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통산 17번째, 한국영화로는 13번째 천만 영화이며, 개봉 후 24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통산 천만 영화 중 역대 4번째 흥행 속도를 기록 중입니다. 평소 성룡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고백해 온 류승완 감독. 액션 배우 성룡이 '범죄오락영화'를 표방한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에게 보내는 가상 편지 형식을 통해 <베테랑>의 영화적 가치를 돌아봅니다.  - 기자 주

 영화 <베테랑> 촬영 현장에서의 류승완 감독.

영화 <베테랑> 촬영 현장에서의 류승완 감독. ⓒ CJ엔터테인먼트


 성룡

성룡

류승완 감독님, 축하먼저 드릴게요. <베테랑>이란 신작이 한국에서 무려 1000만 명이 관람했다면서요. 2000년에 데뷔한 이후 <베테랑>이 9번째 장편영화라고 들었는데, 그만큼 값진 흥행일 것 같습니다. 저도 할리우드까지 진출해서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봤지만, 역시나 극장에 걸린 영화가 관객에게 사랑받을 때가 제일 감동적이죠? 게다가 꾸준히 '액션키드'라 불리셨다고 들었는데, '범죄오락액션' 장르를 추구한 영화여서 기쁨이 더 할 것 같네요.

평소, 류승완 감독이 저의 팬이라고 고백했던 것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영화 <턱시도>가 개봉할 즈음이었나요. 한국의 <KINO>라는 영화 잡지 저를 '하강하는 영웅'이라고 정의하며, <턱시도>까지 제 영화 10편의 명장면을 분석해 놓기까지 했었더군요. 저에 대한 애정이 철철 묻어나는 글이었습니다.

<턱시도>를 두고 "성룡이 없으면 이게 그 액션을 누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비감이 든다"라고 썼던데, 저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액션영화를 찍고 있답니다. 물론 바쁘기도 하고 체력적인 문제도 있어 더 이상 연출은 하고 있지 않지만요. 감독님도 더 분발해서 연출해 주시기 바랄게요.

여하튼 그래서인지, <베테랑>의 연출이 인상적이었어요. 제 전성기 시절인 <폴리스 스토리>가 자연스레 떠올랐거든요. 

감탄스러운 건 마지막 악당과의 액션 대결이었어요 

 영화 <베테랑>의 액션장면들.

영화 <베테랑>의 액션장면들. ⓒ CJ엔터테인먼트


황정민이란 배우가 연기하는 형사 캐릭터가 벌이는 카센터 액션신은 저의 영향이 뚜렷하더군요. 주변 소도구를 이용한다거나, 사물에 걸쳐 넘어진다거나, 타격의 순간을 독립 컷으로 편집한다거나, 인물들을 넓게 잡는 '롱샷'을 활용한다거나 하는 아이디어들 말이죠. 전문 액션 배우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구현된 액션 장면을 보면서 새삼 류 감독의 연출력을 돌아보게 됐답니다.

컨테이너 부두에서의 액션 장면도 비슷했어요. 저의 액션 스승은 버스트 키튼이라고 늘 말해왔는데요. 제가 구현했던 그 무성영화의 느낌을 멋들어지게 소화해냈더군요. <프로젝트A>의 비좁은 길의 자전거 활주나 <성룡의 CIA>에서의 컨테이너를 사이에 둔 숨바꼭질 장면들 말이죠.

감탄스러운 건 마지막 악당과의 액션 대결이었어요. 일개 형사인 그가 시민들 앞에서 그 재벌가 자제인 악인을 직접 때릴 수가 없어, 한참을 맞다가 수갑을 채운다는 설정 말이죠. 그렇게 울분을 쌓아둔 뒤 마지막 한 방으로 관객들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은 꽤나 효과적이거든요. 저도 <폴리스 스토리>에서 그런 구도를 짰기도 했고요. 대신 저는 수많은 적들과 맞고 때리며 격투를 벌이곤 하지만요.

'원맨 영웅'이 아니라 조직드라마라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홍금보나 원표와 같은 '골든트리오' 멤버들과의 앙상블이 아니라서 형사드라마를 찍을 때는 개인의 활약을 그릴 수밖에 없었거든요. 대신 저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동표라는 배우가 늘 연기했던 서장 캐릭터가 있었지만요. 형사들이 밀고 당겨주며 범인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드라마는 확실히 아름다운 것 같아요. 어떤 장인 정신이 깃들어있는 직업드라마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또 미국 <리쎌웨폰> 시리즈가 대표적이지만, 두 형사가 짝패를 이루는 '버디' 드라마는 확실히 매력적인 거 같아요. 저는 할리우드로 건너가 <러시아워> 시리즈에서 그런 버디 드라마를 찍었었죠. 아, 감독님에겐 <짝패>라는 액션영화가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한국에서 <베테랑>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한국사회의 반영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형사와 피해자가 모두 '아버지'더라구요

 영화 <베테랑>의 출연진들.

영화 <베테랑>의 출연진들. ⓒ CJ엔터테인먼트


저 또한 <폴리스 스토리>에서 부패한 기업가를 악당으로 설정했던 이유랑 비슷할 것도 같네요. 주인공 경찰이 오히려 협박을 받고, 좌천을 당하고, 검찰이나 사법부는 기업가 편이었죠. 애인까지 납치당해야 했고요. <베테랑>에서는 다른 식의 협박이 이뤄지더군요. 경찰 상부에 압박이 가해진다거나, 형사의 부인에게 돈이 든 가방을 전달하는 식으로요.

전해 듣기론 <베테랑>이 액션영화이면서 한국의 현실을 꽤나 리얼하게 반영했다고 하더라고요. 부패한 기업가가 노동자인 아버지를 돈을 주고 때리는 장면이나 세습이 이뤄지는 재벌가의 구습 같은 것들 말이죠. 확실히 액션영화는 어떤 악당을 설정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정의를 응원하는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돕고, 또 자연스레 시대성을 담아낼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보다 형사인 서도철과 피해자인 배기사 모두 '아버지'라는 점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특히나 어린 아들 앞에서 맞고 또 맞아야 했을 아버지의 심정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됐으리라 생각됐어요. 저도 환갑을 넘기다보니 그 '아버지의 정서'에 공감하게 되거든요. <폴리스 스토리 2014>에서 평생 딸과 소원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것도 그래서고요.

한국 기사를 보니 류승완 감독에게 '액션키드'란 수식이 많이 붙었더군요. 전작인 <베를린>은 독일에서 찍은 액션영화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제 그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베테랑>만 놓고 보면요. 나이를 떠나서, '아버지'의 정서를 보편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감독은 더 이상 '키드'가 아니겠지요.

앞으로도 류승완 감독이 그런 연출력으로 좋은 영화, 좋은 액션영화를 찍도록 기원하겠습니다. 아 참, <짝패>라는 영화는 꼭 찾아보겠습니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란 영화의 식당 장면인가? 또 '성룡식 액션'을 구현한 작품이 있다고도 들었는데, 그 영화 또한 찾아보도록 할게요.

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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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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