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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여행지가 말레이시아로 정해졌을 때, 서로 생각이 달랐다. 중1 아이는 가급적 여러 모스크를 찾아가 보자고 했고, 아내는 관광지보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다. 아이는 낯선 무슬림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반면, 아내는 누가 기술가정 선생님 아니랄까봐, 다양한 말레이시아 음식을 두루 먹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달랐다. 다문화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다. 좋든 싫든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변모할 테고,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을 말레이시아 곳곳을 여행하며 머릿속에 그려보고 싶었다. 비록 어쭙잖을지언정,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 관한 한, 말레이시아의 '현재'가 어쩌면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레이시아의 관문은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지만, 나의 최종 목적지가 믈라카였던 이유다. 15세기 초 이슬람교를 수용하며 들어선 믈라카 왕국. 그로부터 불과 한 세기 만에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400년이 넘도록 수많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동방 진출 전진 기지로 전락한 쓰라린 역사의 현장이다. 흔히들 말레이시아의 역사는 믈라카 왕국 건국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19세기 이후 조성된 쿠알라룸푸르는 말할 것도 없고, 말레이시아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랑카위나 코타키나발루, 쿠칭 등에는 역사 유적이 거의 없다. 옛 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 도시 피낭조차도 믈라카에 견주면 '신도시'에 가깝다. 쿠알라룸푸르에 수도라고 있는 국립박물관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믈라카 하나면 그걸로 족하다.

말레이시아 역사가 궁금해? 믈라카 하나면 족하다

믈라카 여행이 시작되는 곳. 정면의 크리스트 교회 오른편의 큰 건물이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네덜란드식 건축인 스타더이스다.
▲ 네덜란드 광장 믈라카 여행이 시작되는 곳. 정면의 크리스트 교회 오른편의 큰 건물이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네덜란드식 건축인 스타더이스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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믈라카 여행은 네덜란드 광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곳은 시대와 동서양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이다. 광장 앞 너비가 고작 20~30 미터에 불과한 믈라카 강을 사이에 두고 판이한 모습이 펼쳐진다. 광장 주변은 '유럽'이지만, 강 건너편은 영락없는 '중국'이다. 수백 년 간의 동서양의 역사가 공존하는 공간이며, 말레이시아 사회의 성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현장이다.

자못 근엄하게 물을 뿜고 있는 빅토리아 분수를 중심으로 붉은 벽돌 건물들이 에워싼 네덜란드 광장에 서면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최초의 제국주의 침략자 포르투갈로부터 네덜란드와 영국의 지배를 거치며 그들 각자의 건축 문화를 겹겹이 이식시켜 놓았다. 광장의 주인은 수시로 바뀌었을지언정 유럽풍은 더욱 강화된 셈이다.

복도에 믈라카를 침략한 제국주의 열강들을 시대순으로 배열해놓았다. 사진 맨 왼쪽이 포르투갈이고, 오른쪽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쳐들어온 일본이다.
▲ 스타더이스 내부 모습 복도에 믈라카를 침략한 제국주의 열강들을 시대순으로 배열해놓았다. 사진 맨 왼쪽이 포르투갈이고, 오른쪽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쳐들어온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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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이름이 네덜란드로 불리게 된 것은 주변에 17~18세기 경 네덜란드 지배기 당시에 세워진 건물이 많은 까닭이다. 정면의 크리스트교 교회와 지금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스타더이스 등이 대표적인 예다. 건물의 형태도 이국적이지만, 온통 붉은 빛의 벽과 지붕, 돔형의 하얀 나무 창문 등이 독특한 풍광을 연출한다. 믈라카를 대표하는 '포토 존'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네덜란드식 건물로 알려진 스타더이스는 원래 총독의 관저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독립한 후 한때 시청사로 쓰일 만큼 믈라카의 중심이었던 이곳은 지금 제국주의 시대의 역사 유물을 시대별로 전시해놓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여느 박물관과 별반 다를 바 없어 조금은 식상하지만, 정작 이곳의 눈에 띄는 볼거리는 건물 밖에 있다.

스타더이스에서 세인트폴 언덕 오르는 길목에 서 있다. 스타더이스 지붕 너머 믈라카의 차이나타운인 존커 스트리트 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 명나라 환관 제독, 정화의 동상 스타더이스에서 세인트폴 언덕 오르는 길목에 서 있다. 스타더이스 지붕 너머 믈라카의 차이나타운인 존커 스트리트 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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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관람 후 나무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가면 세인트 폴 언덕에 오르는 길로 이어지는데, 그곳 길목에 생뚱맞은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ㄷ'자 형 스타더이스 건물에 포위된 형국이지만, 그 당당한 자세만큼은 스타더이스를 비웃는 듯하다. 15세 초 수백 척의 선단으로 인도양을 섭렵하고 아프리카 동부 해안까지 이르렀던 명나라의 환관 제독, 정화의 동상이다.

16세기 이후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에 매몰돼, 하마터면 '정화의 남해 원정'이라는 역사를 놓칠 뻔했다. 정화는 15세기 초부터 근 30년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중국의 바닷길을 열었다. 그가 이끈 대규모 선단이 이곳을 처음 통과한 때는, 공교롭게도 믈라카 왕국이 건국된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그런데, 지금껏 들른 어느 박물관에서도 정화의 이야기를 만나지 못했다. 그들이 남긴 문화의 흔적이 없을 리 없을 텐데 말이다.

포르투갈이 세운 성당으로, 네덜란드 지배 시기에는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주변 곳곳에는 당시의 무덤과 묘비가 세워져 있다.
▲ 폐허가 된 세인트폴 교회 포르투갈이 세운 성당으로, 네덜란드 지배 시기에는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주변 곳곳에는 당시의 무덤과 묘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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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간 식민지 쟁탈 전쟁의 흔적인 파괴된 세인트 폴 교회와 산티아고 요새를 찾아가는 길이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정화의 동상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여느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전쟁과 약탈을 통해 이 땅을 빼앗고 지배하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말레이시아 역사의 시작이라는 믈라카 왕국이 그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은 까닭일까.

괜한 고민이었다. 서양 제국주의가 이곳에 파괴된 건축물과 같은 전쟁의 흔적과 교회와 같은 종교 시설 등을 가득 남겼다면, 정화의 중국은 '사람'과 그들의 '삶'을 믈라카에 심어 놓았다. 박물관 내부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일본이 돌아가며 지배해온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바깥은 중국의 어느 도시라 해도 무방할 믈라카의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믈라카 여행의 '정석', 존커 스트리트 즐기기

믈라카의 차이나타운으로, 정화를 기리는 쳉훈텡 사원과 바바뇨냐 박물관 등 중국식 볼거리가 풍부하다. 말레이어나 영어를 거의 들을 수 없는 믈라카 내의 중국이다.
▲ 존커 스트리트의 모습 믈라카의 차이나타운으로, 정화를 기리는 쳉훈텡 사원과 바바뇨냐 박물관 등 중국식 볼거리가 풍부하다. 말레이어나 영어를 거의 들을 수 없는 믈라카 내의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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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가운데 붉은 지붕의 낮은 건물이 밀집된 곳이 존커 스트리트다. 앞으로 믈라카강이 보이는데, 남쪽 '유럽'과 북쪽 '중국'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존커 스트리트 사진 가운데 붉은 지붕의 낮은 건물이 밀집된 곳이 존커 스트리트다. 앞으로 믈라카강이 보이는데, 남쪽 '유럽'과 북쪽 '중국'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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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광장으로부터 시작된 믈라카 여행은 대개 '존커 스트리트'에서 끝난다. 공식 명칭은 거리라는 뜻의 말레이어인 '잘란'과 말레이시아의 역사 인물인 '항 제밧'의 이름을 딴 '잘란 항 제밧'이지만, 택시 기사 등 현지인들조차 별칭에 더 익숙하다. '존커(Jonker)'는 중국의 범선인 '정크(Junk)'에서 유래된 말로, 정크선을 타고 와 이곳에 정착한 중국인들을 일컫는다.

요즘 말로 차이나타운인 셈인데, 길가에 중국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고,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중국 사찰인 쳉훈텡 사원과 중국계 모스크도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낮에 네덜란드 광장과 세인트 폴 언덕을 거닐며 '유럽'을 만끽한 후, 밤엔 강 바로 건너 존커 스트리트에서 '중국'을 즐기는 것이 관광책자마다 소개된 믈라카 여행의 '정석'이다.

듣자니까, 믈라카를 찾는 관광객의 절반 이상은 중국인이며, 근래 들어 그 수가 더 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마치 명절 때 고향이라도 찾아온 듯, 상인들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눴다. 서로 외모가 비슷해 누가 주인이고 관광객인지 잘 구별되지 않았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말레이어나 영어보다 중국어를 더 쉽게 들을 수 있었고, 심지어 식당에서도 중국어로 주문을 받고, 메뉴판에도 중국어가 맨 앞자리였다.

존커 스트리트 한복판에 생소한 이름의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바바뇨냐' 박물관. 원주민인 말레이인과 이주민인 중국인의 혼혈을 이르는 말로, '바바'는 남성, '뇨냐'는 여성을 가리킨다. 이름은 박물관이지만, 그들이 지은 수백 년 된 중국식 목조 가옥으로 그 일부를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그 후손들이 가이드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바바뇨냐'는 원주민과 백인 이주민의 혼혈인 남아메리카의 메스티소쯤으로 비유될 수 있겠지만, 그와는 다른 독특한 면이 있다. 여느 대륙의 혼혈과는 달리, 이주민인 중국인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건축 구조부터 내부 집기, 장식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중국식 아닌 게 없었다. 그 어디에도 말레이인들의 '자취'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른바 '페라나칸' 스타일이라는 요리 문화도 중화요리에 열대기후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것일 뿐, 중국인과 말레이인의 전통이 융합된 것이라는 설명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공통된 문화적 특징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주지하다시피, 동남아시아는 흔히 인도차이나로 곧잘 불린다.

믈라카, 나아가 말레이시아의 다인종, 다문화적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으로 소개돼 있지만,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 중 그렇게 느끼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고 간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굳이 아니더라도, 이곳을 찾은 서양인도, 일본인도, 똑같은 탄성을 내지른다. "중국인들 정말 대단하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감탄사였지만, 내겐 섬뜩하게 들렸다. 어느 누구도 '바바뇨냐'를 중국인과 달리 여기지 않은 것이다. 마실 다니듯 존커 스트리트를 거닐며, 말레이시아의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습까지도 어렴풋하게나마 들여다보게 됐다. 섣부르지만, 믈라카는 말레이시아가 시나브로 중국으로 변모해가는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수백 년 전 제국주의 열강들이 줄기차게 침략해온 길목이라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평온하다.
▲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믈라카 해협 수백 년 전 제국주의 열강들이 줄기차게 침략해온 길목이라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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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오르니 믈라카 해협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내심 믈라카 해협을 보며 말레이시아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저 멀리 해협 너머 수마트라 섬이 아스라이 보이고, 컨테이너 박스를 가득 실은 상선과 거대한 유조선이 띄엄띄엄 지나가고 있다. 수백 년 전 제국주의 열강들이 줄기차게 침략해온 길목이라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평온하다.

우리 역사와도 무관치 않은 곳이다. 벨테브레와 하멜 등 우리나라에 들어온 수많은 서양인들이 여길 거쳐 왔을 테고, 일본의 조선 병합이 사실상 결정된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의 군함이 수개월 동안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힘겹게 통과한 곳도 이곳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수입하는 원유의 대부분도 이 바다를 통과해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니 한 무리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그들의 빨간 색 모자챙에 적힌 글귀가 눈에 띄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바다와 대륙에 새로운 실크로드 경제권을 조성하겠다는 중국의 국가전략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이 전망대에 올라 믈라카 해협을 내려다보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알기 위해 부러 찾은 믈라카에는 '중국'만 가득했다. 여행책자에는 말레이시아의 과거를 만나려면 믈라카에 가야한다고 했지만, 나는 되레 그곳에서 말레이시아의 '미래'를 보았다.


태그:#가족여행기, #베트남,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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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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