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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에서 발생한 총기 오발 사고로 의경 1명이 사망한 가운데 사고 현장이 있는 건물 앞에서 헌병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에서 발생한 총기 오발 사고로 의경 1명이 사망한 가운데 사고 현장이 있는 건물 앞에서 헌병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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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발 검문소 의경 총기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피의자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면서, '제 식구 감싸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건을 경찰이 아닌 검찰이 나서서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5일 은평경찰서 박아무개(54) 경위는 이날 오후 4시 52분께 은평구 군경합동검문소에서 38구경 권총을 의경 대원 박아무개(21) 상경에게 쏴 숨지게 했다. 당시 은평경찰서는 "(박 경위가) 간식을 먹던 의경 3명에게 '너희끼리만 빵을 먹느냐'며 총 쏘는 장난을 치던 중 실제로 총탄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와 박 경위 진술 등을 종합해 "정황상 박 경위가 고의로 쐈다고는 보이지는 않는다"며 '실수'라고 설명했지만, 이런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로 경력 27년 차인 박 경위가 사건 당시 ▲ 권총 오발 방지 장치인 고무를 제거했고 ▲ 정확히 피해자 왼쪽 가슴을 겨냥했으며 ▲ 과거에도 2~3차례 권총을 겨눈 적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① 첫발부터 '실탄' 발사된 이유? 박 경위, 안전장치도 직접 해제

경찰 발표에 따르면 박 경위는 당시 권총에서 오발 방지 장치인 고무를 직접 제거했다. 26일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의경들이 보는 앞에서 박 경위가 고무를 제거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고무는 원래 실수로 인해 총이 발사되지 않도록 잠금장치 역할을 한다.

사격 첫발부터 공포탄이 아닌 실탄이 발사됐다는 점도 석연찮다. 총기 소지와 관련한 '경찰 장비 관리 규칙'에 따르면, 경찰이 권총을 휴대할 때는 반드시 첫 번째 탄에 공포탄을 장전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는 박 경위가 쏜 첫 번째 총알부터 실탄이 발사됐다. 경찰 조사에서 "첫발은 탄환이 들어있지 않은 '공격발'인 줄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르면 1989년부터 27년째 근무해 온 박 경위가 총기 관리 규정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임에도 경찰은 박 경위 진술과 현장 목격자인 의경들 말을 종합해, "여러 정황상 박 경위가 고의로 격발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며 그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박 경위의 단순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다는 것.

② 박 상경 약 1시간 뒤 사망, 왜 가슴 부위에 총 겨눴나

당시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위해 총기사고로 사망한 박 상경의 시신 부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국과수 부검 결과 사인은 '좌측 흉부 총상(심장 및 폐 관통)'이었다. 사건 당시 박 경위가 박 상경의 가슴 부위를 겨냥해 총을 쐈다는 의미다.

실제 박 상경은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시간 만에 숨졌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사고 발생 시각은 오후 4시 52분, 119 신고 시각은 5시 1분이었다. 박 상경이 후송된 병원 관계자는 당시 "(박 상경이) 오후 5시 36분께 병원에 도착했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며 "바로 1시간가량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총기 관련 규정은 범인 제압 시에도 대퇴부(넓적다리)를 향하라고 돼 있을 정도로 엄격한데, 근무 중 부대원의 가슴을 겨눈 것을 두고 용납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군인권센터는 아예 "박 경위 말대로 실수가 있었다고 해도, 박 상경 급소에 정확히 총을 겨누고 오발방지 고무를 의도적으로 제거한 것은 미필적 고의를 의심해야 한다"며 검찰에 살인죄 기소를 촉구했다.

③ 동료 의경들 "박 경위, 과거에도 권총 겨눈 적 있다"

박 경위의 이런 행동이 처음은 아니다.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의경들은 이후 경찰 조사에서 "박 경위가 과거 2~3차례에 걸쳐 자신들을 향해 총기를 겨눈 적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언론은 박 경위가 "과거에도 근무지 일탈과 품위손상행위로 두 차례에 걸쳐 각각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유가족들도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박 경위의 고모 박아무개(58·여)는 27일 <머니투데이>를 통해 "(박 상경이) 평소에도 경찰관이 총으로 장난을 쳤다고 아버지한테 여러 번 말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이에 고의성 여부 등을 밝혀달라며 철저한 수사를 호소하고 있다.

박 상경이 다니던 대학의 동료들과 학과 교수들은 27일 사건 진상 규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날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기를 이용한 위협은 명백한 가혹행위이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20년 넘게 경찰로 근무한 자가 권총 소지 규정을 잘 몰랐다니, 장난이고 실수라 하기엔 석연치 않다"고 주장했다(관련 기사: "경찰이 아무리 썩었지만... 장난치다 사람 죽였다니").

한편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박 경위가 경찰 조끼에서 총을 꺼내려다 격발됐다"고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키웠다. 경찰은 지난해 3월에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경비대 소속 김아무개 의경이 K2 소총에서 실수로 실탄을 발사했으나 이를 보고하지 않다가 뒤늦게 내부 제보로 인해 적발된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써는 고의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없다"면서 박 경위와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추후 조사 과정에서 다른 혐의점이 발견되면 적용 혐의는 바뀔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태그:#구파발 총기, #의경 사망, #구파발 총기 사고, #총기 사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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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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