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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6일 오후, 당초 8월 27일 오전 10시 열 예정이었던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에 대한 선고공판을 9월 10일 오전 10시로 연기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일산 마두역 3번 출구 앞 작은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비가 오고 있었다. 계절이 확 넘어가 버렸다. 골목길을 따라 꺾여있는 카페 귀퉁이에 나무 테이블과 나무 의자가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담배를 피웠다.

지난 8월 25일 오전 11시. 밤을 꼬박 새웠다는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의 얼굴은 건강해 보였다. 아니, 얼마 후 어쩌면 다시 수인(囚人)으로 신분이 바뀔지도 모를 사람이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표정이 밝았다.

"크게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선고공판 전에 해야 할 일들은 최대한 마무리하려고요."

정진우 노동당 전 부대표.
 정진우 노동당 전 부대표.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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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전 부대표는 전날 밤 영등포에 있는 노동당 중앙당사에 있었다. 내년 총선을 위한 노동당 전략의제사업단에서 노동 관련 의제를 만들어내는 게 그의 역할이다. 그는 신촌에 있는 알바연대 사무실에도 들렀다. 최근 노동당 대표 선거에 후보로 출마한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의 선거운동을 맡고 있다. 그는 또 '최저임금 1만 원 운동본부' 공동 본부장을 맡고 있다.

정진우는 이처럼 매일 사람을 만나고 언론을 상대하고 철야회의를 밥 먹듯 한다. 속된 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한 몸뚱이'조차 9월 10일 이후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 됐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때 시작된 검찰과의 악연

지난 7월 7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그에게 2년 형을 선고했고, 그 선고공판이 오는 9월 10일 열린다. 정 전 부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유무죄를 포함한 형의 선고판결을 받는다. 그에게 씌워진 죄목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위반 및 일반교통방해.

정진우는 노동당 부대표로 활동하던 지난해 6월 10일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만민공동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한 죄로 연행됐고, 시민 한 명과 함께 바로 구속됐다. 정 전 부대표는 그해 7월 30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때 수원 영통 선거구에서 노동당 후보로 옥중출마했고, 선거 1주일여를 앞두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때부터 1년 2개월 동안 정 전 부대표와 검찰 간의 지루한 법정싸움이 이어졌다.

한진중공업 사태 때 희망버스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정진우 당시 노동당 부대표는 송경동 시인과 함께 구속됐다가 3개월 만에 정 전 부대표만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 정 전 부대표는 2013년 최종범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노동자의 자살로 촉발된 삼성대책위 활동을 했고, 그해 겨울 다시 한 번 검찰의 표적이 됐다. 그리고 지난해 6월 총리공관 앞에서 열린 세월호 만민공동회를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지금까지 검찰과 싸우고 있다.

집시법 및 도로교통법 위반. 정 전 부대표의 피의사실은 단순하다. 이 싸움은 검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듯 보였다. 그러나 정 전 부대표와 검찰의 싸움은 새 국면을 맞으면서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이 재판으로 제 할 일은 다 했어요"

작년 10월 1일 카카오톡 사찰 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
 작년 10월 1일 카카오톡 사찰 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
ⓒ 노동당 사진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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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의 카카오톡 사찰폭로 기자회견 후 시민사회단체에서 수사기관의 불법적인 사이버 사찰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시민행동을 출범시켰다.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의 카카오톡 사찰폭로 기자회견 후 시민사회단체에서 수사기관의 불법적인 사이버 사찰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시민행동을 출범시켰다.
ⓒ 노동당 사진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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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 부대표를 더 세게 옭아맬 구실을 만들던 검찰은 그가 2014년 5월 1일부터 6월 10일 사이에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뒤졌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다음카카오 본사 서버에 이른바 '팩스 영장'을 집행하고, 혐의사실과 아무 관련 없는 그의 대화방 47개에 담겨있는 2368명에 달하는 일반 시민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봤다.

"9월 17일쯤일 거예요. 종로경찰서에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수색·검증 집행사실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5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의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대화 상대방 아이디·전화번호·대화일시·수발신 내역 일체와 그림 사진 파일이 다 포함돼 있었지요."

정 전 부대표는 그해 10월 1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른바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이다. 이 기자회견이 나간 이후 시민들은 불안해했고, 시민사회단체는 분노로 들끓었다.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 같은 외국에 서버를 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의 '사이버 망명'이 줄을 이었다. 이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 그리고 다음카카오의 해명이 오락가락했던 게 시민들의 의혹을 더 키웠다. 그러나 검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검찰은 바로 저에 대한 보석 취소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어요. 제가 카카오톡 관련 기자회견을 해서 국가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집어넣어야 한다는 거였지요."

당시 검찰의 보석 취소 의견서 내용은 이렇다.

"적법하고 정당한 경찰의 과학수사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은 국가적 혼란을 야기하고 선량한 기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점을 고려해 달라."

다행히 검찰의 보석 취소 요구는 법원에 의해 채택되지 않았고, '사이버 사찰' 논란은 대형 사회이슈로 커졌다. 결국,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도 국회에 출석해서 사과 비슷한 발언을 했다.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기는 하지만 카카오톡 불법사찰 폭로 기자회견으로 지금 사이버 사찰 금지법이 만들어졌지요. 물론 그 반대 법안인 SNS 감청 합법화 법안도 새누리당이 만들어 올렸지만요. 어쨌든 이번 재판을 통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생각입니다."

탁자 위를 보니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우리 둘이 거의 한 갑을 태웠다.

법원은 지난 7월 7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제출한 카카오톡 대화 기록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유환우 판사는 "검찰이 기록으로 제출한 카카오톡 대화 기록은 위법 수집한 증거로 보이므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영장 원본을 제시하지 않은 이른바 '팩스영장' 집행은 영장주의의 본질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날 정진우에게 2년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집시법에 도로교통법, 그리고 2013년 삼성전자 대책위 때 일까지 모두 끌어다 2년을 때린 겁니다. 검찰에게 정진우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니까요. 그러니 기어이 집어넣어야겠다는 거지요."

정진우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웃었다.

"박래군 선배가 7월 16일에 구속됐지요. 이제 저 혼자 남은 거네요. 그래서 주변에서는 이번 선고공판이 어떻게 내려질지 더 많이 걱정하는 듯합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때 송경동 시인이 구속됐다. 희망버스 관련 대법원 선고를 앞둔 또 한 명의 공범(?)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세월호 국민대책위 활동을 한 죄(?)로 구속됐다. 정진우 전 부대표를 인터뷰하는 내내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작년 6월 10일 열린 세월호 만민공동회 때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한 죄로 2년형을 구현 받은 정진우 노동당 전 부대표. 내일(8월 2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그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다.
 작년 6월 10일 열린 세월호 만민공동회 때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한 죄로 2년형을 구현 받은 정진우 노동당 전 부대표. 내일(8월 2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그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다.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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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

원래 8월 27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었던 정진우 선고공판이 연기됐다. 이 기사를 쓰고 난 8월 26일 오후, 정진우 전 부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법원에서 증거물 추가검토를 이유로 공판을 연기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4고단4122 일반교통방해 사건과 관련하여 2015.08.27. 10:00 신고기일이 2015.09.10. 10:00로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요."

정진우 선고공판은 이미 8월 13일에서 27일로 한 번 연기 됐었다. 이번이 두 번째 선고공판 연기다. 그것도 같은 이유로. 무죄를 유죄로 만들려는 검찰의 노력이 눈물겹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동욱 시민기자의 블로그 (penandpower.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정진우, #노동당, #세월호, #카카오톡, #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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