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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세계의 지붕' 네팔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지 3개월여가 지났습니다. 이후 평화여행단체인 이매진피스 임영신 공동책임자와 신주희씨는 네팔로 달려가 공정무역 생산자들 및 신두팔촉 피해지역 현황조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이매진피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네팔 현지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매진피스의 동의를 얻어 최근 네팔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편집자말]
가티와 굼탕에서 내려와 카트만두 보더나트 근처를 지나는 길, 주택가 한가운데 나타난 난민촌의 모습에 가던 길을 멈추고 말았다. 카트만두의 수많은 텐트들이 사라지고, 산 위의 마을마저도 폐허에서 골라낸 나무로 벽을 세우고 함석으로 지붕을 이어 임시처소를 마련해가는 모습을 보고 내려오던 길, 카트만두 한쪽에 난데없이 펼쳐진 100여채의 난민촌 풍경이 우리의 발걸음을 붙들어 매고 만 것이다.
카트만두 보더나트 근처 공터에 거대한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 난민촌의 풍경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 신주희
조심스레 난민촌을 둘러보다가 '신두팔촉 마을사람들'이라고 써둔 난민촌 입구의 간판을 뒤늦게 발견했다. 지진 후 100일이 지나도록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난민촌에 머무는 모습이 의아해 그곳을 서성이자 몇 사람이 우리에게 먼저 다가왔다. 그중 한 사람이 동행하던 카르마 파운데이션의 길부씨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난민촌에서 의료봉사를 돕고 있는 고향 친구라 했다. 3개월째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그분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몇 가지 묻기 시작했다. 여기 이 수많은 사람들이 왜 여전히 텐트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여기 있는 사람들은 국경지대 따뚜파니 사람들이에요. 워낙 깊은 산악지대인 데다가 산사태가 나면 마을 전체가 함몰되거나 고립될 위험이 있어 지진 이후 카트만두로 구호단체들의 도움으로 피난을 온 거죠."

135개의 텐트에선 무려 700여 명의 사람이 살아가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음식을 실은 푸드 트럭이 나타나 천막에서 저녁 배식을 시작했다. 줄을 서서 천천히 저녁 식사를 챙기고 펌프가 있는 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뛰어노는 일상이 텐트촌 가득히 펼쳐지고 있었다.
빼곡한 텐트촌, 지진 후 우기와 산사태에 두려움은 산악 마을사람들을 도시 난민으로 내몰았다. ⓒ 신주희
푸드트럭에서 배식을 위해 음식통을 바삐 나르고 있다. ⓒ 신주희
텐트 밖 한쪽에서 식재료를 손질하며 저녁을 준비한다, ⓒ 신주희
텐트촌에 있는 우물터에는 물을 긷고 빨래를 하는 일상의 풍경이 가득하다. ⓒ 신주희
저녁이면 우물터에서 물을 긷고 빨래를 하는 일상이 어디서든 계속된다, ⓒ 신주희
텐트촌에서도 아이들의 웃음은 시들지 않는다. 우리네 '쎄쎄쎄'와 같이 손벽을 마주치는 놀이를 하는 아이들 모습이 천진하다. ⓒ 신주희
지진이 난 직후에는 텐트 하나 얻는 일조차 호사였던 네팔의 4월... 3개월 가까이 텐트 생활이 이어지면서 누군가는 쇠약함과 병에 시달리곤 했다.

"아내가 간호사라서 함께 사람들을 돕고 있어요. 기초적인 보건진료지만 텐트촌에 있는 700여 명의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문제가 늘 있으니까요. 가장 걱정되는 건 임산부들이에요. 12명의 임산부가 있는데 어른들이야 텐트촌에서 살아가는 것이 큰 문제는 안 되지만 신생아들은 다르죠. 신생아들이 태어나면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네요".

난민 아니면서도 난민촌에 살고 있는 그
난민이 아니지만 신두팔촉 난민촌에 사는 산악마라토너 템바 세르파. 아내와 함께 텐트촌 사람들의 진료를 돕는다. ⓒ 신주희
그에게 이것저것을 묻다가 문득 그의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그제야 이름을 물었다. 길부씨가 웃으며 소개를 시작했다.

"이 친구는 유명한 산악 마라토너예요. 에베레스트 산악 마라톤만 몇 번을 완주하였는지 몰라요."

난민이 아니면서도 신두팔촉 난민촌에 살고 있는 산악 마라토너 템바 세르파, 그는 병원에서 밤 근무를 마치고 낮에 텐트촌 사람들을 진료해야 하는 아내를 위해 집을 비워두고, 보더나트의 텐트촌에 살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오래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언제쯤 돌아가게 될지 묻자 그가 답했다.

"우기가 끝나야죠. 지진으로 산 위의 거대한 돌들이 뿌리째 흔들려 있는 상태인 데다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여진 때문에 더 두려운 상태거든요. 거기에 폭우까지 쏟아져 내리면 가파른 산자락 흙이 쓸려 내리며 산사태로 이어질 게 불 보듯 뻔한데 어떻게 그 산 위로 향하겠어요. 우기가 끝나기를, 여진이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모두 기다리고 있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의 이야기 위로 가티와 굼탕에 가는 길 보았던 거대한 산사태의 장면들이 겹쳐왔다. 한밤중 산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 150가구의 마을이 그대로 묻혀버린 거대한 산사태…. 지난해의 일이건만 한해가 지나도록 아직 시신도 찾지 못한 그 무서운 산사태의 폐허 위로 다시 지진이 찾아왔다.
신두팔촉 가티와 굼탕을 향해 가는 길. 지난해 일어났다는 거대한 산사태가 온 마을을 흔적도 없이 뒤덮었다. ⓒ 신주희
지난 4월 가티마을. 지진으로 떨어진 거대한 바위가 집을 통째로 부쉈다. ⓒ 신주희
흔들린 땅 위로 폭우가 쏟아져 내리고 산 위의 돌들은 때때로 무섭게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무너진 집을 한꺼번에 지을 힘도, 산사태를 막을 길도 없는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은 카트만두 한쪽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며 우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우기가 끝나기 전 태어날 아기들을 저 열악한 텐트촌에서 맞이해야 하는 12명의 임산부를 도울 방법을 찾아야겠다며 길부씨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텐트촌의 사람들도, 산 위의 사람들도 여전히 다 어려움 속에 있죠. 하지만 늘 어려움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그래야 끝내 어려움에 지지 않고 힘을 얻을 수 있어요."

지진 직후 길부씨는 고향 집과 마을 복구를 지원하겠다는 카르마 파운데이션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왜 도움을 거절한 것인지 묻자 그는 무심히 답했다. 

"지원은 귀한 도움이죠 하지만 의존은 무서운 거예요. 도움을 주겠다는 라지에게 이야기했죠. 도움 대신 일할 기회를 달라고..."

지진 전, 산악전문 가이드들을 트레이닝 하거나 고산등반을 안내했던 베테랑 산악가이드 길부씨가 무너진 집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거절하며 얻은 일자리는 다시 산을 오르는 일이었다. 긴급 구호의 발길과 도움이 필요한 곳은 모두 높고 깊은 산 위의 마을들이었던 탓이다. 지진이 지나간 네팔의 산악지대에 등반객 대신 태양광과 쌀, 텐트와 워터파이프를 지고 오르며, 그는 자기의 집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마을을, 삶을 세우는 여정을 함께 걸어온 것이다.

지진 후 100일, 네팔에 가장 필요한 것

지진 후 100일, 네팔의 좁고 높은 산 위의 길들을 걸으며 여전히 '집' 에 다다르지 못한 사람들을 마주하는 여정은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3개월이 넘도록 암흑 속에 살아가는 산 위의 마을들, 무너진 폐허 속에서 찾아 세울 기둥 하나 없어 폐허 속의 마당에 옥수수를 널어놓고 말리는 사람들, 산사태가 두려워 마을을 등지고 도시에 내려와 여전히 텐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 여정을 함께 해 준 길부씨에게 지진 이후의 네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조심스레 물었다. 지난 석 달간 집과 마을을 잃은 사람들에게 쌀, 물, 함석지붕을 나르며 함께 지진을 견뎌온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물론 집이지요. 식량도 랜턴도, 텐트도 모두 잠시 재난을 견디도록 돕는 것일 뿐 네팔 사람들에게 가장 간절하게 필요한 건 집이에요. 하지만 누가 84만 채에 달하는 집을 모두에게 줄 수 있겠어요. 정부마저도 한 가구당 15만 원을 지급한 것이 전부인 걸요."

네팔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집'이라는 그의 단호한 대답. 막막하게 서 있는 우리를 향해 그는 웃으며 해법을 내어놓는다.
지진 전, 산악전문 가이드를 트레이닝 하고 고산등반을 안내했던 베테랑 산악가이드 길부 세르파. 그는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이제 도움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집을 지어갈 수 있도록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 신주희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도움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일할 수 있는 기회예요. 사람들이 네팔을 도왔듯 다시 네팔을 찾아오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속도에 맞게 다시 집과 마을을 세워갈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어요."

솔로쿰부에서 온 마을 공동체 소녀 7명을 먹이고 재우며 공부시키는 그의 집에서 나누는 마지막 저녁 식사. 길부씨의 아내가 준비해 주신 티베트 음식과 옛 앨범들, 함께 나누는 웃음과 이야기는 따스하고 풍성했다.

1990년대 초반의 에베레스트 등정부터 일본 등반가들까지 그가 전문 산악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며 탄성을 지르다가 다음에 네팔에 올 때는 그와 함께 히말라야를 오르기로 손가락을 건다. 그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일상과 네팔의 일상이 잇닿을 때, 네팔사람들 스스로의 힘으로 무너진 집과 마을들을 세워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며...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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