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홈페이지 갈무리

토트넘 홈페이지 갈무리 ⓒ tottenhamhotspur.com


손흥민의 EPL 진출이 드디어 성사됐다. 28일(한국시간) 토트넘 홋스퍼 구단이 손흥민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등번호는 7번, 계약 기간은 5년이다. 이적료는 약 2200만 파운드(약 399억 원)로 알려졌다. 아시아 선수로서는 역대 최고의 이적료 기록을 세웠다.

유럽 여름 이적시장 마감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손흥민의 이적은 많은 이들이 놀랄 만큼 갑작스럽고 신속하게 진행됐다. 레버쿠젠 부동의 주전으로 꼽히며 프리 시즌 일정까지 충실하게 소화했던 손흥민에게 갑자기 시즌 초반 부진과 결장, 팀 훈련 불참 등 평소와 다른 상황들이 이어졌다. 무성한 뒷말이 나왔다.

손흥민의 이적설이 처음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이 불과 지난 26일부터다. 영국과 독일 언론에서 손흥민의 토트넘행을 유력하게 보도하면서 상황이 급진전됐고, 손흥민은 그로부터 이틀 만에 일사천리로 이적을 완료했다.

손흥민의 토트넘행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올여름 공격진의 전력보강이 지지부진했던 토트넘은 3라운드까지 2무 1패에 그치며 고전하고 있었다. 1순위로 영입을 타진했던 사이도 베라히노(WBA)의 영입이 무산된 토트넘은 손흥민의 영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필요로 하던 손흥민의 야망도 토트넘의 제의에 부응했다.

레버쿠젠과의 결별, 과정이 아쉬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새 출발을 위해서는 과거를 잘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손흥민은 이적과정에서 전 소속팀과의 결별 과정이 깔끔하지는 못했다.

올여름 라힘 스털링(리버풀-맨시티), 앙헬 디 마리아(맨유-PSG) 등 많은 슈퍼스타들도 이적 과정에서 잡음을 일으키며 비난을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손흥민 역시 자신의 축구경력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친정팀과 '아름다운 결별'을 이루지 못한 것은 다소 찜찜한 대목이다. 레버쿠젠 구단과 일부 팀 동료들은 손흥민이 이적과정에서 무단으로 팀 훈련에 불참하고 연락을 끊었다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일부 독일 언론들은 손흥민이 이적과정에서 '잘못된 조언'을 받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물론 이적시장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손흥민만을 탓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실제로 레버쿠젠은 올 시즌 초반 로저 슈미트 감독의 전술변화와 함께 손흥민의 공격 비중과 팀 내 입지가 애매해지는 상황을 초래했고, 이는 손흥민의 이적 결심이 급진전되는데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손흥민이 2013년 함부르크에서 레버쿠젠으로 이적할 당시 1,000만 유로(약 136억 원)를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2년 사이에 두 배가 넘는 이적료를 벌어다 줬으니 손흥민은 레버쿠젠에게 해줄만큼 해주고 떠난 셈이다.

손흥민이 EPL로 떠나게 됨에 따라 분데스리가에서 이어가던 기록 행진도 중단됐다. 손흥민은 2010년부터 분데스리가에 데뷔하여 135경기에서 41골을 넣었다. 3년 연속 분데스리가 정규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개인 최다인 17골(리그 11골, 컵대회 1골, 챔피언스리그 5골)을 넣으며 차범근이 1985/1986시즌에 세운 아시아 선수 한 시즌 최다 골(19득점) 기록 경신을 노렸으나 아쉽게도 시즌 막판 뒷심 부족으로 신기록에는 실패했다. 6년간 유망주에서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한 분데스리가를 떠나게 된 것은 아쉽지만, EPL은 더 넓은 시장을 갖고 있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하므로 손흥민의 잠재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손흥민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때

토트넘 이적이 완료됨에 동시에 손흥민이 새 소속팀에서 맡게 될 역할과 앞으로의 적응 여부가 관심사다. 높은 이적료는 손흥민에 대한 기대치를 반영하는 만큼, 일단 초반부터 충분한 주전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손흥민은 최전방과 2선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 현재 토트넘 공격의 중심은 잉글랜드 국가대표 공격수 해리 케인이다. 4-3-3전술을 주로 구사하는 토트넘에서 손흥민은 자신의 주 포지션인 왼쪽 측면 공격수로 나설 수 있고, 유사시에는 케인과 함께 최전방 투 톱을 형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손흥민은 전형적인 윙어이기 보다는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며 득점을 노리는 스타일이다. 분데스리가 시절 함부르크에서는 확실한 센터포워드가 없어서 손흥민이 종종 최전방까지 맡아야 했고, 레버쿠젠의 스테판 키슬링은 득점력은 좋았지만, 활동량이 정적이고 느린 편이었다. 반면 케인은 최전방에서 수시로 측면까지 이동하며 수비를 끌어내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탁월하다. 2선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될 덴마크 출신 플레이메이커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자신에게 익숙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패스와 게임 조율에 더 전념할 수 있다.

문제는 빡빡한 초반 일정과 EPL의 플레이스타일에 손흥민이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에 달렸다. 손흥민은 토트넘 이적과 동시에 A대표팀 차출을 앞두고 있다. 토트넘은 오는 30일 에버턴과의 4라운드 일정을 앞두고 있다. 손흥민이 에버턴전에서 데뷔전을 치르지 않는다면 대표팀에서 내달 3일 라오스(홈)-8일 레바논(원정)과의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을 마치고 내달 13일 선덜랜드와의 5라운드가 되어서야 첫 경기를 갖게 된다.

손흥민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정이다. 아직 토트넘에서 동료들과 호흡을 맞출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에버턴전에서 컨디션 점검차 출장하더라도 교체투입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더구나 이번 월드컵 2차 예선은 라오스 홈경기를 먼저 치르고 다시 중동으로 이동하여 원정경기를 치러야 한다. 손흥민 같은 유럽파 선수들은 '이중 시차'를 극복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이로 인하여 대표팀 이원화 방안도 검토되었지만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며 가능성은 작아졌다. 2주 동안 유럽-한국-중동, 그리고 다시 유럽을 오가며 중요한 실전을 치르고 시차 적응과 새로운 팀 전술에 일일이 적응해야 하는 부담은 손흥민과 컨디션과 체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표팀이나 토트넘 모두 손흥민에 대한 기대치가 대단히 높아진 상황이다. 대표팀은 최근 간판 공격수 이정협의 부상으로 전력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석현준이나 황의조 같은 대안들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A대표팀 경력이 일천한 선수들이다. 라오스-레바논전에서는 현재 슈틸리케호 최다득점자(4골)이 손흥민이 선봉에 서야할 수도 있어서 부담이 커졌다.

토트넘 역시 팀 성적상 그렇게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다. 거액을 들여 영입한 손흥민이 이적과 동시에 빼어난 활약을 보여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토트넘은 최근 몇 년간 에마뉴엘 아데바요르-로베르토 솔다도-에릭 라멜라-파울리뉴 등 거액 연봉을 주고 영입한 선수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바 있다.

EPL는 높은 화제성과 인지도 만큼이나 극성스러운 언론과 팬들로도 유명하다. 손흥민이 초반 조금만 부진하더라도 여러 가지 뒷말과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무성하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손흥민이 진정한 일류 선수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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