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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작은 도서관이 된 간이역 동촌역.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 된 간이역 동촌역.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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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가 속도와 편리함만을 쫓으며 내달리는 때, 작은 간이역은 어쩌면 거추장스럽고 무용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간이역은 우리가 잊고 사는 낭만과 인간미를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떠나는 간이역 여행은 특별하다. 지난 22일 그런 간이역을 찾아 애마 자전거를 열차에 싣고 금호강변에 자리한 동대구역으로 달렸다.

동대구역에서 가까운 동촌동(대구시 동구) 에 기적소리 울려 퍼지던 기찻길 공원과 작은 도서관이 된 간이역 동촌역, 기차 길 옆 옹기종기 벽화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철교가 있단다. 오랜만에 떠나는 설레는 간이역 여행이어선지, 한여름 날 대프리카('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친 말로, 대구의 여름이 아프리카만큼이나 덥다는 신조어)로 떠나는 데도 별 두려움이 없었다.

역생(驛生) 2막 이어가고 있는 간이역, 대구 동촌역

동대구역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고 금호강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이름도 귀여운 아양교를 넘으면 오래전부터 대구시민들이 즐겨 찾는 금호강변의 동촌 유원지가 나온다. 오리배 모양을 한 작은 유람선에서 흘러나오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떠들썩한 노랫소리가 웃음을 자아냈다. 거의 뱃놀이 풍경이다. 대구 시민들이 찾는 오래된 유원지가 맞나보다.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무더운 도시답게 강변에 거대한 인공폭포 두 개가 듣기만 해도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더위 먹은 시민들을 달래고 있었다. 강변의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들도 다시 도시의 자전거족과 뭔가 달리 보였다. 대구가 고향인 친구가 말이 별로 없고 성격이 급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 날씨 탓이다.

'대프리카' 금호강변의 큰 폭포,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대프리카' 금호강변의 큰 폭포,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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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리카' 대구의 자전거 라이더는 뭔가 다르게 보인다.
 '대프리카' 대구의 자전거 라이더는 뭔가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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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앙~' 기차소리가 듣기 싫은 소음이기도, 누군가에겐 기다림과 만남을 의미했을 작은 간이역 동촌역(대구시 동구 입석동)은 약 176㎡로 규모로 아담한 간이역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동촌역은 동대구역과 영천을 잇는 대구선에 위치해 있던 간이역이다. 1917년 태어나 2008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90년이 넘도록 동네의 풍경 속에 한자리 하고 있었다. 원래는 검사동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폐역이 되었다가 복원되면서 옆 동네인 입석동으로 옮겨왔다. 

크기와 모양이 비슷해 형제역이라 불리는 이웃 역 반여월역과 함께 1917년 11월 1일 보통역으로 시작해, 1938년 7월 1일 현재의 목조근대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뾰족한 삼각형 지붕 형태 등이 전형적인 서구 교외 주택을 모방하여 지은 근대 일본 주택 양식이라고 한다. 간이역은 풋풋한 추억과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지만, 한국인에겐 일제강점기 효율적 수탈을 위해 지어진 증오와 아픔의 시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옛 간이역을 좋아하고 종종 간이역 여행을 하게 되는 건, 크기만 다를 뿐 전철역처럼 획일적이고 무색무취해지는 현대 기차역들에 지루함을 느껴서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만 해도 거대하기만하지 서울이라는 정체성이나 도시 서울의 개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지역의 특성과 문화를 반영한 기차역은 요원한 꿈인 걸까.

동촌역 앞 철길을 따라 기찻길 공원이 금호강 아양철교까지 이어진다.
 동촌역 앞 철길을 따라 기찻길 공원이 금호강 아양철교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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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공원의 색다른 가로등.
 기찻길 공원의 색다른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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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이 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칠성시장에 채소를 팔러 가고, 대구역 인근 번개시장에 다녔다. 하양, 영천, 경주, 포항 등으로 또는 대구로 통근이나 통학의 통로이기도 했다. 동대구역 기점으로 매일 67대 기차가 다니기도 하다가, 2005년 11월1일 여객업무가 중지되어 사실상 역으로서의 기능은 끝났다. 2008년 동대구역과 영천을 잇는 구 대구선을 완전히 폐지하는 과정에서 형제역이라 불리는 이웃 역 반야월역과 함께 폐역되었다.

동촌역은 대구선에 남아 있는 옛 역사 중에 건축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덕택에 이설 후 2006년 등록문화재 제303호로 지정되었다. 1930년대 가장 잘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간이역으로 건축사적 가치를 가진 덕택에 철거되지 않고 문화재로 남을 수 있었다.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한 역사 건물이 아담한 동네와 어울려 정겹다. 우리나라엔 이렇게 개성 있고 정다운 간이역들이 많았다. 지금이야 모두 똑같은 모양의 역들이 대부분이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역사의 모양이 조금씩 달라서 기차여행이 더욱 풍성했다.

기차역으로 소명을 다한 동촌역은 '동촌역사 작은 도서관'이란 이름으로 역생(驛生) 2막을 이어가고 중이다. 검사동 756-5번지에 있던 기존 동촌역은 2008년 폐역되고, 2014년 입석동 893-9번지로 이전, 현재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역명판은 옛날 동촌역 시절의 것 그대로다. 마당에 조그마한 철길과 기차의 좌석처럼 마주보는 벤치, 기차 건널목 신호등을 닮은 가로등이 정답다.

동촌 역사만큼이나 작은 창문 너머로 책을 뒤적이는 아이들 모습이 귀엽다. 도서관엔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위에 작은 다락방 같은 책방도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하겠다. 동촌역사의 삼각형 지붕 안이 다락방 열람실이다. 2000여 권의 책과 함께 전시된 낡은 근태처리부, 장표 기록부, 방송장치(토크백)에서 흘러간 시간을 느껴볼 수 있었다.

사라진 대구선 기찻길을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있는 공원으로 살렸다.
 사라진 대구선 기찻길을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있는 공원으로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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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이 머무는, 기차 길 옆 옹기종기 마을과 '아양 기찻길'

간이역 앞을 지나는 폐선이 된 기찻길은 '대구선 공원'으로 새 단장을 했다. 다른 공원과 달리 기찻길 따라 난 길쭉한 공원이다. 은퇴한 철길의 뒷모습이 너무 쓸쓸하지 않아 다행이다. 산책로 바닥에 대구선 기차가 달려갔던 철로 그대로 가지런한 침목과 미끈한 레일을 똑같이 그려놓아 길을 지나는 기분이 색달랐다. 군데군데 놓인 벤치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지나가는 여행자를 향한 주민들의 눈길이 따뜻하다.

평범한 공원과 다른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대구선이 있을 때는 기찻길 옆 작은 마을이었던 동네가 '옹기종기 행복마을(대구시 동구 입석동)'로 바뀌어 자리하고 있다. 알록달록 물들인 담벼락, 단층의 아담한 집 앞마다 놓여있는 화분들, 주택 사이의 좁은 골목이 참 정답다. 정말 이름대로 옹기종기 기대 있다. 애마 자전거를 전봇대 밑에 묶어두고 골목에 나온 주민들에게 눈인사를 하며 동네를 천천히 거닐었다. 굳이 '행복마을'이라 이름붙이지 않아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동네였다. 

주민들의 발이 돼주었던 대구선 기찻길이 없어지고, 인근 공군 비행장의 소음까지 심해지자 주민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불만이 높아져만 갔다. 이에 대구시 동구청에서 주민들을 위해 대구선 공원 산책로와 벽화마을을 조성하게 된 것. 골목에서 만난 어르신들에게 주말에 사람들이 사진 찍는다며 몰려온다니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 보았다. "내는 사람 사는 것 같고 좋으네" 하신다.

화분이 많은 옹기종기 행복마을 입석동
 화분이 많은 옹기종기 행복마을 입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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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크고 작은 텃밭들이 많다. 철길이 있던 1970년 대 새마을사업으로 들어선 마을. 집들은 철로에서 한두 걸음 물러나 자리를 잡았을 테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한 뼘의 땅도 그냥 놀리지 않았을 게다. 한껏 자세를 낮추고 창들은 자그마한 집들.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면 아기들은 잘 잤을까. 바닥에 그려진 철길을 지나다 기차의 기적소리를 연상하며 자전거 벨을 울려 보았다.    

대구선 공원 산책길은 옹기종기 행복마을을 지나 금호강 위에 그림처럼 걸린 철교인 '아양기찻길'로 이어진다. 아양철교는 1936년 5월부터 대구선 열차가 다니기 시작해 2008년 2월까지 70년 넘게 사용돼 왔다. 동대구역에서부터 영천역까지를 이어주었던 대구선의 한 부분이었지만, 동구 지역을 관통하던 철길이 2008년 외곽으로 이설되고 동촌역이 폐역되면서 아양철교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

기존 철길은 철거되어 공원 등으로 조성되었지만 그동안 아양철교는 늙고 낡은 채로 방치돼다 철거의 논란이 일었다. 폐 철교를 어떻게 처리할까 대구시 동구청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아양철교를 살리기로 했다. 고심 끝에 2013년 큰 성형수술로 다시 태어난 철교는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 중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받기에 이른다.

기차 철로를 살린 아양 철교 기찻길.
 기차 철로를 살린 아양 철교 기찻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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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교가 된 아양 철교, 해질녘이 가장 좋다.
 인도교가 된 아양 철교, 해질녘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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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달리던 철교는 대구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인도교로 탈바꿈했다. 더는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되었지만 금호강을 사이에 둔 동구 신암동과 지저동을 걸음으로 잇는 사람의 다리가 되었다. 특이하게도 기존 철로를 없애지 않고 쇠로 된 레일, 나무로 된 침목을 그대로 살렸다. 철교 바닥 일부분에 유리가 깔려있어. 걸으면서 밑을 내려다보면 10여m 밑에 흐르는 금호강 강물이 아찔하다. 다리 중앙쯤에는 지역 브랜드의 카페가 있어 시민들의 좋은 쉼터 겸 전망대, 야경 명소가 되고 있다.        

철교위엔 전시실 '아양뷰 갤러리'도 눈길을 끌었다. 아양뷰 갤러리는 최근 동촌, 금호강, 동촌 구름다리, 아양철교 등을 주제로 '동촌에서 아양기찻길까지'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예술가, 주민들이 주변 경관을 표현한 그림과 사진 작품들을 금호강이 흐르는 철교 위에서 감상하는 기분이 특별했다.

아양기찻길은 해질녘이 가장 좋다. 선선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강변 야경의 아름다움과 밤의 정취를 맛볼 수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금호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는 해가 저물자 은은한 불빛에 잠겼다. 철교에서 내려와 금호강 둔치에서 보이는 아양기찻길의 전경도 더없이 아름다웠다. 대구시민 뿐만 아니라 지역을 찾는 많은 관광객이 꼭 다녀가야 하는 명소로 자리 잡을 만했다.

그냥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다시 길을 거슬러 대구선 공원길을 따라 인도교가 된 아양철교, 화분 많은 옹기종기 행복마을, 작은 도서관 동촌역으로 향했다. 대구선 공원을 따라 이곳들을 지나칠 때마다 타지이지만 '우리 동네'라는 느낌이 따뜻하게 피어올랐다. 무엇을 오래 기억하기에는 너무 분주한 도시 서울에 사는 내겐 참 부러운 곳이었다.


태그:#자전거여행, #동촌역, #간이역, #대구선 공원, #아양 기찻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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