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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국토대장정 주최자인 이운영씨가 아닌, 제3자인 기자가 현장 동행 및 전화 인터뷰 등 밀접한 취재를 통해 작성했습니다. 에피소드 부분은 인터뷰를 참고해 이운영씨의 시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기자 말

광복절 아침 태극기가 꽂힌 자전거들이 오가는 공원 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런데 다들 운동을 하러온 것은 아닌 듯하다. 그곳에선 누군가를 위한 격려와 응원의 말들이 오가는 중이다. 누구를 위한 응원이었을까? 그들 사이에서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여분의 운동화까지 매달린 거대한 배낭을 메고 있다. 아주 먼 길을 떠날 예정인지 두 눈빛에 기대감이 가득하다.

백혈병환우 희망나눔 프로젝트 '아름다운 동행', 15일간의 국토대장정의 출정식을 기념하기 위해 이운영·권용욱씨의 가족과 동료, 그리고 백혈병환우회의 대학생 서포터즈 ‘반딧불이’가 한자리에 모였다.
 백혈병환우 희망나눔 프로젝트 '아름다운 동행', 15일간의 국토대장정의 출정식을 기념하기 위해 이운영·권용욱씨의 가족과 동료, 그리고 백혈병환우회의 대학생 서포터즈 ‘반딧불이’가 한자리에 모였다.
ⓒ 이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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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 아침 10시 서울 광나루역 인근의 자전거 공원에서 희망나눔 프로젝트 '아름다운 동행', 서울-부산 국토대장정의 출정식이 이뤄졌다. 이날 국토대장정은 서울 광나루에서 출발해 부산 해운대까지 15일에 걸쳐 도보로 610km를 이동한다.

이 국토대장정은 백혈병 환우들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는 조혈모세포 기증자 모집과 어린이들의 한 달분의 식량을 후원하는 너리시더칠드런(NTC) 후원자 모집을 위해 이운영(37)씨가 계획했다.

이운영씨는 7년 전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고 1년간 투병생활을 했다.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뜻하지 않은 고난에 마주친 그는 이루지 못한 많은 꿈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 큰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 기대치 않았던 주위의 도움들이 큰 희망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물론 그중 가장 큰 도움은 그에게 전해진 조혈모세포(골수)이식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한 27살 청년에게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아 새 생명을 누리게 된 그는 자신이 받은 만큼 아픈 사람들을 위해 돕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건강을 되찾은 뒤 처음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그의 희망나눔 프로젝트의 첫 단계인 국토대장정을 통한 조혈모세포 기증자 모집이다.

조혈모세포이식은 혈액암 환자의 암세포와 조혈모세포를 제거한 뒤 건강한 타인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해 질병을 완치시키는 치료법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아 선뜻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드물다.

이운영씨는 조혈모세포이식이 예전처럼 고통스러운 방법이 아니라, 일반 헌혈 방식과 유사한 방식인데도 홍보가 잘 안되어 백혈병환자들이 크게 도움을 못 받고 있다는 점을 아쉬워 했다. 그는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생명과 희망을 나누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준비과정, 의지 다지는 계기 돼

이운영씨가 맨 처음 국토대장정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주위에서 우려의 말들을 먼저 꺼냈다. 백혈병에서 완치된 후 검증되지 않은 그의 몸 상태 때문이었다. 그는 백혈병 완치 이후뿐만 아니라 태어나서 이 정도의 강행군을 해본 적이 없다. 당연히 국토대장정은 처음이다.

그리고 아직 그 외에는 다른 참가자도 없는 것도 이유였다. 그때 다행히 이운영씨의 지인인 권용욱(44)씨가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차 휴일을 전부 써서 동참하겠다는 말에 이운영씨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 외의 준비과정도 홀로 계획하는 것이니만큼 쉽지는 않았다. 우선 코스를 짤 때 차량의 호위를 받을 수가 없어 최대한 국도를 배제하고 자전거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자 총 거리가 100여 km가 늘어났다.

아마 전례가 없어서일까? 자전거도로를 이용한 국토대장정의 정보는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600여 km의 긴 코스라 자전거도로를 이용한 사람이 없는 듯하다. 비공식적으로 어쩌면 그가 국내 최초의 자전거도로 국토대장정의 선구자가 되는 셈이다. 막막한 상황일 텐데도 오히려 그는 "계속 모험하는 느낌으로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고 말했다.

희망나눔 프로젝트 '아름다운 동행', 국토대장정을 떠나기 전 삭발식을 거치는 이운영씨와 권용욱씨
 희망나눔 프로젝트 '아름다운 동행', 국토대장정을 떠나기 전 삭발식을 거치는 이운영씨와 권용욱씨
ⓒ 이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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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출정식은 응원도 응원이지만 두 사람의 삭발식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백혈병 투병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가 다시 의지를 새롭게 하겠다는 이운영씨의 결심이었다. 그의 동료인 권용욱씨도 삭발에 동참했다. 두 사람은 사람들과 한차례 씩 격려의 말을 주고받은 뒤 국토대장정의 첫발을 뗐다.

백혈병환우 희망나눔 프로젝트 '아름다운 동행', 15일간의 국토대장정을 떠나는 이운영씨(우) 일행
 백혈병환우 희망나눔 프로젝트 '아름다운 동행', 15일간의 국토대장정을 떠나는 이운영씨(우) 일행
ⓒ 이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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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15일간의 에피소드

(아래의 이동거리는 대략의 직선거리입니다.)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1일차
이동거리 : 서울시 광나루 자전거 공원 ☞ 양평군 양수리 29km

(저녁) 출발 당일은 늦어진 출발 시각 때문에 30km 채 걷지 못했다. 낮 시간에 출발했기 때문에 날씨가 상당히 덥다. 시작부터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늦지 않은 저녁에 숙소를 잡았다. 내일부터는 낮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오전 6시부터 걸어야 한다. 아직 나도 용욱(권용욱)씨도 몸상태는 양호하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걸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 긴장이 된다.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2일차 
이동거리 : 양평군 양수리 ☞ 양평군 개군면 30km

(아침) 오전 5시에 기상했다. 몸은 가뿐했는데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있다.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 저녁 전까지 최대한 많이 걷기 위해 오전 6시부터 걸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정으로 걷게 될 것 같다. 휴대폰을 보니 수많은 응원 메시지가 와있다. 아직 초반인데 기운을 내야겠다.

(저녁) 결국 오늘도 30km를 넘지 못했다.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물집 때문인가 싶다. 오늘은 중간에 자전거도로가 끊겨 한동안 국도로 걸어야 했다. 한참 걸려 다시 자전거도로를 찾았는데 역시 거리가 멀더라도 자전거도로가 안전하다. 용욱씨와도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힘이 드는지 점점 대화가 줄어든다. 중간중간 '이제 2일차인데 이 상태로 완주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때마다 국토대장정 후원자분들과 우리를 응원해주는 분들의 모습을 떠오르면서 앞만 보고 걸었다.

하남시 부근에서 충주시까지 이어지는 남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국토대장정을 종주 중인 이운영씨 일행.
 하남시 부근에서 충주시까지 이어지는 남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국토대장정을 종주 중인 이운영씨 일행.
ⓒ 이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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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3일차 
이동거리 : 양평군 개군면 ☞ 여주시 25km

(아침) 6시에 도보를 시작했다. 어제 물집으로 고생한 덕에 지쳐 쓰러지듯 잠이 들면서 덕분에 숙면을 취했다. 그래서 그런지 발바닥 물집이 많이 좋아졌는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좌측 골반에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산 넘어 산이다. 결국 2시간도 걷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용욱씨가 중간중간 마사지로 골반을 풀어주지만 걸을수록 통증이 커지는 것 같다.

(저녁) 걷던 중간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끈으로 골반을 고정시켰다. 다소 자세는 불편하지만 통증은 훨씬 줄어든 느낌이다. 완주의 꿈을 달성하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보다. 어느덧 여주시에 도착했다. 일단 대장정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용욱씨도 잘 버텨주고 있는 것 같다.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4일차 
이동거리 : 여주시 ☞ 충주 비내섬 45km 

(아침) 어제 도보 막바지에 일부 물건을 택배로 집에 보냈던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짐이 20kg에서 5kg정도로 줄었다. 덕분에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미련하게 너무 많이 짐을 들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 부족했던 이동거리를 늘려야한다. 중간에 부산에서부터 서울로 국토대장정 중이라던 한 사람을 만났다. 원래 친구 4명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혼자 남았다고 한다. 우리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듯하다.

(저녁) 오늘은 충주시에 도착했다. 밤 10시까지 무려 45km를 걸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오늘은 중간에 응원단의 깜짝 방문이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직장동료, 그리고 현지의 지인들이 격려차 방문한 것이다. 갑자기 힘이 난다. 응원도 응원이지만 아내가 집에서 평소에 신던 운동화를 가져왔다. 물집이 해결될 수 있을까?

-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5일차 
이동거리 : 충주 비내섬 ☞ 충주시 38km 

(아침) 신발을 바꿨지만 이미 자리 잡은 물집으로 인해 계속 고통스럽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용욱씨의 발에 잡힌 물집에 염증이 생기면서 발목까지 붓는 바람에 용욱씨는 가까운 보건소로 이동했다. 당분간은 혼자서 행군을 해야 한다.

(저녁) 혼자 걷는 길이 너무나도 외롭고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행군을 이어갔다. 외로움이 더해져서인지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오늘은 충주시를 넘어왔고 40km를 걸었다. 그래도 처음보다 걸음에 속도는 붙은 듯하다.

-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6일차 
이동거리 : 충주시 ☞ 문경 37km 

(아침) 어제의 발 상태로는 오늘 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오늘 첫발을 내디뎠더니 '어라? 걸을 만하네?'라는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양호해서 문경새재도 훌쩍 넘어갔다. 드디어 행군에 몸이 적응해버린 것 같다. 희소식이다.

(저녁) 안타깝게도 어제 발목 통증을 호소했던 용욱씨는 염증 때문에 발이 너무 부어 결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일단 치료가 우선이기에 회복되면 다시 합류하기로 기약했다. 당분간 홀로 걷겠지만 이제 익숙해진 듯 그다지 외롭지 않다.

-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7일차 
이동거리 : 문경 ☞ 상주 32km 

(아침) 어제 밤부터 내리던 비가 오늘 오전까지 이어져, 덕분에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긴 휴식을 취해서인지, 발바닥 상태가 좋아진 듯하다. 정오에서야 출발해 오늘은 좀 늦게까지 걸어야 한다. 중간에 들린 식당의 흑돼지 김치찜이 일품이었다. 매번 맛집에 들릴 수는 없지만 가끔씩 이런 기쁨이 있어서 다행이다.

(저녁) 문경시내를 지나 상주로 넘어가면서 드디어 낙동강 줄기를 따라 내려가고 있다. 강바람을 맞으니 조금 더위가 가시며 기분이 좋다. 낙동강 줄기를 따라 남은 700리는 비교적 즐겁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슬슬 완주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아름다운 동행’ 국토대장정 중 낙동강 주변을 종주 중인 이운영씨
 ‘아름다운 동행’ 국토대장정 중 낙동강 주변을 종주 중인 이운영씨
ⓒ 이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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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대장정 '아름다운 동행' 8일차 
이동거리 : 상주 ☞ 구미 38km 

(아침) 오늘은 걸어보니 물집이 별로 아프지 않다. 대신 다른 데가 아프다. 허벅지 안쪽 살들이 엄청나게 쓰라리다. 하루 종일 걸으니 예상되었던 고통이었지만 물집과 시간차로 닥쳐온 것이 좀 얄밉다. 100% 좋은 컨디션으로 단 하루를 걸어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맘에 꼭 들지 않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희소식은 오늘 아침 내 유일한 동반자인 용욱씨가 다시 합류했다는 것이다. 다시 얼굴을 보니 힘이 난다.

(저녁) 오늘은 불토의 밤이다. 평소였으면 아내와 술 한잔하는 여유를 즐겼을 테지만 오늘은 열심히 걷기만 했다. 밤 9시 반까지 40km를 아쉽게 못 채운 38km로 오늘 하루를 마감했다. 내일부터 40km 찍는 것이 목표다.



※ 15일간의 에피소드 9일차에서 15일차까지는 2편에서 연재됩니다. 2편에서는 두 사람의 국토대장정의 완주여부 결과와 함께 자전거도로 국토대장정의 노하우들이 공개됩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국토대장정의 기사는 국토대장정 주최자인 이운영씨가 아닌, 제3자인 기자가 현장 동행 및 전화 인터뷰 등 밀접한 취재를 통해 작성했습니다. 에피소드 부분은 인터뷰를 참고해 이운영씨의 시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태그:#이운영, #백혈병환우회, #조혈모세포, #골수이식, #국토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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