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악재로 바람이 잘 날 없는 프로농구계에 또다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사이버수사대는 전·현직 운동선수 20여 명을 불법 스포츠 도박(국민체육진흥법 위반)을 한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28일 밝혔다. 여기에는 장재석(오리온스), 김현민(kt), 안재욱(동부) 등 프로농구 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은 최근 수년간 현직 선수 신분으로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에서 작게는 수십만 원부터 많게는 억대 도박금을 걸고 불법도박에 참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규정상 선수들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주관하는 정식 스포츠토토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되어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경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이들의 베팅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승부조작에 직접 관여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이번에도 프로농구 선수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대거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전망이다. 농구계는 최근 몇 년간 승부조작 파문으로 곤욕을 치렀다. 심지어 현직 감독들까지 수사 대상에 오르거나 제명당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국내 4대 프로스포츠 중 프로농구가 유일하다. 승부조작 사건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는 또다시 무더기로 선수들이 스포츠도박에 연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프로농구의 이미지가 갈수록 진흙탕으로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가 없게 됐다.

이번 거론된 프로농구 선수들은 저마다 소속팀에서도 비중이 있는 선수들이다. 특히 장재석은 2012년 KBL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출신이고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된 경력이 있을 만큼 농구계에서 촉망받던 선수라는 점에서 팬들이 느낀 충격과 배신감은 더 크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불법도박 혐의로 거론된 장재석이나 안재욱은, 각각 승부조작 혐의로 도마 위에 올랐던 전창진 전 KGC 인삼공사 감독(당시는 KT), 강동희 전 원주 동부 감독에 의해 프로로 발탁된 선수들이다. 만일 혐의가 모두 사실로 입증된다면 그야말로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프로의식의 부재가 문제

이쯤 되면 분노나 허탈함 이전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프로 선수나 감독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분야에 있어서 성공한 '스타'로 꼽히는 존재들이다. 하다못해 주전이 아닌 벤치 급 선수라도 억대 연봉을 받는 경우를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굳이 불법적인 일에 손대지 않아도 운동만 열심히 잘하면 부와 인기, 명예가 보장되어있다. 그런데 왜 평생의 명예와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잘못된 유혹에 빠지는 것일까? 보통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는 단순히 승부조작이나 불법도박으로 손쉽게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의 규모나, 개개인의 인성적 결함을 넘어서 한국 스포츠계의 사회적 인식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 스포츠계의 뿌리 깊은 병폐 중 하나가 결과 지상주의다. 학원 스포츠에서부터 기본기나 과정보다는 오로지 눈앞의 결과와 성적만을 추구하는 풍토가 보편화되어있다. 선수든 지도자든 운동을 통하여 우승을 차지하고 몸값을 올리는 등 얼마나 '보상'을 받느냐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만큼 이기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때로는 편법과 꼼수를 쓰는 것도 마다치 않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풍토는 결국 프로에 올라가서도 계속된다. 운동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성장한 선수들이 무늬만 프로선수가 되었다고 갑자기 달라질 리 만무하다. 결국, 말만 프로선수일뿐, 팬들을 위하여 생각하고 과정의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는 진정한 프로의식은 정작 안중에도 없다. 이런 환경이 반복되면서 결국 운동만이 아니라 스포츠인들의 사회적인 가치관이나 일상적 윤리 의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농구계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일탈 행위들이나 KBL의 행정력을 둘러싼 논란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운동선수들은 폐쇄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엄격한 선후배 서열주의-합숙문화 등으로 소속팀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만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사회의 보편적인 시대의식이나 달라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자신들 내부 집단 안에서만 통용되는 '그들만의 룰'에 길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보수성과 폐쇄성이 두드러지는 한국 농구

승부조작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강동희나 전창진 감독 등은 선수교체와 작전타임 등 지도자로서 자신의 '고유권한'을 남용하여 문제의 빌미를 초래했다. 물론 그들의 주장처럼 감독보다 그 팀에 대하여 더 잘 알고,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들은 없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정치, 법률, 의학 등 어떤 분야에서도 외부인이 비판하고 문제제기 할수있는 것은 없다.

무엇보다 프로스포츠는 그들만의 운동이 아니라, '팬들에 보여지기 위하여' 존재하는 콘텐츠이고, 감독의 고유권한도 팬들이 보편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만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할 때 존재가치가 있다. 그러한 프로스포츠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특수성(고유권한) 등을 운운하며 결백을 주장하는 행태는 일반 대중들의 보편적인 사회의식과 동떨어진 일부 체육인들의 썩어빠진 의식구조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또한, 프로농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서 그 보수성과 폐쇄성이 더 두드러진다. 국민스포츠로 불리는 야구나 축구 같은 경우, 미디어의 노출과 관심도 더 크고 여론의 영향력도 그만큼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프로농구는 최근 인기하락으로 인하여 관심이 크게 낮아졌고 독자적인 수익성도 거의 없는 편이다. 돈줄을 쥐고 있는 모기업의 지원에 의존하는 구단-선수-연맹 등은, 팬들에 대한 책임감이나 여론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일부 체육인들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회의식, 단기간에 큰 보상이 주어지는 유혹 등이 결합되었을때 체육인들, 특히 농구인들이 의외로 쉽게 승부조작이나 불법도박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크게 놀랄만한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운동이 운동 자체로서의 가치나 성취감을 주는 '목적'이 아니라,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한국 농구계의 씁쓸한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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