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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북한의 잠수함 수십 척이 동·서해 기지를 이탈해 위치가 식별되지 않아 우리 군이 탐지전력을 증강해 추적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식별되지 않은 잠수함은 전체 전력 70여척의 70%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으며 6·25전쟁 이후 최대 이탈률이다. 사진은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해 5월31일 새로 제작한 기록영화 '백두산 훈련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서 공개한 북한 잠수함과 잠수함 기지.
 북한의 잠수함 수십 척이 동·서해 기지를 이탈해 위치가 식별되지 않아 우리 군이 탐지전력을 증강해 추적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식별되지 않은 잠수함은 전체 전력 70여척의 70%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으며 6·25전쟁 이후 최대 이탈률이다. 사진은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해 5월31일 새로 제작한 기록영화 '백두산 훈련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서 공개한 북한 잠수함과 잠수함 기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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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합동참모본부(아래 합참) 정보처장 우아무개 준장이 국방부 기자실을 찾아와 고개를 숙였다.

지난 26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 잠수함 관련 정보를 보도한 언론보도에 대해 "우리가 발표하거나 알려준 바는 없다"면서 "추측성 보도로, 발표된 내용을 볼 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것하고 항상 틀렸다"고 한 자신의 발언에 대한 사과를 하기 위해서였다.

기자들 앞에 고개 숙인 합참 정보처장

우 처장의 전날 발언은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북한군의 움직임이 국방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즉각 나오지 않았느냐'는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추궁 끝에 나온 답변이었다(관련기사: "보고 없는 국방부, 국회 국방위원장 물 먹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 처장의 국회 답변은 사실과 달랐다. "북한 잠수함 50척이 기지를 이탈해 식별되지 않는다"는 보도는 지난 23일 오후 국방부 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 브리핑에서 김민석 대변인의 입을 통해 나온 정보였다.

판문점에서 진행 중인 이틀째 남북접촉이 이제 막 시작된 가운데,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국방부 대변인이 확인해 준 북한 잠수함 정보는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대부분의 언론이 앞 다투어 <속보> <긴급>이라는 머리말을 붙여 '북한 잠수함 수십 척 기지 이탈', '북한군 포병전력 2배 증가'라는 제목으로 기사들을 쏟아냈다. 김 대변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대로 기사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날 김 대변인의 태도는 다른 때와는 사뭇 달랐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동향과 관련, 외신에서 보도된 내용을 확인해 달라는 질문이 나올 때면 "정보 사안이기 때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틀에 박힌 답변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비공개 브리핑에선 "평소에는 밝히지 않았던 북한 잠수함의 이탈률을 지금 말하는 이유가 뭔가", "오전에 있었던 백브리핑 톤과 오후 백브리핑 톤이 다르다"고 지적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 잠수함의 이탈률이 평소의 10배로, 아주 이례적이고 심각한 상황"이라는 대변인의 설명 앞에서 '합리적 의심'이 설 자리는 없었다. 이렇게 나온 보도의 여파는 엄청났다. 북한 잠수함이 대거 이동했다는 소식을 알린 한 기사에는 기사 게재 1시간 30분 만에 60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바로 이튿날인 24일 오전,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 대변인은 "북한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상당히 제한된다, 하루에 한 번쯤은 물 위로 올라와서 에너지를 다시 증기로 채워야 한다"면서 "그럴 경우 우리 P-3C 초계기라든지 구축함들이 다니다가 포착하면 독 안에 든 쥐가 된다, 꼼짝 못한다"고 설명했다.

북한 잠수함의 성능이 하루 만에 달라진 것도 아닐텐데, 전날 비공개 브리핑에서 설명할 때와는 달라진 어조였다. 북한이 보유한 잠수함의 70%가 기지를 이탈한 상황이 이례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해도 북한 잠수함의 성능과 한계는 쏙 빼버리고 브리핑을 해서 결과적으로 위기만 고조시킨 셈이 됐다.

김종대 "잠수함 정보 공개는 공보작전의 일환"

국회 국방위원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2급 기밀에 해당하는 북한 잠수함 동향(27일 기자실을 찾은 합참 정보처장은 관련 정보가 1급에 준하는 군사기밀이라고 밝혔다)을 국방부 대변인이 누설했다"며 "이것이 국방위 회의에서 문제가 된 후에 합참 관계자가 찾아와 '북한 잠수함이 대규모로 기지를 이탈한 것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상황과 같은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바로 알려야 한다는 차원에서 방침을 정해 설명해 드렸던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언론이 추측보도를 했다'고 말했던 합참정보처장도 자신은 UFG(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 참석하다 나와 국방부 백브리핑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라 잘못 답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국방위 관계자는 "명색이 국방위원인데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관련 내용을 알았다"면서 "정말 그렇게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면 국회 국방위원들에게도 사전에 설명을 했어야 옳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방부 대변인이 확인해 준 북한 잠수함 정보를 나중에 합참 정보처장은 부인한 꼴"이라면 "이러니 정말 북한 잠수함 50척이 기지를 이탈했다는 정보는 사실이었는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 군사전문가는 "국방부 발표대로 70여 척의 북한 잠수함 중에 70%가 같은 기간에 기동했다고 한다면 이는 '경이적인 가동률'"이라면서 "이 정도 가동률이라면 도크(Dock, 선박 수리 등을 위한 부두)에서 수리 중인 잠수함까지 다 띄웠다는 얘긴데, 정말 50여 척의 잠수함들이 기지를 이탈한 것이 맞는지, 북한이 한미 정보감시망을 피해서 어디다 감춰두었을 가능성은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군사평론가 김종대 <디펜스 21 플러스> 편집장은 "북한 잠수함 관련 정보를 공개한 것은 공보작전의 일환"이라면서 "남북접촉 중 정보를 흘린 것은 '판이 깨질 수도 있다'고 북한을 압박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편집장은  "대결분위기로 몰아가면서 북한을 쥐어짜는 스타일로 협상을 했다, 국방부가 마치 종편 방송 같았다"고 비판했다.

고조된 군사충돌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판문점에서 남북접촉이 긴박하게 벌어지고 있던 와중에 국회 국방위원들도 모르게 공개됐던 북한 잠수함 정보를 놓고 기밀 공개의 적절성과 정보 부풀리기 의혹이 고개를 들고 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남북접촉, #북한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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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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