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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피렌체의 경쟁 도시였지만, 경쟁에서 패배한 덕분에 오히려 중세의 흔적을 잘 간직한 도시, '시에나(Siena)'. 기차를 탈 수도 있지만 좀 더 빨리 간다는 말에 시에나 행 'rapido'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름 그대로 급행버스란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습니다.

오래된 버스는 이탈리아 도로의 미세한 요철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흡수하려는 듯 덜컹거렸고, 그럴 때마다 귀를 자극하는 기계 마찰 소음이 심하게 들렸습니다. 빨리 가는지는 몰라도 시에나에 도착할 때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역시 이탈리아는 기차 여행이 최고란 말을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시에나의 중심인 '캄포 광장'과 '푸블리코 궁전'의 종탑인 '만자탑'입니다.
▲ 캄포광장과 만자탑 시에나의 중심인 '캄포 광장'과 '푸블리코 궁전'의 종탑인 '만자탑'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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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힘들었던 버스 여행을 마치고 천천히 걸어서 시에나의 중심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으로 향합니다. 시에나! 피렌체, 피사 등과 함께 중세 이탈리아의 번영을 이끌었던 도시. 하지만 도시 개발권을 둘러싼 피렌체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후 점점 쇠락의 길을 걸었던 도시. 그런 까닭으로 오히려 중세의 도시 구조를 잘 보존하게 된 아이러니한 도시.

도시의 아홉 지역, 콘트라다(Contrada, 지역 자치구)를 대표하는 9인에 의한 공동의 정부를 구성했던 민주적인 도시. 그리고 해마다 '캄포 광장'을 중심으로 열리는 아홉 콘트라다 공동 경마 대회인 정열적인 '팔리오 축제'의 도시. 

9인 정부를 상징하는 듯 9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는, 부채꼴 모양의 '캄포 광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고 화려합니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시청사인 '푸블리코 궁전(Palazzo Pubblico)' 쪽으로 약간 경사가 져 있어 편하게 앉아서 '푸블리코 궁전'과 '만자탑(Torre del Mangia)'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시에나의 민주적 정치 구조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자탑'에서 내려다 본 중세 도시 시에나의 전경과 토스카나의 풍경입니다.
▲ 시에나 전경 '만자탑'에서 내려다 본 중세 도시 시에나의 전경과 토스카나의 풍경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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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들리는 종소리, 중세를 느끼다

우선 '푸블리코 궁전'의 종탑인 '만자탑'으로 향합니다. 이탈리아에 가면 높은 곳은 무조건 올라가 보라던 여행 선배들의 조언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좁디 좁은 계단을 천천히, 오르고 또 오릅니다. 그러자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지는 또 다른 토스카나의 전경. 흐린 날씨 탓에 '산 지미냐노'에서의 황홀함보단 조금 부족한 느낌이지만 중세 도시 시에나를 배경으로 펼쳐진 전경은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습니다.

특히 시에나의 '두오모'와 성당들과 오래된 건물들이 빚어내는 스카이라인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내려다 보이는 선명한 부채꼴 모양의 '캄포 광장'은 아래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게 시에나 곳곳을 바라보다 막 '만자탑'을 내려오려는 순간, 나는 또 가슴 떨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종소리였습니다. 저 멀리 '두오모'에서부터 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그것을 신호로 시에나 여기저기서 마치 연주회라도 하듯 종소리들이 들려오는 게 아닙니까?

'만자탑'에서도 종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제법 차갑게 불어오는 초겨울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소리들의 향연이 멈출 때까지 '만자탑' 위에서 시에나와 중세를 느낍니다.

'만자탑'에서  내려다 본 '캄포 광장'. 9개 콘트라다의 민주적 분권 체제를 상징하는 부채꼴 모양의 광장입니다.
▲ 캄포 광장 '만자탑'에서 내려다 본 '캄포 광장'. 9개 콘트라다의 민주적 분권 체제를 상징하는 부채꼴 모양의 광장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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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러시아인 연인 한 쌍, 노르웨이인 부부, 고소 공포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영국 여인과 그 연인, 그리고 한국인 한 명에게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두오모'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를 원했는데, '만자탑'의 철골 구조물 때문에 늘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것 같은 사진을 찍어줄 수밖에 없어 조금은 미안했습니다.

'만자탑'에서 내려와 곧바로 같은 '푸블리코 궁전'에 있는 '시립 박물관(Museo Civico)'으로 향합니다. 이곳에서는 과거 시에나의 영광을 상징하는 '시에나 화파'의 프레스코화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14세기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시에나 화파

그림들을 만나기 전에 먼저 '시에나 화파'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중세의 끝 무렵인 13세기 말, 시에나의 두치오 디 부오닌세냐는 비잔틴 미술의 전통에 고딕 양식을 결합해 매혹적인 색채와 물결치는 곡선, 정밀한 구도로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 냅니다. 그 후 두치오의 제자이며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림의 작가인 시모네 마르티니가 아비뇽 시절 비잔틴 화풍을 극복하고, 선적인 민감성과 환상적인 정서로 우아하고 화려한 감정을 표현해 시에나 화파의 화풍을 확립하게 되죠. 이른바 '국제 고딕 양식'의 탄생입니다.

이후, 14세기 시에나 화파를 대표하는 로렌체티 형제는 비상한 재능을 보이는데, 형 피에트로는 극적 표정과 심오한 감정의 깊이를 추구했고, 동생 암브로조는 교훈적인 묘사와 시민의 풍속 묘사를 통해 매혹적이면서도 도해적인 화풍을 발전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그 무렵, 피렌체에서는 이미 지오토가 고딕 양식을 극복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15세기 초엔 마사초가 등장해 혁명적 작업들을 통해 르네상스 회화의 시원을 열어갑니다. 하지만 시에나 화파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었죠. 여전히 14세기 화풍이 이어졌고, 결국엔 피렌체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도시 시에나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시에나 화파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도시의 쇠락과 운명을 같이한 시에나 화파. 그렇다고 시에나 화파가 남긴 미술사적 업적이 폄훼될 수는 없습니다. 14세기 서양 미술사는 곧 시에나 화파의 역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르네상스의 시원을 연 지오토와 마사초의 존재도 시에나 화파의 성과가 바탕이 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스피넬로 아레티노, '푼타 산 살보레 전투', 시에나 푸블리코 궁전.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프리드리히 1세와 시에나 출신의 교황 알렉산데르 3세를 지지하는 베네치아 공국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해전을 묘사한 프레스코입니다.
▲ 푼타 산 살보레 전투 스피넬로 아레티노, '푼타 산 살보레 전투', 시에나 푸블리코 궁전.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프리드리히 1세와 시에나 출신의 교황 알렉산데르 3세를 지지하는 베네치아 공국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해전을 묘사한 프레스코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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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그 시에나 화파의 그림들을 만나 보겠습니다. 화려한 엠마누엘레 2세의 홀을 지나면 맞은편 벽에 눈을 사로잡는 프레스코화가 가득합니다. 스피넬로 아레티노의 프레스코화, <푼타 산 살보레 전투>입니다.

이 곳, 시에나에 오기 전까지 나는 작가 스피넬로 아레티노도 물론이고, 이 그림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벽 전체를 가득 채운 이 프레스코를 보는 순간, 그 독특한 화면 구성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옆에 있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역시 친절하게 가르쳐 줍니다.

직원의 말에 따르면, 이 프레스코는 신성로마제국과 교황파인 베네치아 공국 사이에 벌어진 해전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당시 오랜 갈등 관계에 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시에나 출신의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이 전투를 끝으로 평화 협정을 맺었다고 합니다. 시에나 출신 위인의 업적을 다룬 역사화인 셈입니다.

스피넬로 아레티노, '푼타 산 살보레 전투'(부분). 시에나 푸블리코 궁전. 원근법이 전혀 사용되지 않은 화면에 치열하게 묘사된 전투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 푼타 산 살보레 전투 (부분) 스피넬로 아레티노, '푼타 산 살보레 전투'(부분). 시에나 푸블리코 궁전. 원근법이 전혀 사용되지 않은 화면에 치열하게 묘사된 전투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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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그림의 내용보다 원근법이 전혀 사용되지 않은 평면적인 화면 구조에 더 관심이 갑니다. 어제 '우피치 미술관'에서 만났던 우첼로의 <산 로마노의 전투>보다 불과 수 십 년 전의 그림인데 그 표현 방식의 차이가 이토록 극명합니다.

특히 수많은 병사의 다양한 표정과 동작은 한 장면 한 장면이 만화처럼 묘사되어 있어서 전투의 치열함과는 별도로 독특한 재미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딕 양식으로 그려진 전투 장면은 처음 만나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만나볼 작품은 시에나 화파의 거장, 시모네 마르티니의 '구이도리초 다 폴리아노 장군'입니다. 이 그림은 시에나에서 그려진 거의 최초의 비종교적 그림으로, 이후 르네상스 시기 수많은 기마 초상화의 선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에나의 전성기 시절, 반기를 들었던 주변 도시 국가들을 제압하고 시에나 성으로 돌아오는 구이도리초 다 폴리아노 장군의 당당한 모습을 묘사한 이 프레스코화는 당시 시에나 공화국의 국력과 자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따르는 병사 한 명 없이 단기로 돌아오는 장군의 모습은 고독한 영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시모네 마르티니, '구이도리초 다 폴리아노 장군'(부분), 시에나 푸블리코 궁전. 주위 도시들을 정복하고 돌아오는 장군의 모습을 당당하게 묘사한 이 그림은 전성기 시에나의 영광을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 구이도리초 다 폴리아노 장군 시모네 마르티니, '구이도리초 다 폴리아노 장군'(부분), 시에나 푸블리코 궁전. 주위 도시들을 정복하고 돌아오는 장군의 모습을 당당하게 묘사한 이 그림은 전성기 시에나의 영광을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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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보존하고 있는 '역사'

그리고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앞서 해전을 묘사한 프레스코도 그렇고, 이 폴리아노 장군의 프레스코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지방사(地方史)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시에나'란 도시 자체의 역사도 평범한 여행자들의 입장에선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지요. 부러운 점은 이탈리아에서는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어떻게 보면 세계사적으로 그다지 큰 의미도 없는)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예술 작품을 통해 잘 보존해 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식민치하와 전쟁,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던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사라지고 훼손된 우리의 현실은 안타까움을 너머 참담할 지경이죠. 깊이 생각하면 부러움에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구이도리초 다 폴리아노 장군>의 프레스코 맞은편에는 시모네 마르티니의 또 다른 대표작 <마에스타(Maesta, 장엄 또는 영광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가로 7미터에 이르는 이 그림은 잠시 후 만날 마르티니의 스승, 두치오의 <마에스타>와 함께 시에나의 상징적 그림입니다. 마르티니가 아직 국제 고딕 양식을 확립하기 이전 두치오의 영향 아래 그린 것이죠. 그래서 전체적인 구도와 묘사가 두치오의 작품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시모네 마르티니, '마에스타', 시에나 푸블리코 궁전. 시에나 화파의 거장 시모네 마르티니가  그린 이 그림 역시 전성기 시에나의 영광을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마르티니는 이 그림으로 명성을 얻어 아비뇽 궁정으로 불려가 그곳에서 국제 고딕 양식을 확립하게 됩니다.
▲ 마에스타 시모네 마르티니, '마에스타', 시에나 푸블리코 궁전. 시에나 화파의 거장 시모네 마르티니가 그린 이 그림 역시 전성기 시에나의 영광을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마르티니는 이 그림으로 명성을 얻어 아비뇽 궁정으로 불려가 그곳에서 국제 고딕 양식을 확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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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 그림이 제단화임에도 성당이 아니라 시청사의 벽에, 그것도 프레스코라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맞은편 폴리아노 장군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목적보다는 중세 후기 시에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제작한 것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어쨌든 마르티니는 이 그림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얼마 후 아비뇽 궁정으로 불려가 그곳에서 국제 고딕 양식을 확립하게 됩니다.

자, 이제 이 '푸블리코 궁전'의 제 마음 속 하이라이트를 만날 차례입니다.

(9-2. 시에나 2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시에나, #캄포광장, #만자탑, #푸블리코궁전, #이탈리아미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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