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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남북 협상 지휘하며 "눈에 실핏줄 터졌다" (연합뉴스 26일 보도 제목)
└RE: 난 맨날 터지는 게 핏줄이야(글** 베스트댓글, 추천356 반대24)
└RE: 용비어천가 딸랑딸랑 딸랑숑(hom**** 베스트댓글, 추천293 반대21)


지난 20여일 간 극적인 남북관계는 무엇을 남겼나. 포털 메인을 거의 독점한 <연합뉴스>는 높은 조회수와 수익을 남기진 않았을까. '속보' '사실 위주' '짧은 글'을 무기로 이슈를 장악하는 그들은 스스로 "사실에 바탕을 둔 공정하고 균형잡힌 보도"를 한다고 소개한다. 물론 이것은 기성언론들의 낯익은 상투어다.

정부로부터 돈과 공적 지위까지 보장받는 이 '국가기간통신사'는, 민간 포털에 뉴스를 공급해 수익을 얻는 행위를 이렇게 합리화한다. 국가기간통신사가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지 않으면, "객관적인 기사가 포털에 배제"돼 "조간신문이 이슈를 장악하는 아침 시간대와 방송이 이슈를 장악하는 저녁 시간대를 제외하고, 낮 시간대에는 극단적이고 편향된 주장을 일삼는 매체들의 기사가 포털을 도배해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것.

"이슈를 장악"해야 한다는 노골적 독과점 의식과, 자신들과 낮 시간대 매체를 균형과 편향으로 나누는 거만한 태도는 잠시 차치하자. 다만 이 질문 만큼은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그 편향과 균형의 눈금은 누가 결정하는가.

인간은 선택한다. 기자들은 인간이다. 그러므로 기자들은 선택한다. 기자는 독자들이 '보고싶어 하는 것' 그리고 독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과 '보여주고 싶은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 <연합뉴스>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도 주관적이다.

어떤 언론이든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실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름의 균형을 찾는다. 이때 '사실과 균형'이라는 알리바이는 얼마나 공허한 말인가. 이미 고민됐어야할 것은 편향 자체가 아니라, 어떤 편향이 우리 삶에 봉사하느냐다.

"저널리스트들은 적절한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것이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흔히 사실은 스스로 이야기한다고들 말한다. 이것은 물론 진실이 아니다." - 에드워드 헬릿 카(<더 타임즈> 전 부편집인,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누구를 위한 기사를 썼나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법> 지정 '국가기간뉴스통신사'다. 정부로부터 공적 지위 인정과 재정 지원을 받는 동시에, 포털·신문 등 민간에 뉴스를 공급하고 수익을 얻고 있다. 포털 뉴스 공급행위에 대하여, <연합뉴스>측은 "국민 정보복지 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법> 지정 '국가기간뉴스통신사'다. 정부로부터 공적 지위 인정과 재정 지원을 받는 동시에, 포털·신문 등 민간에 뉴스를 공급하고 수익을 얻고 있다. 포털 뉴스 공급행위에 대하여, <연합뉴스>측은 "국민 정보복지 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 연합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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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좀 더 솔직한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연합뉴스>는 남북대치 20여일 간 '누구를 위한 기사'를 썼나. 분명한 건 그들이 국민의 알 권리 증진에 어느 정도 기여했고, 스스로의 욕망 대로 "이슈를 장악"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짐짓 점잖아 보이는 그들도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숨기진 못했나 보다.

'실핏줄 대서특필'의 민망함은 차치하더라도, <연합뉴스>가 선택적으로 보여준 사실들은 이랬다. SNS 상에서 전투복을 착복하고 국가에 전쟁불사를 외치며 전쟁준비 완료를 보고하는 청년들을 보여줬다. 자발적으로 전역을 연기 하는 장병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또 보여줬다.

그러나 자신들의 삶의 방향을 국가라는 실체없는 상상적 권력이 멋대로 결정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데는 인색했다. 단지 한 누리꾼의 "누구를 위해 참전한단 말이냐"는 취지의 짧은 인상 비평 정도를 형식적으로 그리고 영향력 없이 보여줬을 뿐이다(27일자 보도). 그리고 이 상황은 종국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높아진 지지율을 보여주는 일로 수렴됐다.

세뇌가 아닌 '나이팅게일의 새' 역할을 해라

미디어이론가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사람들의 감각비율 내지 지각패턴이 달라지면, 개인적·사회적 결과도 달라진다고 했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 인지과학자 파스쿠알-레오네는, 생각이 뇌신경 회로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그는 한 그룹의 피험자들에게 피아노 건반을 다섯 손가락으로 계속 치는 연습을 시켰고, 다른 그룹의 피험자들에게는 단지 상상으로만 피아노 건반을 치게 했다. 그리고 나중에 뇌의 운동피질 영역을 확인해보니, 두 그룹이 동일한 운동피질 영역과 운동 회로가 활성화 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최근 남북 군사대치 상황에 적용해보면, <연합뉴스>의 보도행태는 청년들의 운동회로를 언제든 '떡밥'이 도래하면 '전쟁불사'를 외치며 전투복을 착복하고 인증사진을 올리도록 학습시킬 우려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남북긴장을 고조시키는 매우 위험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국가가 개인의 몸에 '자발적 통제'를 가할 수 있음을 경고한 철학자 푸코의 경고는 유효해 보인다.

결국 <연합뉴스>의 보도행태는, 대놓고 '신안보세대' 프레임을 내세운 <동아일보>와 "위기상황 땐 국가 우선하는 2030의 변화된 모습" "북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을 운운하는 <국방뉴스>의 국가주의보다 훨씬 위험하다.

국가기간통신사로서 정부의 지원과 탄탄한 인프라와 취재인력을 등을 바탕으로, '사실과 균형'을 표방하며 신뢰를 얻는 <연합뉴스>. 그런 <연합뉴스>는 지난 20여일 간 국가주의, 응징론, 희생론, 황색저널리즘, 진영논리 등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온 기성언론들의 문제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관련 기사: "전쟁 불사", 보수언론의 위험천만한 선전선동).

아쉽게도 진보언론들은 남북대치 상황에서, 보수언론들을 견제하고 여론을 설득하는 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듯 보인다. 이것은 아마도 진보언론들이 자주 '미네르바의 부엉이' 역할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법철학>에서,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아오른다"고 했다. 아침부터 낮까지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그 즉시 관찰해선 모든 걸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므로, 휘몰아치는 정세 변화 속에서 한 걸음 '거리두기' 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말한다.

그래서 진보언론들은 자주, '속보' '사실 위주' '짧은 글'을 선호하는 언론들보다 '느리고' '논조를 숨기지 않으며' '한 호흡 긴 글'을 쓴다. 그러나 거기에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있고, 새 시대를 빠르게 전하며 날아드는 '나이팅게일의 새'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조망이 드러난다.

물론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나이팅게일의 새'중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건과 거리를 두든 뛰어들든 그것이 객관성을 즉시 보장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는 서로를 견제하는 동시에 상호보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합뉴스>의 보도행태는 아쉬웠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역사란 무엇인가>(E.H.카 / 까치 / 1997 / 9000원)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키스 젠킨스 / 혜안 / 1999 / 6000원)
<매체에 대한 철학적 분석: 맥루한의 매체론과 포스터의 정보양식론>(김성민 / 인문콘텐츠학회 / 2004)
<달라이라마 마음이 뇌에게 묻다>(샤론 베글리 / 북섬 / 2008 / 1만2000원)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새뮤얼 이녹 스텀프·제임스 피저 / 열린책들 / 2008 / 3만원)



태그:#연합뉴스, #미네르바의 부엉이, #나이팅게일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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