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스커플, 'Jamie&Scott'의 하루하루 이야기입니다. 미국인 남편과 함께 버지니아주 어딘가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어요. 달달한 신혼 이야기도, 새로이 정착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이야기도 들려드릴게요. 생기 있게 살고 용기 있게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저희 둘의 날들을 지켜봐 주세요! - 기자 말

어렸을 적 흰 우유에 네스* 초코가루를 타 먹는 것을 좋아했다. 싱크대 선반 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가루 통을 꺼내려 의자 위에 올라가면 안방에 있던 엄마는 어찌 알아채고서 내게 말했다.

"적당히 넣어라."

그럼 나는 괜히 심술이 나 "'적당히'가 얼만큼인데?"라고 되묻곤 했다. 엄마는 평소에도 '적당히'라는 말을 많이 썼다. 내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몇 분 데울까? 할 때도, 비빔밥에 고추장을 얼마만큼 넣을까? 할 때도 엄마는 내게 절대 그 '적당히'가 얼마만큼의 시간이며, 얼마만큼의 양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1분 해보고 안 따뜻하면 2분하고, 그래서 안 따뜻하면 3분하면 되지."
"고추장 한 숟가락 넣어보고 짜면, 다음에는 반만 넣고. 싱거우면 그거보다 조금 더 넣으면 되지."

엄마는 부엌일에는 도가 튼 사람이라 눈을 감고도 전자레인지를 '몇 분' 돌리면 되는지, 고추장이 '몇 숟가락' 필요한지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항상 '적당히', '니한테 맞게, 니가 알아서' 하라고 했었다.

내가 태어나서 두번째로 만든 된장찌개
 내가 태어나서 두번째로 만든 된장찌개
ⓒ 이자민

관련사진보기


결혼 후 미국으로 넘어온 나.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던 내가 한식이 너무 먹고 싶어 견디질 못하고 살아남기 위해 요리를 하고 있다. 며칠 전엔 태어나서 두 번째로 된장찌개를 만들었다. 옆에서 거들던 남편 스캇이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럴 때 마다 정말 난감해진다. 이건 딱히 가르칠 수가 없는 걸.

"How much do I use salt?"
"Hmm... just the proper amount."
"How much is that?"
"Just the proper amount!"

어딘가 익숙한 대화다. 엄마와 내가 했던 대화랑 똑같잖아.

"소금 얼마나 넣어?"
"적당히"
"적당히가 얼만데?"
"적당히!"

그럼 엄마는 항상 니가 직접 맛보고 싱거우면 더 넣고, 짜면 물을 더 넣으라고 했다. 그렇게 배우는 거라고. 나는 조금 고민하다 결국 스캇에게도 그대로 말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몇 티스푼, 몇 그램, 몇 리터의 정해진 단위로 이루어진 레시피에 익숙한 사람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나를 위로하는 엄마의 말, 적당히

하여튼 나는 이제서야 엄마 말대로 요리를 배우고, 느끼고 있다. 물론 요리를 하기 전에 미리 인터넷에 유명한 백종원 레시피, 황금레시피 등을 검색해본다. 하지만 대충 재료만 참고하고 막상 실제로 요리를 할 때는 말 그대로 '적당히' 넣어보고 그 뒤에 내가 맛을 보며 요리한다.

엄마는 '적당히'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내가 공부로, 취업준비로 힘들어 할 때 엄마는 "적당히 해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스트레스 받는 나에게 엄마의 '적당히'라는 말은, 마치 나의 꿈을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살아라는 말처럼 들렸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으레 하는,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하게 공부하라'는 뜻임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제야 엄마의 말을 이해한다. 그 '적당히'가 도대체 얼마만큼인지 26년 인생 내내 궁금해했는데 이제야 감이 온다. 내가 알아서, 나에게 맞게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적당히'가 어렵다. '적당히'만 살아도 좋을 것이다. 엄마는, 나보다 두 배 이상 오래 산 엄마는 알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느끼길, 깨닫길 바랐을 것이다. '적당히'를 아는 것이, 적당히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보통의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다만 나는 하루하루 발전하고 있음에 가슴이 뛴다. 처음보다 나은 두 번째 된장찌개에 기쁨을 느낀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에 감사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한다. 그렇게 '적당히' 잘 살아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자민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오늘은 오늘생각>(http://jaykim237.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적당히, #미국생활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