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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187m의 무등산. 천왕봉 일대는 서석대, 입석대, 규봉 등 수직 절리상의 암석이 석책을 두른 듯 치솟아 장관을 이룬다. 201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도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시민들이 쉽게 찾아와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둥그스름한 모습이 믿음직스럽고 후덕한 느낌을 준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품에 안아주는 듯한 어버이 같은 산이다.

나만의 짝사랑일 수도 있다.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그곳을 찾곤 했다.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편히 식힐 때도 그 곳밖에 없었다. '살아있어서 미안하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속죄의 장소는 그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무등산의 너덜과 계곡, 그리고 자락에 얽힌 역사, 문화, 생태 등을.

어찌 이보다 높은 산이 적다할 수 있을까. 어찌 이보다 더 지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 적다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정녕 무등산은 다르다. 역사적으로 보면 가사 문학을 잉태한 곳이 이곳이고 남화의 대가 소치 선생이 자리 잡은 곳도 이곳이다. 의병장 김덕령의 얼이 숨 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등산 산장 가는 길 도로변에 활짝핀 배롱꽃. 100일 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 배롱꽃 무등산 산장 가는 길 도로변에 활짝핀 배롱꽃. 100일 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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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취가정 탐방을 다녀왔다. 이제 무더위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산장 가는 도로는 나오는 차들만 간혹 눈에 띈다. 평일이고 휴가가 끝나가는 탓이다. 주변에 배롱꽃이 붉게 피었다. 충장사를 지나 한 십분 달렸을까. 광주호 생태공원이다. 그리고 창계천이다.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전에 왔을 때는 느티나무며 버드나무 등이 물가에 늘어져 운치가 있었는데...

김덕령이 꿈속에 나타나 취해서 노래를 불렀다는데서 유래한 취가정이다.
▲ 취가정 김덕령이 꿈속에 나타나 취해서 노래를 불렀다는데서 유래한 취가정이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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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가정, 권필의 꿈이 담긴 이름

하천을 따라 산길이 이어졌다. 환벽당 돌담길을 조금 지나니 들이 보인다. 녹색의 벼들이 바람에 물결친다. 비탈길을 따라 활짝 핀 상사화가 우리를 맞이한다. 매미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솔 내음이 바람을 타고 코를 스친다. 김덕령이 술에 취해 불렀다는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김덕령이 술이 취해 권필의 꿈속에 나타나 억울함을 하소연 하며 불렀다는 '취시가'가 새겨진 비
▲ 취시가 비 김덕령이 술이 취해 권필의 꿈속에 나타나 억울함을 하소연 하며 불렀다는 '취시가'가 새겨진 비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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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할 때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 듣는 사람 없네
나는 화월에 취함도 바라지 않고
나는 공훈을 세움도 바라지 않네
공훈을 세우는 것도 뜬구름이요
화월에 취하는 것도 뜬구름이네
취할 때 부르는 이 노래여
이 곡조 아는 사람  없네
내 마음은 창검으로 명군께 보답만 하고 지고"

이른바 정철의 제자 권필의 꿈에 나타나 억울함을 하소연한 김덕령의 노래 취시가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얼마나 비통했을까. 5.18민주화 운동도 사뭇 다르지 않다. 참여자를 폭도로 매도하고 지금도 왜곡에 혈안이 되어 있다. 독립운동가 자손들은 대가 끊기거나 궁핍하게 산다.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가족들 역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지난날 장군께서 쇠창을 잡으셨더니, 장한 뜻 중도에 꺾이니 천명을 어찌하리…."

꿈속에서 권필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취가정(醉歌亭)은 이름부터 색다르다. 술 취, 노래 가, 정자 정이다. 술에 취해 노래하는 정자다. 정자의 이름은 권필의 그 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김덕령의 혼을 위로하고 그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1890년 그 후손들이 세웠다. 6.25전쟁으로 불탄 것을 1955년 재건하였다.

정자 문 너머로 보이는 소나무와 아이들
▲ 취가정 소나무 정자 문 너머로 보이는 소나무와 아이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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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오른쪽에 소나무가 구부정하게 서 있다. 문 틀과 어울려 묘한 조화를 이룬다. 관리인듯한 어르신이 올 봄에 정자를 일부 보수했다고 설명해준다. 경건한 장소이니 떠들거나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이곳에서는 술에 취해 노래를 불러도 듣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태그:#무등산, #취가정, #김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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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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