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하는 이정협 지난 7월 30일 오후 경기도 파주NFC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이정협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가대표팀 공격수 이정협(상주)이 불의의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했다. 이정협은 26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경남 FC와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챌린지' 29라운드에서 후반 2분 상대 수비수 배효성과 충돌해 안면부 복합골절의 큰 부상을 당했다.
이정협으로서는 안타까운 부상이다. 이정협은 '슈틸리케의 황태자'로 불리며 축구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올해에만 A매치 13경기에 출전해 4골을 넣었다. 오는 9월 라오스-레바논과의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 명단에도 발탁되어 주전으로 활약할 것이 유력시됐다. 하지만 불의의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 불발은 물론이고 시즌 아웃까지 우려되고 있다.
대표팀이 받은 타격도 매우 크다. 단순히 라오스-레바논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정협은 슈틸리케호 출범 이후 부동의 넘버원 공격수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이후 각종 평가전과 국제대회를 통하여 최전방에 총 11명의 공격수 자원을 가동했다.
이중 그나마 합격점을 받고 대표팀의 붙박이 멤버로 자리 잡은 공격수는 이정협밖에 없었다. 그런 이정협이 치료에만 2~3개월이 걸리는 데다 완전한 컨디션 회복까지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는 가운데 슈틸리케 감독은 공격진의 새 판짜기를 통하여 월드컵 구상을 당분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민우 발탁한 슈틸리케, 그의 선택이 아쉬운 이유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의 대체자원으로 김민우를 발탁했다. 김민우는 왼쪽 측면 수비와 공격을 맡을 수 있지만,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원은 아니다.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린 스트라이커 자원에는 김신욱이나 이종호도 있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눈길을 주지 않았다.
특히 김신욱은 지난 동아시안컵에서 슈틸리케호 출범 이후 처음으로 발탁되었지만 3경기 모두 출전하고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원래부터 장단점이 뚜렷한 유형의 공격수이지만 아시아권에서 독보적인 김신욱의 높이를 포기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정협의 부상이라는 돌발 변수에도 대표팀에 재발탁되지 못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김신욱이 슈틸리케 감독의 우선순위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판단은 감독의 몫이지만 굳이 대표팀 공격진의 약점인 경험부족을 악화시키고 공격 루트의 다양성을 포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정협과 비슷한 스타일의 공격수는 이번 대표팀 명단에 없다. A매치 경험이 풍부한 공격수도 전혀 없다. 라오스-레바논 정도는 공격수 보강 없이도 이길 수 있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자신감일지 혹은 방심이 될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현재 대표팀의 최전방에 남은 정통 공격수 자원은 사실상 석현준 한 명뿐. 석현준은 190cm의 장신에 힘과 높이를 갖춘 타깃맨 자원으로 이정협과는 또 다른 유형의 공격수다. 석현준은 지난 시즌 포르투갈 리그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능력을 인정받았고, 올 시즌도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스타일이 다소 겹치지만 스피드에 뚜렷한 약점이 있는 김신욱과 달리 드리블과 민첩성도 체격 조건 대비 준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슈틸리케 감독이 굳이 김신욱을 뽑지 않은 것도 결국 석현준을 좀 더 활용해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석현준은 대표팀에서 기존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없다. 황의조와 비교하면 A매치에는 단 한 번 발탁되었지만 벌써 5년 전이니 없으나 마찬가지다. 그때보다 석현준의 기량과 경험이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조직력이 중시되는 축구에서는 기존 자원들과의 호흡이 더 중요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원톱에 단순히 득점만 치중하는 것보다 상대 문전에서 폭넓게 움직이며 수비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이정협이 엄밀히 말하여 정통적인 원톱은 아니었다. 무명에 2부리그 선수라는 한계에도 이정협이 슈틸리케 감독의 신임을 받은 것은, 헌신적인 활동량과 수비가담을 통하여 2선 공격수에게 침투 공간을 마련해 주는 팀플레이에 있었다.
석현준은 유망주로 주목받던 시절에도 득점 욕심보다 자신의 신체조건이나 주변의 동료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종종 받았다. 5년 만의 대표팀 복귀에서 석현준이 얼마나 발전한 모습으로 슈틸리케 감독의 눈높이를 만족하게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술 변화? 전진 배치? 베테랑에게 기회 줄 수도또 다른 대안은 2선 공격자원인 황의조나 손흥민의 전진 배치, 혹은 제로톱으로의 전술 변화다. 빈곤한 최전방과 달리 그나마 2선 자원은 대표팀에서 가장 인재풀이 풍부하다. 슈틸리케 감독의 공격 전술과 원톱 활용법도 항상 2선 공격수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K리그 클래식 국내 선수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는 황의조는 전방과 측면을 두루 소화하며 폭넓은 활동량과 저돌적인 침투플레이에 능하다는 측면에는 그나마 이정협과 가장 비슷하다. 손흥민 역시 2선 공격수이지만 대표팀에서 최전방을 맡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황의조는 석현준과 마찬가지로 A매치와 큰 무대 경험이 거의 없는 데다 K리그에서도 기복이 심하다는 게 대표적인 단점으로 거론된다. 손흥민은 이정협과 함께 슈틸리케호 최다득점자이지만 최근 소속팀에서의 부진과 이적 문제 등으로 혼란을 겪었다.
무엇보다 수비 뒷공간을 침투하거나 볼을 잡고 플레이를 전개하는 데 익숙한 공격수들인 만큼, 철저한 밀집수비로 공간을 내주지 않는 전략을 펼치는 라오스나 레바논 같은 팀들에게도 상성이 통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또 다른 카드의 발굴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슈틸리케 감독은 세대교체를 표방하며 이동국, 이근호, 김신욱 등 경험 많은 공격수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전력에서 배제하면서 자신이 발굴해낸 유망주들에게 애착을 보인다.
슈틸리케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적 색깔이 맞는 기존 공격수가 드물다는 것도 이유다. 그러나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는 어차피 시간이 걸린다. 공격수 자원에서 현재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부족하다면 이제는 베테랑 선수들에게도 한 번쯤 다시 기회를 주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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