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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나눔교실 워크숍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빨리 친하게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포스트잇에 상대방의 '좋아하는 술과 주량, 읽는 책, 바라는 꿈' 등 3가지 사항을 상상해 적는 것이다. 다음 서로 포스트잇을 바꿔 보며 첫인상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풀어간다.

부담 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어 좋았다. 나의 상대는 오래전 한 번 만난일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주량이나 취향까지 아는 단계는 아니었다.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이 무슨 술을 좋아하는지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참 효과적이었다.

나의 꿈은 무엇이었나?

'그런데, 나의 꿈은 무엇이었나?' 시간이 지나자 그런 의문이 일었다. 나의 꿈을 그가 무어라고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사실 나 스스로도 '내가 바라는 꿈'을 써보려 해도 뭔가 선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들었더라도 잊을 만하다. 그가 바라는 꿈은 무얼까? 그 항목에 나는 '정치가'라고 쓴 것 같다. 친화력이 좋을 것 같은 인상이어서 그리 썼다. 그러나 실제 그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이야기가 꿈 얘기까지 나가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엔 나도 무지개처럼 선명한 꿈이 있었다. "세상 책을 다 읽어보고, 세상을 다 돌아보고,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보고 싶다" 정말 무지개를 잡으려는 듯 거창한 꿈이었다. 송나라 대문호 '구양수(歐陽脩)의 3대 소원'을 베낀 것이다. 다행히 철이 들면서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세상을 많이 돌아보고 세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하는 직업이다. 또 세상 책도 많이 읽어야한다.

어릴 적 꿈을 이루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드린 보답일까, 열심히 돌아다녔다. 어차피 다 가볼 수는 없으니 사람이 몰리는 높은 곳이라도 올라가려고 애썼다. 파리의 개선문 옥상, 자유의 여신상 머리, 세인트루이스의 게이트웨이 전망대, 워싱턴 타워 등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긴 줄에 서서 시간여 줄기차게 기다리기도 했다.

질기고 긴 꿈이 필요하다

높은데 오르면 많이 보인다. 사람들, 건물들, 나무들, 논밭도... 그러다 어느 날 회의감이 들었다. 어느 정도 돌아다니고 어느 정도 올라 가보아야 내 꿈이 이뤄지는 걸까. 그래서 얻는 게 무얼까? 많은 데를 가보고 많은 곳을 올라가보았지만 남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해외 여행 가이드가 '남는 건 사진뿐'이라더니 사진만 남았나? 무지개는 볼 수는 있었지만 잡을 수는 없었다.

무지개 꿈처럼 큰 꿈이 희미해지면서 다음부터는 기억도 나지 않는 단발성 꿈들만 난무했다. 로또 복권을 사면서 백만장자가 되고 싶었던 꿈, 골프를 배우면서 홀인원을 하고 싶었던 꿈, 칼럼을 쓰면서 만 여 명이 클릭해 읽어주었으면 바라던 꿈, 서당에 다니면서 한문 박사가 되고 싶다는 꿈 등등, 게 중에는 팍팍한 현실에서 잠간 도망치려는 백일몽 같은 꿈도 있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이런 작고 짧은 꿈들도 없어서는 안 될 꿈들이었다. 스포츠 게임을 보는데 즐거움을 돋우는 '관전 포인트' 같은 것들이었다. 한일전 축구에서 한국이 일본을 얼마나 시원하게 이겨줄 것인가? 이번 야구 게임에 기아 타이거즈가 연승할 수 있을 것인가? 관전 포인트는 게임에 의미를 부여한다. 관전 포인트 없는 게임은 무의미해져 재미가 반감한다.

꿈은 세상살이의 관전 포인트이다.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꿈이 삶에 의미를 주면 그런 삶은 심심할 수 없다. 활기차고 즐거워진다. 그러나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은 박진감이 넘치는 스포츠 게임이 아니다. 그냥 밥 먹고 잠자고 깨고 걷는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주는 관전 포인트가 있을 수 있나? 날마다 밥을 먹으며 날마다 잠을 자며 날마다 걸으며 무슨 꿈을 꾸어야하나.

순간순간 끊어지지 않고 지속할 질기고 긴 꿈이 필요하다. 무지개꿈은 아니다.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꿈이어야한다. 덕분에 바로바로 사라지는 짧은 꿈이 아닌 긴 꿈을 하나 잡았다. 가다가 안 이뤄져도 되는 꿈, 반 토막만 얻어도 보람이 있는 꿈, 꿈꾸며 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꿈이다. 자서전을 쓰자!


태그:#꿈, #관전포인트, #삶, #의미,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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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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