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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항일 독립운동가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에는 풀이 수북하게 자라있고 제단도 풀에 묻혀 있다
▲ 부덕량 무덤 1 해녀항일 독립운동가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에는 풀이 수북하게 자라있고 제단도 풀에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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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구좌읍 구좌리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 앞 건너편에 잠들어 있는 해녀 출신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을 찾아가는 날.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였다. 지난 8월 23일, 금방이라도 비가 퍼부을 듯한 날씨 속에서 구좌읍 하도리 425번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무덤이 있을 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근처에 가면 '애국지사묘역'이라는 안내판이 있겠라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토끼섬 맞은편 해안가 2차선 도로는 차를 세울 곳도 없었다. 가까스로 깜빡이를 켠 채 도로변에 세워 놓고 사방을 샅샅이 뒤지기로 했다. 대관절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은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 하지 않는 해안가 도로는 적막감에 쌓여 있었다. 관광객의 렌터카도 드물게 보일 뿐이라 딱히 어디다 물어 볼 상황도 못 되었다.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 뒤에서 보면 멀리 문주란섬(토끼섬)이 보인다
▲ 부덕량 애국기사 무덤2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 뒤에서 보면 멀리 문주란섬(토끼섬)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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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덕량 애국지사 무덤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토끼섬' 뿐이었다. 저 멀리 토끼섬을 기준으로 다시 해안가 언덕을 살피니 나지막한 풀 동산이 보였다. '혹시 저곳에?' 싶어 풀숲을 걸어 올라가니 거기에 하얀 돌비석의 머리가 조그맣게 보인다. 거기였다.

무덤에 이르는 길은 풀이 한 자나 자라 있었다. 최근에 다녀간 사람이 없는 듯 무덤의 비석에는 커다란 거미가 집을 지은 채 혼자 애국지사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아! 여기가 스물 한 살 꽃다운 나이에 제주해녀독립운동사에 획을 그었던 부덕량 지사의 무덤인가. 가슴이 뭉클했다. 부덕량 애국지사는 고문 후유증으로 스물일곱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제주 해녀 시위 기사 (동아일보 1932. 1. 26)
▲ 해녀 시위기사 제주 해녀 시위 기사 (동아일보 1932.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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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모진 고문 후유증은 생각보다 치명적이었다. 수원의 잔다르크 이선경 애국지사는 모진 고문 끝에 열아홉 나이로 순국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갖은 고초를 겪던 고수복 애국지사 역시 고문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22살의 나이로 순국했다. 독립운동사에서 옥사한 분 말고 고문으로 순국한 분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어 갔을까? 변변한 약이나 치료도 받을 수 없던 시절이 아니던가!

"나는 1931년 5월 일본 식민지 정책 하에서 제주도 해녀조합(당시는 제주도지사가 조합장 일을 장악하고 겸임)의 운영이라는 미명으로 해녀들이 어렵게 채취한 해산물을 일본인 주재원으로 하여금 일괄 수납시켜 부당하게 착취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우리는 일본인들의 강제적 침탈 행위의 중단을 수차 건의하였으나 시정되지 않자 구좌면 해녀 회원들이 단결할 것을 호소하며 직접 진정서(9개 항의 요구사항)를 작성하고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1932년 1월 7일 제주도사가 제주도 내 순시차 구좌면 세화리를 경유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당시 해녀회장인 나는 동료 김옥련, 부덕량에게 조직적으로 연락하여 구좌면 세화리를 중심으로 한 이웃 자연부락별로 조직된 해녀 1천여 명을 소집시켜 해녀복과 해녀작업 차림으로 무장케 하여 때마침 세화리 시장(경찰 주재소 부근)을 지나가는 도사(도지사)의 행차를 가로막고 해녀의 권익옹호와 주권회복을 요구하며 해녀노래를 합창하면서 대대적인 시위를 했는데 이때 제주도사는 혼비백산하여 피신 도주하게 되었다."

이는 부덕량 애국지사와 함께 제주해녀독립투쟁에 앞장섰던 당시 부녀회장 부춘화 애국지사의 증언이다. 부덕량 지사는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주도했던 부춘화(1908-1995), 김옥련(1907-2005) 지사와 함께 제주항일해녀독립운동사에 빼놓을 수 없는 3인 가운데 한분이다.

이들은 혁우동맹 산하 하도강습소 1기 졸업생들로 야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게 되었다. 당시 청년 민족운동가들과 합세하여 제주해녀항일운동이 한국독립운동사에 커다란 자리매김을 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 돌비석, 멀리서 보면 무덤은 풀 속에 묻혀있어 안보이고 비석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 3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 돌비석, 멀리서 보면 무덤은 풀 속에 묻혀있어 안보이고 비석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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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1월 7일과 12일 제주도 구좌면에서 제주도해녀조합의 부당한 침탈행위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현장에서 부덕량 애국지사는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섰다. 일제에 빌붙어 해산물을 착취하는 어용 해녀조합을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해녀들의 자발적인 행동은 구좌면 세화장터에서 폭발했다. 1천여 명의 해녀들은 세화주재소의 저지를 뚫고 호미와 비창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또한 1월 24일 왜경이 제주도 출신 민족운동가들을 체포하려는 것을 온몸으로 맞서 저지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일제는 해녀항일운동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려고 목포 응원경찰대까지 동원하여 1932년 1월 26일 사건 연루자 100여 명을 검거하였다. 주동자인 부덕량 지사도 이때 잡혀 들어가 6개월간의 쓰라린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후 부덕량 애국지사는 고문 후유증으로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스물일곱의 나이로 1938년 숨을 거둔다.

현재 구좌읍 하도리 문주란섬 맞은 편에 있는 부덕량 무덤의 묘비는 당시 북제주군이 예산을 지원하여 2006년 4월 4일 이 자리에 세운 것이다. 그러나 지난 주 찾은 무덤은 안내표지판도 없을뿐더러 무덤은 언제 풀을 깎았는지 풀이 사람 키만큼 자라고 있는 등 전혀 관리가 안 되고 방치되어 있었다.

말로는 독립운동가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기려야 한다면서 정작 애국지사들의 무덤 관리는 뒷전인 현실이 아쉽다. 국립현충원에 모셔져 있지 않은 분들의 경우는 대개가 이러한 실정이다.

왼쪽이 문주란섬이 있는 바다이고 오른쪽 노란차가 달리는 낮은 풀 언덕에 무덤이 숨어 있어 찾기가 어렵다
▲ 부덕랭 애국지사 무덤 4 왼쪽이 문주란섬이 있는 바다이고 오른쪽 노란차가 달리는 낮은 풀 언덕에 무덤이 숨어 있어 찾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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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는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 입구에 (표지판은 도로변에 세워야 찾아 갈 수 있으며 버스도 안 다니는 이곳에 혹시 차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주차장이라도 마련해 놓았으면 한다. 2차선 도로에 차를 세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작은 표지판이라도 세우고 무덤의 풀이라도 자주 깎아주었으면 좋겠다.

덥수룩한 풀이 그간 이곳을 아무도 찾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 같아 더욱 가슴 아팠다. 일제의 침략이 없었다면 스물한 살 처녀 부덕량은 비록 물질로 생을 꾸려갔겠지만 소박한 꿈을 펼치며 살아갔을 텐데...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풀 구덩이 속에서 외로운 문주란 섬을 벗하며 잠들어 있는 부덕량 애국지사가 그날따라 더욱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하염없는 쓸쓸함에 무덤을 돌아 나오는데 문득 독립운동가 강관순의 '해녀의 노래'가 떠올랐다.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해녀들 /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
추운 날 무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 / 저 바다 물결 위에 시달리는 몸

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황혼 되면 돌아와 / 어린아이 젖 먹이며 저녁밥 짓는다
하루 종일 해봤으나 버는 것은 기가 막혀 / 살자하니 한숨으로 잠못 이룬다.

- 강관순이 지은 <해녀의 노래> 가운데 일부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 앞에선 기자
▲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5 부덕량 애국지사 무덤 앞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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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덕량 애국지사 무덤:  구좌읍 하도리 425번지. 인터넷 검색 '425번지'까지 가는 길은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고 36분이나 걸어야 접근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신문, 대자보에도 보냈습니다.



태그:#부덕량, #여성독립운동가, #해녀,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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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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