심광장에 갇혀있었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어. 서로 물과 먹을 것을 나누면서 말이야."

친구들은 그때의 무용담에 열을 올렸고, 집회와 시위의 나라에서 온 나는 그저 팔짱을 끼고 웃으며 듣고 있었다.

시작은 게지 공원을 없애고 대형 쇼핑몰을 짓는 것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의 시위였다고 한다. 당시 총리였던 에르도안은 시위자들과 대화하지 않고 오히려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그동안 시위대는 점차 늘어갔다. 귀국한 에르도안은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사용해 강경대응을 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부상을 입고 사망자도 생겼다. 시위는 곧 광역적인 반정부 시위로 발전했다.

2013년 반정부시위의 시작은 게지공원의 나무를 지키기 위한 시위였다
▲ 게지공원 2013년 반정부시위의 시작은 게지공원의 나무를 지키기 위한 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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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이곳에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있었다
▲ 탁심광장 2013년 이곳에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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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을 움직인 이유는 물론 경찰의 과잉진압이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터키는 1923년 무스타파 케말에 의해 정교분리에 기반을 둔 공화국이 되었다. 그러나 2002년 이슬람주의 정당인 정의개발당이 집권했다. 그 후 정의개발당은 3연임을 하면서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나가는 한편, 점점 시민의 자유를 억압해갔다.

현 정부는 주류판매를 규제하고, 여성의 히잡 착용을 강화했으며, 대학과 경기장에 경찰부대를 신설했다. 한편, 한 예술가가 트위터에서 이슬람교를 비하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환경운동가들의 시위가 반정부시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집권당의 억압적이고 독선적인 통치 때문이었다.

반정부 시위 2년 후인 2015년 6월, 정의개발당은 집권 13년 만에 총선에서 과반의석확보에 실패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정부의 시위진압용 물대포 차량 제조업체의 주가가 폭락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심 고소해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훈훈하게 끝나지 않는다. 5개월 후, 다시 변수가 생겼다.

지난 11월 2일 치러진 총선에서 정의 개발당이 다시 압승을 거뒀다. 예상치 못한 승리였다. 이 승리의 이면에는 IS 테러와 물대포가 있었다. 선거를 앞둔 10월 10일,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IS 조직으로 추정되는 테러 집단에 의한 테러사건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집권당은 유권자들에게 테러의 공포에 호소하는 한편, 반 정부성향의 언론사와 시위대에는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탄압했다. 결국 안보에 위협을 느낀 유권자들는 다시 보수성향의 정의개발당에 표를 몰아주고 말았다. 그들의 공포정치가 통했던 것이다.

이렇게 장기집권을 노리는 집권당에 맞선 터키 민주화 시위는 결국 물대포와 안보논리앞에 무너졌다. 친구에겐 '넌 물대포 차량 주식 떨어졌을 때 안사두고 뭐했냐'고 농담을 건넸지만, 민주화를 열망하며 물대포에 맞서 하나가 되었던 그들을 생각하니 착잡해졌다. 비단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역시 6월 민주항쟁을 통해 군부세력의 장기집권을 막고 민주화를 이루어 냈던 시절이 있다. 그런 시절이 있었음에도 아직도 우리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목소리는 물대포로 진압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물대포를 쏘아도 그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발자취만큼은 씻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스탄불의 두 여자아이

이스탄불에서 로마로 떠나는 날. 친구는 공항에서 게이트가 바뀔 수 있다며 반드시 체크하라고 신신당부 했다. '비행기 1~2년 타고 다닌 것도 아니고...' 한 귀로 흘려들었다. 공항에 도착해 티켓에 적힌 게이트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탑승했겠네, 지금 비행기 안이야?"
"음? 아직 탑승 시작안했는데..."


출발 15분 전인데 아직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저가항공의 경우 출발시간 바로 전에 게이트가 오픈되는 경우도 있었기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뭐랬어! 게이트가 바뀔 수도 있다니까! 빨리 확인해봐."

짐을 챙겨 들고 대기실을 나와 전광판을 확인하니 친구 말대로 게이트가 바뀌었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하필 저쪽 끝이다. 전력질주로 도착했지만 이미 게이트는 닫혔다. 억울한 마음에 난 비행기 티켓에 적힌 게이트 대기실에 있었다며 따져보았으나 항공사 쪽 반응은 냉정했다. 게이트가 바뀐 후 내 이름을 세 번 방송했으니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는 거다.

결국 생돈을 들여 다시 비행기를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수하물로 부친 내 짐 역시 비행기에 타지 못하고 다시 나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스탄불 공항은 게이트 변경이 잦다고 했다.

친구에게는 차마 연락도 못하고, 공항에서 다시 시내로 향했다. 여행자 숙소가 많은 술탄아흐멧지구에 내려 기운 없이 걷는데 삐끼들이 말을 건다. "이스탄불에 온 걸 환영해", "어서와, 이스탄불은 처음이지?" 화가 나지만 대꾸할 기운도 없다.

이스티클랄거리를 관통하는 미니트램이다
▲ 이스티클랄 빨간 트램 이스티클랄거리를 관통하는 미니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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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전환 삼아 이스탄불의 명동인 이스티클랄 거리로 나왔다. 이번엔 길을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칠 뻔 했다. 긴 금발머리에 엘르 페닝을 닮은 예쁜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시종일관 고개를 치켜들고 눈을 감고 비틀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이상했다. 이번에는 한 남성과 부딪히더니 상가 전면유리창에 부딪히기도 했다. 위험하다 싶어서 따라갔다.

"너 괜찮니? 이름은 뭐니?"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에이반이야."


앙카라에서 온 에이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아이는 나를 껴안고 반가움을 표했다. 여전히 눈은 감은 채다. 술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이대로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맥도날드로 데려가서 앉혀놓으려 하는데, 누가 경찰을 불렀는지 경찰차가 다가왔다. 경찰은 바로 그녀를 알아보고 경찰차 안에 태웠다. 그녀는 한사코 차 밖으로 빠져나오며 나를 붙들고 늘어졌다.

"나는 행복한데, 도대체 너는 행복하니?"

그녀가 사라지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데 주변 터키인들이 내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아마 마약에 취해 있었을 거야." 요즘 터키엔 대마보다 7배나 강한 신종 마약이 문제라고 했다.
비행기를 놓치고 이스탄불에 더 있으며 방문했다. 사진은 그럴 듯 하지만 내 마음은 비참했다
▲ 갈라타 타워 비행기를 놓치고 이스탄불에 더 있으며 방문했다. 사진은 그럴 듯 하지만 내 마음은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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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 비가 내려 축축한 길바닥에 6, 7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담장 아래에서 삑삑거리며 피리를 불고 있었다. 구걸을 하는 시리아 난민아이였다. 터키는 IS 내전이 발발한 시리아 북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뜻밖에 여자아이 둘을 만났다
▲ 비행기를 놓친 날 이스탄불에서 뜻밖에 여자아이 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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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라를 놓으며 아이 옆에 앉으니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카메라에 관심을 보여 찍는 법을 알려줬더니 즐거워하며 몇 장을 찍었다. 과자도 나눠먹고 동영상도 찍어 돌려보며 재미있게 놀았다. 비가 거의 그쳐가고 다시 거리에 사람들이 지나가자, 아이는 급히 피리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돈 벌어야하니까 그만 가라는 거다.

얼떨결에 쫓겨났다. 숙소로 돌아와 아이가 찍은 사진을 봤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이 찍혀있었다. 아이는 하루 종일 이곳에 앉아 보는 풍경이다. 저 무심히 지나가는 발들 중 몇 명이나 길을 멈추고 아이에게 관심을 가질까. '차라리 나한테 돈을 더 달라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편이 확률이 높지 않은가. 잠시라도 옆에 멈춰 주고 호의를 보여주는 사람에게 기대고 매달리는 편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다시 아이를 찾으러 갔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없었다.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본다. 그리고 아이가 보는 세상은 이런 곳이었다.
▲ 난민아이가 찍은 사진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본다. 그리고 아이가 보는 세상은 이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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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 비행기를 놓친 날, 두 명의 여자아이를 만났다. 한 여자아이는 눈을 감고 두 팔을 휘저으며 환각을 보고 있었고, 다른 여자아이는 지나가는 이들을 향해 집요하게 피리를 삑삑 불고 있었다. 환상과 현실사이, 이미 어른인 나는 그 경계를 여행하고 있다. 부디 그 여자아이들이 별일 없이 어른이 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태그:#실크로드, #터키, #이스탄불, #순수박물관, #게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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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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