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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를 받아 든 선한 눈매의 스태프는 나를 큰 독채 안으로 안내했다. 그가 안에다 대고 "여기 손님 왔어요."라고 느릿하게 말하자 여유로운 표정의 사장님과 매력이 풀풀 풍기는 사장님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들어서며 나는 내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사장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3박 묵으실 거야. 한 달 여행중이시래."
"어, 그러니?"
"엇,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저 한달 여행중인 거요?"
"카톡에 나와 있던데요?"

아, 카톡. 내가 대문짝만하게 적어놓은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사장님은 아직 방 청소가 안 돼 있으니 이곳 식당 겸 카페에서 '내 집처럼' 편히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청소를 할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보통 게스트하우스에서는 10시에서 11시쯤 청소를 한다. 내가 11시 조금 넘게 왔으니 빨리 도착하긴 한 거다. '내 집처럼' 편히 아무 테이블에나 자리를 잡고 앉자 사장님과 사장님 어머니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그간 어디를 여행해 왔는지, 어디가 제일 좋았는지, 몸은 괜찮은지, 오늘은 어디를 갈 건지, 어떻게 갈 건지. 이곳은 지난 며칠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사장님과 사장님 어머니는 나를 손님이 아닌 여행자로 대해주었다. 두 분은 나의 여행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주고 싶어했다. 마치 그러려고 본인들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민속마을을 가보려구요. 거기 괜찮을까요?"

이곳으로 오는 버스에서 대충 검색해 뒀던 성읍민속마을을 댔다. 민속마을이 아니면 근처 오름에 올라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의 이 계획은 사장님 어머니의 제안으로 금세 무산됐고, 곧 다른 곳을 목적지로 택했다.

"거긴 그냥 마을이야. 뭐 봐도 나쁠 건 없는데 너무 넓어 구경하기가 만만치 않아. 버스로 가기도 어렵고. 그냥 민속촌을 가봐."
"민속촌이요?"
"여기서 금방이야. 우리가 데려다줄게."

처음과 달리 정이 든 게스트하우스

이날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이 사진은 다음 날 따라비 오름에 올라 찍은 사진
 이날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이 사진은 다음 날 따라비 오름에 올라 찍은 사진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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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전쯤, 나는 한 시간을 달려 표선면 세화리의 한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지도 어플이 일러주는 방향을 따라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나섰다. 생각지도 못한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바다를 벗어나, 도로를 벗어나, 어플은 나를 산속으로 이끌었다. 이번 게스트하우스는 놀랍게도 산 속에 홀로 자리잡고 있었다.

바다 바로 앞에 있을 줄 알았던 게스트하우스가 산속에 있다니 조금 실망스러웠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산을 즐기자고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음 한 켠엔 내 잘못을 질책하는 마음이 컸다. 바다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었지만, 나는 바다에 더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길 바랐다.

그래도 풍경은 아름다웠다. 맑고 깨끗한 하늘 아래 총 6채의 독채가 정갈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었다. 그 앞으로는 깔끔하게 정원이 정돈되어 있었고, 나중에 둘러보니 건물 뒷편으로는 이곳에서 직접 기르는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정원 옆 작은 텃밭에도 다양한 종류의 채소들이 보였다.

주위에 가득한 나무들에 마음이 조금 풀린 나는 조심히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스태프가 나와 내 캐리어를 받아준 것이다. 오늘 밤이 되면 나는 이 스태프가 '장기수'라는 걸 알게 된다. 이곳 게스트하우스가 너무 좋아 그냥 죽 묵고 있는 중이란다.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그와 얼마만큼 가까워질 수 있을지를 미리 가늠할 수 있을까. '흠, 이 사람과는 오늘이 마지막이겠군.' 또는 '흠, 이 사람과는 친구가 되겠군.' 하는 걸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나는 이날 내 캐리어를 받아 든 이 장기수와 나중에 함께 한라산도 오르고, 오토바이도 타고, 또 서울로 같이 올라오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계속 연락을 하게 될 줄도.

이곳 게스트하우스도 처음 봤을 땐 그저 예상에서 빗나간, 그래서 조금은 실망스러운 낯선 게스트하우스일 뿐이지 않았나. 그런데 겨우 2박을 한 후에 나는 지금 장기수가 내 캐리어를 받아주러 나온 것처럼, 처음 오는 손님을 나도 모르게 안내하고 있었다. 이곳이 '내 집처럼' 편안해 진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사장님은 끌끌 거리며 웃었고, 나도 함께 킥킥거리며 웃지 않았나. 처음엔 모르는 것이다. 관계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 지는.

'새로움', 스트레스 원인인지도

이날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이 사진은 다다음날 영주산에 오르며 찍은 사진
 이날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이 사진은 다다음날 영주산에 오르며 찍은 사진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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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의 어머니가 추천해 주었던 민속촌에서는 이상하게 즐겁지가 않았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내 눈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신나게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부유하듯 떠돌다 그냥 민속촌을 나왔다.

민속촌을 나올 때쯤에는 기분이 축 처져 있었다. 우울하기도 했다.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마침 민속촌은 해안도로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바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긴 했다. 눈도 바다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표선 해비치 해변에서 올레 4길을 따라 게스트하우스 앞쪽 해변까지 내리 걸었다. 달리는 사람들과 자전거, 오토바이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끝에 도착했는데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 게 아닌가. 등대에 앉아 낚시꾼들이 낚시하는 모습을 바라봐도 그 기분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한 번 달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어제오늘 피곤하단 핑계로 계속 달리기를 미루지 않았나. 그래서 나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 러닝복으로 갈아입고 해안도로로 다시 나왔다. 그리고 달렸다.

달리면서 알게 됐다. 달리 우울한 건 아니라는 걸. 단지 지난 며칠간의 익숙함을 버리고 또다시 새로운 환경을 받아 들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뿐이라는 걸.

여행을 시작한 이래 나는 거의 매일 새로운 장소로 향했다. 여유롭게 여행하자 했지만 그래도 여행은 여행이었다. 전날과 같은 경로로 이동한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꼭 어디를 가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은근히 새로운 장소로 발이 옮겨졌다.

새로운 장소와 환경은 나를 새로운 생각으로 이끌어주었고, 또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움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일이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온 것 같았다. 어쩌면 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관성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니 변할 순 있다. 변하기 위해선 이런 시간이 필요할 테다. 그러니 그냥 우울을 받아들이자. 새로움이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면 그러라고 그냥 내버려두자. 가끔 우울하다 다시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면 되니까. 

저렴하고 맛난 고기, 젓갈에 찍어 먹다

이날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이 사진은 다다음날 하도리 근처 해변에서 찍은 사진
 이날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이 사진은 다다음날 하도리 근처 해변에서 찍은 사진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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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뛰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씻고 누웠다. 4인실이었는데도 메르스 영향으로 나 혼자 독채를 쓰게 됐다.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으니 배가 살살 고파왔다. 그때, 뜻밖에도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반이나 싸요. 고기 맛도 좋고요. 다른 손님들하고 저하고 같이 가서 저녁 안 먹으실래요?"

그렇게 7명이 고기 판 앞에 둘러앉았다. 마을 이장님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고깃집엔 마을 주민들이 거의 다 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만 외지 사람 티를 팍팍 내며 사장님이 손수 구워주는 고기에 젓가락을 갔다 댔다.

"고기 맛 어때요, 괜찮죠?"
"네에~"

사장님은 이곳 고기가 다른 데에 비해 얼마나 맛있고 또 얼마나 저렴한지 구구절절 설명을 하며 열심히 젓갈을 변신시키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고기를 시키면 쌈장과 함께 이름 모를 젓갈이 딸려 나온다. 고기 소스이다. 제주에 온 이튿날 나는 이 젓갈에 고기를 찍어 먹어 보긴 했지만, 너무 비려 그 뒤론 다시 먹지 않았다. 

사장님은 그 갈색 젓갈을 우선 끓였다. 그리곤 그곳에 마늘과 고추를 듬뿍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론 소주를 부었다. 비린 맛을 없애주는 덴 역시 소주라고 말하며. 그리고 다시 한 번 끓은 젓갈. 이제 찍어 먹기만 하면 된단다. 사장님을 믿고 나도 한 번 찍어 먹어 봤다. 오, 정말 비린 맛이 잡혔다.

역시 현지 음식은 현지 사람과 함께 와야 제대로 그 맛을 보게 되는 것 같았다. 음식도 현지 사람이 추천한 곳엘 가면 실패할 일은 없지 않을까. 그 어떤 맛집 블로거도 이장님이 하는 이 고깃집을 찾아낼 수는 없을 테니까.

알고 보니 우리 7명이 다 손님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손님은 나와 사회복지사이자 아마추어 사진가 한 분뿐이었고, 두 명은 장기수와 그의 친구, 또 다른 두 명은 사장님의 친구라고 했다.

내 앞엔 사장님의 친구가 앉아 있었다. 나보다 더 하얀 얼굴의 그분이, 초반엔 그렇게나 수줍어하던 그분이,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누가 알았겠는가. 그가 말을 한 바가지를 쏟아 내면, 옆에서 사장님은 "말이 많다"며 추임새를 넣어 주었고, 그는 잠시 입을 닫았다가 또 말을 한 바가지 쏟아 냈다.

그의 말은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서도 계속 이어졌다. 사장님 어머니도 그에게 "말을 조금만 하라"고 주문을 했지만 허사였다. 게스트하우스 정원에 마련된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는 말이 많은 그의 입을 안주 삼아 맥주를 부딪쳤다.

그의 이야기는 어느새 사진을 향한 열정으로 이어졌다. 사회복지사이자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분의 사진을 보던 그는 자기가 찍은 사진을 꺼내 보여 주었다. 정방 폭포에서 찍은 그의 사진은 사진을 볼 줄 모르는 내가 봐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럼 그렇지. 그의 사진은 아마추어 사진 작가전에서 4위를 한 사진이라고 했다.

사장님과 그의 또 다른 친구분도 사진에 조예가 깊었다. 장기수 역시 사진 장비로만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쓴 사진 애호가였다. 7명 중 5명이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사진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나 하나만 여행지에 와서도 사진 찍는 걸 자꾸만 잊어버리는 사진 문외한이었다.

사진을 향한 대단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사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방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오는 잔잔한 빛만이 테이블을 비추고 있었다. 이야기는 밤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며 나는 오늘 내가 우울했던 이유는 어쩌면 말을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말이 많은 그분이 잠시 쉬는 틈엔 나도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우울함이 어느새 걷혔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5월 26일부터 6월 24일까지, 30일간의 제주 여행 연재글입니다.

개인블로그에도 중복게재합니다.



태그:#제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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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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