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다리 포럼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이 메르스 사태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 다리 포럼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이 메르스 사태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 다리

관련사진보기


"메르스는 한국에 재난영화를 방불케 할 만큼의 공포를 가져왔습니다. 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 공포였죠. 많이 걱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정말 메르스는 끝난 걸까요?"

지난 8월 22일 오후, 서울대 병원 강당. 사람들은 분주했고, 이내 강연이 시작됐다. 무슨 강연이었을까.

젊은 보건의료인들의 공간 '다리'는 2008년 촛불집회 때 의료민영화 반대운동을 계기로 진보적인 보건의료계 청년들이 결성한 단체다. '다리'는 발로 걷는 '다리' 그리고 연결하는 '다리'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회원들의 전공은 무척 다양했다. 간호학·의학·약학·한의학·보건학 계열 학부생은 물론, 현직 의사와 약사들도 활동하고 있다. 다리는 2000년대 한국사의 아픈 굴곡들인 용산참사, 강정마을 진료지원 활동에 참여했으며, 지금도 삼성 백혈병 피해자, 산재 노동자, 퀴어퍼레이드 등 다양한 사회운동 현장에서 의료지원을 포함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다.

이날 열린 강연은 다리가 주관하는 건강권 포럼이었다. 다리는 포럼에서 지난해 의료민영화를 다뤘지만, 올해는 '모두를 위한 건강'을 주제로 강연을 마련했다.

환경, 성소수자, 젠더... 보건의료 포럼 맞아?

연사들의 구성이 흥미롭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이상윤 건강과 대안 연구위원, 전진한 인의협 정책부장 등 의료계 전문가들도 있지만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 주임교수, 곽이경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 전 운영위원장, 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등 노동·성소수자·환경운동 분야 전문가들이 많았다.

사실 다리의 포럼이 기대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보건의료와는 동떨어진 것 같은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기대에 있었다. 아래에서 강연의 일부를 들어보자.

"한국 간호사 평균 근속연수가 4년이 조금 넘습니다. 병동의 경우 2년, 서울의 병동 간호사의 근속연수는 2년이 되지 않습니다.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요즘엔 환자들이 새벽 2~3시에 피를 뽑고, MRI 등을 촬영합니다.

낮과 업무량은 거의 차이가 없지만, 밤에는 사람을 적게 둡니다. 밤에 간호사들이 죽어납니다. 노동강도가 굉장히 강력하고, 심해서 버티지를 못합니다. 그럼 해결책은 사람을 많이 뽑아 노동강도를 줄이는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6교대 근무입니다. 심지어 8교대가 필요하다는 연구보고서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3교대로 돌아가는데 이를 규제하는 법안은 있지만 실질적 강제력이 없습니다. 처벌조항이 없는 거죠. 병원이 왜 이럴까요? 간호사를 고용하지 않으면 돈이 많이 남기 때문입니다."(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문송면군 사건을 아시나요? 1988년 온도계 제조 공장에서 일하던 15세 소년이 수은중독에 걸립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보건의료인과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운동을 시작했고, 우리 사회에 숨겨져 있었던 노동자 건강의 심각한 문제점들이 사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합니다."(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6개월간 투병을 하고 세상을 떠난 파트너가 있어요. 휴직을 하고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어요. 병원을 다니며 간호사·의사 분들과 친해졌지만 저는 한 번도 제 '관계'에 대해 말을 못했어요. 매일 간병을 하고, 치료비를 내면 실질적 보호자잖아요?

끝까지 잘 숨기고 있었는데, 마지막 결과 보는 날 있잖아요? 그때 선생님이 3개월간 안 물어본 질문을 했어요.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동생이에요'라고 거짓말을 했어도 됐을 텐데, '친한 친구에요'했더니 보여주던 사진을 끄시더라구요. '가족들에게 말해야 되는 건데 친구가 오면 어떡하냐고?' 너무 슬펐어요.

'내가 가족인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병원이 내게 적대적이고 이질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외에도 의료기록 등도 친구가 못 떼더라고요. 모든 게 이렇게 돼 있구나 생각했어요."(곽이경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 전 운영위원장)

"헤렌 캘디컷에 의하면 여자가 남자보다 2배 더, 어린이가 20배 더 방사능에 대해 취약합니다. 그래서 임신 중에는 X-RAY 검사도 하지 않아요. 그런데 현재 설정되어 있는 방사능 기준치는 25세 70킬로그램의 남자를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성별과 연령이 기준 설정에 고려돼 있지 않은 겁니다."(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위와 같이 노동, 성정체성, 환경 등은 보건 의료와 직접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슈들은 사회적 편견, 고착화된 제도와 결합해서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보건의료문제가 이슈가 되는 경우는 주로 의료 민영화가 논란이 될 때다. 하지만 이렇듯 보건의료문제는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 일터 심지어 개인의 가장 내밀한 정체성까지 연결돼 있을 만큼 '일상'의 문제다.

심각한 공공의료의 부족

강연에서 우석균 정책위원장은 한국의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 중 하나로 공공의료의 부족을 지적했다. 지난 메르스 사태로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음압격리병실. 메르스 사태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삼성병원에도 음압격리병실이 없었다고 한다. 음압격리 병실은 전기료만 1년에 5000만 원이 들고, 짓는 데는 6억 원 정도가 소요된다.

이런 높은 유지비를 요구하고 평소 수요가 적어 적자가 뻔히 예상되는 병실은 시장경제체제 하에서는 공급이 충분히 이뤄질 수 없다. 게다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불거진 감염환자를 응급실로 이송한 비정규직 요원 중 1명을 격리 리스트에서 빼먹은 사태가 있었다.

이송요원은 병원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원이지만, 이를 관리가 허술해질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이유 또한 비용절감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공병원의 OECD평균 비율은 73%인데 반해 한국은 10%에 불과하다.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 먼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보건의료체계의 현 지점인 것이다.

중요한 만큼 더 많은 관심을

대다수의 국민들은 메르스, 신종플루 등의 전염병이 돌 때나, 의료보험 개혁 등이 전면적인 이슈가 될 때에만 보건문제에 관심을 둔다. 보건의료체계는 정부·기업·국제관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은 물론 전문적 용어로 인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주제다.

그렇기에 대중들이 비교적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러한 행사의 의미는 크다. 앞으로도 다리의 활동이 대중들이 보건의료체계의 전반적인 문제를 인식하는데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된다.

한편, 다리는 오는 9월 5일 오후 3시 보건의료단체연합 강당에서 다국적 제약회사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콘스탄트 가드너>를 함께 보고 소감을 나누는 소소한 상영회를 가진다고 한다.

영화로 보는 건강권 9월 5일에 예정된 다리 영화상영회의 포스터
▲ 영화로 보는 건강권 9월 5일에 예정된 다리 영화상영회의 포스터
ⓒ 다리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젊은 보건의료인의 공간 다리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위 강연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연사들의 발언은 기자가 강연의 본 내용을 유지하면서 재구성했음을 알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