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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늦도록 잠들려 하지 않으면 어버이는 고단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고단할까요? 아이가 안 자서 어버이인 내가 못 자거나 다른 일을 못 하기에 고단할까요? 아이가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않으면 아침에 늦게 일어나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더라도 몸이 찌뿌둥할까 싶어서 고단할까요?

아이를 꾸짖는 어버이는 '아이 아닌 어버이 스스로'를 꾸짖는 셈입니다. 아이를 나무라는 어버이는 '아이 아닌 어버이 스스로'를 나무라는 셈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꾸짖거나 나무라는 어버이는 '아이가 시무룩해 하거나 울'면,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아이를 꾸짖거나 나무랄 일까지 아니었는데 괜한 짓을 한 줄 뒤늦게 알아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한테 한 말은 모두 어버이가 저 스스로한테 한 말이라 가슴에 날카롭게 꽂히고 말지요.

이와 달리, 아이를 따사롭게 보듬으면서 아끼는 말은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버이한테도 하는 말입니다. 아이한테 부드럽고 착하게 흐르는 말은 바로 어버이 스스로한테 부드럽고 착하게 흘러요. 따스하면서 살가이 부르는 자장노래는 아이한테도 곱게 스미지만, 이 노래를 부르는 어버이 가슴에 한결 뚜렷하면서 곱게 감겨들기 마련입니다.

떨어진 손톱을 보며 / 빙긋 / 조각 웃음을 흘리는데 // 손톱 깎다 말고 뭐 해? / 엄마가 소리치는 바람에 / 얼른 손톱을 쓸어 모았다. (손톱)

겉그림
 겉그림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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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환님이 빚은 동시집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창비, 2013)을 읽습니다. 책이름부터 뭔가 '있어' 보이는 동시집입니다.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았다니, 아팠을까요 서운했을까요 놀랐을까요 슬펐을까요 괴로웠을까요 미웠을까요, 아니면 사랑스러웠을까요. 아이 어머니는 왜 아이를 빗자루를 들어서 때렸을까요. 맞아서 아프라고 빗자루를 들었을까요, 아니면 맨손으로 손찌검을 하기 싫어서 빗자루를 들었을까요, 아니면 눈에 빗자루가 보여서 바로 집어서 성풀이를 하려 했을까요.

어머니도 아직 사랑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아니, 어머니라고 해서 사랑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어머니가 되기 앞서'까지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입시에 빠져들어 헤매다가 대학교를 마쳤고, 대학교를 마친 뒤 몇 해쯤 회사 일을 하다가 아기를 배어 회사를 그만둔 뒤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많아요. 이렇게 살아온 어머니는 '사랑을 찬찬히 돌아볼 겨를'이 없기 마련입니다. 이는 아버지도 똑같아요. 참말 사랑을 잘 모르니 멋모르고 빗자루를 들어서 아이를 나무라거나 꾸짖고 맙니다.

달이 나에게 / 고운 달빛과 긴 그림자를 / 선물로 주었다. (달밤)

콩알처럼 동글동글한 / 콩새는 / 콩을 좋아해. (콩새)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선물합니다. 어버이는 사랑을 선물하려고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합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사랑을 선물하기에 아이도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하지 않아요. 그럼 왜 아이는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할까요?

자,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돈을 선물할까요? 아니지요. 아이는 어버이한테 밥을 선물할까요? 아니지요. 옷이나 집을 선물할까요? 아니에요. 아이는 어버이한테 자동차나 자격증이나 성적표 따위를 선물하지 않아요. 아이는 어버이한테 케이크나 떡도 선물하지 않아요. 두 살 아기가 밥을 지을 수도 없지만, 뭘 돈으로 장만해서 선물할 수도 없습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는 어버이한테 오직 사랑을 선물합니다. 사랑받기에 사랑을 선물로 하지 않아요. 아이 숨결은 언제 어디에서나 모두 사랑뿐이라서, 늘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합니다.

별만큼 작은 별꽃. / 별만큼 예쁜 별꽃. // 별은 밤하늘에 숨어서 빛나고 / 별꽃은 길섶에 숨어서 피지요. // 별은 고개를 들어야 보이고 / 별꽃은 고개를 숙여야 보이지요. (별꽃)

사랑을 선물하면서 사랑을 받는 아이는 별꽃을 별처럼 알아봅니다. 학자가 별꽃이라는 이름을 붙였기에 '별꽃'이라 하지 않습니다. 아이 스스로 길바닥을 쳐다보고 풀밭을 바라보다가 문득 '와, 여기에 하얀 별이 조그맣게 내렸네!'하고 놀라면서 '별꽃'이라는 이름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아이는 별꽃이 별꽃나물인지 아닌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저 하얀 별이 낮에도 방긋방긋 웃는구나 싶어서 반갑습니다. 개미를 보려다가, 사마귀나 메뚜기를 보려다가, 나비나 잠자리를 잡으려다가, 아이는 문득 별꽃을 보고는 별을 그리면서 온마음이 새롭게 푸근합니다.

엄마 차 타고 가는데 / 갑자기 / 택시가 옆에서 끼어들자 / 엄마가 욕을 했다. / 나도 옆에서 / 한마디 거들었더니 / 엄마 얼굴이 굳어졌다. (엄마 얼굴이 빨개졌다)

아빠 차 타고 가다 / 깜박 잠이 들었는데 // 어느새 시골에 다 왔다며 / 빨리 내리란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건?)

서로 즐겁게 아끼고, 꽃내음 함께 맡으며, 어디로든 자전거로 나란히 달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시는 늘 저절로 샘솟는다고 느낍니다. 즐겁게 삶을 지으면서 동시도 노래도 함께 부릅니다.
 서로 즐겁게 아끼고, 꽃내음 함께 맡으며, 어디로든 자전거로 나란히 달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시는 늘 저절로 샘솟는다고 느낍니다. 즐겁게 삶을 지으면서 동시도 노래도 함께 부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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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별꽃을 바라보면서 나비하고 노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동차를 몹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동차를 모느라 아이를 쳐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몰면서 옆이나 뒤를 돌아볼 사람은 없어요. 말이 안 되지요. 자동차를 싱싱 몰다가 옆을 보면 어찌 되겠어요? 큰일이 나지요.

그렇다고 자가용을 모는 일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가용을 모는 어버이는 그만큼 아이 얼굴을 또렷이 쳐다볼 겨를이 없다는 뜻입니다. 자가용을 모느라 다른 자동차와 길알림판과 찻길 따위를 살피느라, 막상 아이가 어떤 눈빛이요 몸짓이며 마음인가를 살필 틈이 없다는 뜻입니다.

박일환님은 '엄마 얼굴이 빨개졌다'라든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건?'처럼 재미난 동시를 씁니다. 비록 자동차를 몰 적에 어버이는 아이하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이런 삶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아요. 어머니는 얼굴이 벌개지고, 아버지는 아이가 잘 자도록 하면서 시골집까지 잘 왔구나 싶어 마음을 놓는 이야기를 찬찬히 잘 들려줍니다.

모기가 / 팔뚝을 물었다. // 빨갛게 / 솟아오른 자리에 // 할머니가 / 침을 발라 주셨다. // 모기 주둥이처럼 / 내 입이 / 삐죽 튀어나왔다. (모기 주둥이)

'모기 주둥이' 같은 동시도 재미있지요. 할머니를 몹시 사랑하고 좋아해서 '할머니 침이 묻은 밥'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아이가 있을 테고, 모기 물린 자리에 할머니가 침을 바르면 징그럽거나 싫다고 여길 아이가 있을 테지요. 이래서 좋고 저래서 나쁘지 않습니다. 아이들마다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것을 보면서 자라기 때문에, 그저 다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다만, 이럴 때에, 그러니까 아이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만날 적에, 어머니나 아버지도 곁에 있기를 바라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슬기롭게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시겠지만, 어머니나 아버지도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새삼스레 느끼면서 새롭게 받아들이고, 또 아이한테 살가운 징검다리 구실을 할 수 있으면 한결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이러한 삶이 되면, 동시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만하겠지요.

그나저나, "파란 고추는 익으면 / 빨간 고추가 되고 // 파란 사과도 익으면 / 빨간 사과가 되는데 // 파란 수박은 아무리 익어도 / 파란 수박인걸(엉큼한 수박)."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동시는 좀 아쉽습니다. 풋고추나 풋능금은 '푸른 빛깔'입니다. 풀빛입니다. '파란 빛깔'이 아니지요. 더더구나 수박을 놓고 "파란 수박"이라고 하다니요.

"새파란 보리싹"처럼 쓰기도 합니다만, 오늘날 아이들은 시골에서 거의 안 살 뿐 아니라, 시골일조차 제대로 모릅니다. 먼 옛날에 누구나 시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시골일을 하던 때라면 "새파란 보리싹"이라 말해도 다 알아듣습니다만, 요즈음 도시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또 도시에서 가게에서나 고추랑 능금이랑 수박을 볼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고추도 능금도 수박도 '푸른'이라는 말을 붙여서 나타내야 올바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박일환 글
오윤화 그림
창비 펴냄, 2013.12.16.
8500원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박일환 지음, 오윤화 그림, 창비(2013)


태그:#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박일환, #어린이문학, #동시읽기,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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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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