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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이 기사를 통해 한 중견 가전업체와 금융업체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피해를 입은 소비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해 5월, 나는 친척의 제안으로 ㈜한일월드(아래 한일월드) 초음파 진동기구 무료 체험 이벤트에 참여하게 됐다. 해당 제품을 받고 월 1회 운동 장면이 담긴 사진 및 설문지를 작성해 제출하고 분기 1회 제품 관련 인터뷰 등을 하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이 제품의 월 렌탈비용은 19만8000원. 한일월드는 렌탈 비용 대납 방식으로 '금융리스'를 제시했다. 무료 체험 이벤트 참가자에 한해 한일월드가 월 19만8000원을 입금해주고 월 납입일 즈음에 다시 그 금액을 찾아가는 것.

하지만 지난 7월부터 '선입금 후출금'이 이행되지 않았다. 한일월드 측으로부터 돈이 들어오지 않은 채 내 계좌에서 19만8000원이 출금됐다. 이상한 낌새를 차린 나는 7월 29일 소비자보호원에 피해 사례를 접수했고, 7월 31일 내용증명을 보냈다(초음파 진동기구·정수기·비데 3건 내용 3장과 체험동의서 1장, 관련 계약서 3장, 이 내용을 8월 10일 <오마이뉴스>에 기사화했다). 또 은행을 통해 한일월드 제품 렌탈비용이 출금되는 계좌 출금정지도 해놨다.

이 과정에서 한일월드 측에 여러 번 전화를 시도한 끝에 한 차례 통화를 했고, 본사에 입금 요청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무엇이 적용됐는지, 8월 6일 19만8000원이 내 계좌에 입금됐다.

비슷한 시기에 정수기·비데(유료 렌탈) 관리 직원이 방문해 필터 교환 및 점검을 했다. 두 제품은 애프터서비스(A/S)가 제대로 되고 있었다. 나는 '제품 개발에 도움되는 체험 관련 자료들을 제공한다'는 조건의 무료 체험 초음파 진동기구 이용에 문제가 있어서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계좌 출금정지를 해놨기 때문에 정수기와 비데 렌탈비용에 대해 다시 계좌 이체 신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초음파 진동기구 무료체험을 진행할 수 없다는 내용증명을 보냈겠다, 이후 7월 20일에 출금해간 렌탈비용도 되돌려 받았겠다,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저 초음파 진동기구를 회수해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 독자의 이야기,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내용증명 관련 기사를 보고 독자가 보낸 쪽지.
 내용증명 관련 기사를 보고 독자가 보낸 쪽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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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8월 10일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를 본 한 독자가 내게 쪽지를 보냈다. 제목은 '한일월드 피해자다, 내용증명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나는 지난 23일 쪽지를 보낸 독자와 통화를 했다. 그는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쓴 체험동의서로 한일월드가 렌탈계약서를 임의 작성해 BNK캐피탈 측에 담보로 제공했다. 1인당 600만~700만 원을 계산해 1000억 원 정도를 대출받았다고 한다. 이는 피해자 대책위 등이 한일월드를 대상으로한 집단소송 준비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BNK캐피탈은 한일월드로부터 받은 렌탈계약서로 1인당 900만 원에 달하는 채무를 설정했다고 한다.

피해자 대책위에 따르면 현재 드러난 피해자는 1만5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초음파 진동기구의 경우 인터넷을 잘 사용하지 않아 정보에 어둡거나, 통장 정리를 잘 하지 않아 현재의 상황을 모르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아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것이다.

BNK캐피탈에서는 무료계약서라는 것을 몰랐다고 하는데, 렌탈계약서만으로 그렇게 큰 액수를 대출해줬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며칠 전에 관련 기사가 두 건 올라왔는데 OOO 기사는 얼마 후 내려졌다. 엄청난 사기 사건인 데다가 피해자들도 많은데 왜 기사가 삭제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후 나는 그가 알려준 '한일월드 피해자 모임' 네이버 밴드 3개(1개는 직원들 위주, 2개는 순수회원들 위주)에 가입했다. 또 네이버에는 한일월드 피해자 모임 인터넷 카페도 개설돼 있었다. 나는 온종일 게시판과 채팅창 그리고 카페 게시물들을 주의 깊게 읽었다.

지난 26일 정오께 BNK캐피탈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대로 '내가 쓰지 않았음에도 BNK캐피탈 측에 존재하는 내 계약서가 정말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BNK캐피탈 측으로부터 계약서가 있다는 답을 듣고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서가 도착했다. 다른 피해자들 증언과 같은 계약서였다. 체험동의서의 필체와 전혀 다른 필체의 계약서를 볼 수 있었다.

나는 BNK캐피탈 누리집에 가입해 조회 서비스를 클릭해봤다. 'BNK캐피탈이 개인에게 설정한 900만 원 채무'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채무 전체 금액은 수차례 발생한 에러 때문에 파악하지 못했지만, 8월 26일 낮 1시 기준으로 2회(렌탈비용 19만8000원*2회, 39만6000원) 그리고 납입되지 않은 1개월분에 대한 연체료 943원이 설정돼 있었다. 총 39만6943원.

무료 체험이라더니... 돈이 새나갔다

내가 직접 쓴 체험동의서.
 내가 직접 쓴 체험동의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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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품 관련 설문에 응하거나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한일월드측이 체험비를 체험자에게 주겠다는, 즉 무료라는 것을 제시한 체험동의서 내용.
 제품 관련 설문에 응하거나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한일월드측이 체험비를 체험자에게 주겠다는, 즉 무료라는 것을 제시한 체험동의서 내용.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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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인의 권유로 한일월드와 유료 렌탈 계약한 건 정수기와 비데뿐이었다. 문제가 된 초음파 진동기구는 렌탈 계약을 한 게 아니라 제품 개선 등을 위한 자료제공을 조건으로 한 무료 체험이었다. 나는 체험동의서만 작성했을 뿐이다.

나는 설치 시 물건 보관증 명목으로 렌탈계약서를 받았는데, 하단에는 '개인신용정보 제공 및 조회에 관한 동의서'가 있었다. 나는 여기는 물론 채권양도서에 동의한 사실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BNK캐피탈에 이런 것들이 전달돼 대출이 이뤄진 걸까.

8월 26일까지 밴드를 통해 그리고 몇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해본 결과, 피해자들은 나와 비슷하게 지인의 권유로 이 이벤트에 참여했다. 그들은 나와 같은 조건으로 체험동의서를 썼을 뿐이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나는 하루아침에 피해자가 됐다. 사과 등 그에 마땅한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애초부터 잘못된 방법으로 설정된 채무이므로 내가 갚아야 할 이유도, 책임도 없다.

BNK캐피탈 관련 담당자와 지난 26일 낮 1시 30분께 통화했다. 나는 그에게 "한 사람당 자그마치 900만 원씩 채무가 묶였다고 들었다, 원래 본인 즉 렌탈계약서에 있는 당사자들에게 최소한의 확인 절차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그 과장은 "한꺼번에 워낙 많은 계약서를 받다보니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데다가, 개인의 신용정보조회를 하지 못하게 돼 있기 때문에 확인 못했다"라면서 "우리가 렌탈 대출은 처음이어서 미숙했다"라고 답했다.

필자가 체험동의서와 함께 가지고 있는 렌탈계약서.
 필자가 체험동의서와 함께 가지고 있는 렌탈계약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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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K캐피탈에 설정된 일부 채무 화면 캡쳐.
 BNK캐피탈에 설정된 일부 채무 화면 캡쳐.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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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일했던 한일월드 직원 두 명의 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국내에 200여 렌탈업체가 있다. 이중 10여 곳만 자금 사정이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선 렌탈회사가 캐피탈 쪽에 특정 목적으로 계약서를 팔아넘기거나, 담보로 제공해 대출받는 게 관행이다.'

또 하나,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알게된 게 있다. 고객이 더 이상 돈이 빠져나가지 않게 출금정지 신청을 해도 렌탈 사업자가 은행에 계좌 출금 재개를 신청하면 자동이체가 부활한단다. 출금정지 이전처럼 계속 출금이 된다는 이야기다. 은행과의 약정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입장 보이는 두 업체... 소비자는 발만 동동

문제가 된 한일월드 누리집에 들어가봤다. 이 업체는 초음파 진동기구 해지 신청 접수 관련 안내를 띄웠다. 안내문을 보니 "고객님과 당사가 본건의 렌탈 계약을 맺었고, 랜탈 채권을 BNK캐피탈에 넘긴 것은 맞다"라면서 "계약이 해지된 경우 랜탈료 채권이 더 이상 발생되지 않으므로 BNK캐피탈 측에서는 렌탈료 채권을 고객님을 상대로 추심할 수 없다"라고 써놨다. 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인터넷을 통한) 해지 접수를 받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27일 직접 시도해본 결과, 인터넷을 통한 해지 접수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BNK캐피탈은 다른 입장이다. BNK캐피탈은 누리집에 "한일월드의 해지 신청 및 제품 반환 접수는 렌탈 계약 존속 여부에 관한 적법하고 정당한 권리자인 당사와 사전 협의 없이 진행되는 것"이라면서 "한일월드에 대해 형사고발 등 민·형사상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밝혔다.

27일 오전부터 나는 한일월드 고객센터에 다섯 차례 전화를 걸었다. "통화량이 많아 모든 상담원이 상담 중이니 기다려달라"는 멘트만 연거푸 들었다. 10여 분 넘게 기다려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아 해지 신청을 못하고 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두 달 뒤면 BNK캐피탈의 채권추심으로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생각을 하니 온종일 머리가 아프다.

한일월드의 경영 문제는 계속 언론에 보도됐다. 한일월드 직원들의 경우 26일 현재 3개월분의 임금이 체불된 상태란다. 한일월드 직원 임금 규모는 월 15억~20억 원 정도란다. 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있음은 물론, 이중에는 지인들에게 한일월드 제품을 소개해 곤란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도 많단다.

27일 현재까지 몇 건의 관련 기사가 보도됐다. 그런데 언론 보도를 보면서 '계약서를 쓰지 않았음에도 개인의 신상정보가 불법 대출에 사용됐다는 점과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이나 그들의 입장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 24일 한일월드 고객 71명은 한일월드 이영재 회장을 사기 혐의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 구로경찰서에 제출했다. 또한 이 건으로 무료 체험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이 수많은 피해자들의 입장과 문서 위조 관련 정황을 밝히는 데 제역할을 하기 바란다. 또 이 글을 통해 렌탈 관련 불법 대출 관행이 바로잡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한일월드, #BNK캐피탈, #초음파진동기구, #렌탈계약서, #불법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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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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