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지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금요일 점심마다 미국 백악관 앞에서 반전 평화 시위를 17년간 지속했다는 가톨릭 워커(Catholic Worker)는 매주 월요일 오전 7시부터 8시까지 펜타곤 앞에서 같은 시위를 28년째 해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찻길을 두 개나 건너 굴다리 아래에서 시위를 했다. 그런데, 이들은 펜타곤 출입구에 딱 붙어있는 지하철역 입구에서 한단다. 어? 거기는 우리가 갔다가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쫓겨났던 곳인데?

워싱턴 가톨릭 워커 하우스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캐시 할머니는 우리 말을 듣고는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자기네는 28년째 시위를 하는 동안 어떤 사전 허락도 받지 않았다면서 우리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캠핑장이 펜타곤과 멀리 떨어져 있어 오전 7시까지는 닿기가 힘들다는 것. 캐시 할머니는 전날 저녁 가톨릭 워커 하우스에서 묵은 뒤 함께 펜타곤에 가자고 제안했다. 천사도 이런 천사가 없다.

"칼을 녹여 쟁기로 만들면..."

가톨릭 워커 하우스 벽에 붙어 있는 선전물.
 가톨릭 워커 하우스 벽에 붙어 있는 선전물.
ⓒ 고은광순

관련사진보기


하우스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음식·옷·거처가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있단다. 재정이 열악해서 걱정이기는 하지만 거실과 지하 1층 벽은 모두 반전평화 관련한 사진과 문구로 가득했다(Rear Courage is Unarmed Activity, 진정한 용기는 무기를 버리는 것이다 / We Need Jobs and Schools Not War, 우리에겐 전쟁 말고 일자리와 학교가 필요하다 / War is Hell, 전쟁은 지옥이다).

오전 4시에 일어나 아침밥·점심밥을 준비해 6시 20분에 하우스를 나섰다. 미국에 온 본전(?)을 찾으려면 아침에 펜타곤 이어서 펜타곤 코 밑에 있는 보잉사 그리고 백악관을 차례로 돌아야지. 며칠 전 우리끼리 갔을 때 도끼눈을 뜨던 경찰들이 캐시 할머니와 함께 가니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다. 미리 와 있던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전철역 입구 잔디밭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가 길게 늘어서 피켓을 들었다.

행인들은 대부분 굳은 표정으로 지나가지만 가끔 미소를 보이며 행운을 빌어주는 이도 있었다. 뜻밖에도 출입증을 목에 건 남자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면서 지나갔다. 한 시간 동안 행인들, 특히 출입증을 목에 건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시선을 받았다. 시위 마무리는 역시 둥글게 손 맞잡고 노래 부르기. 며칠 전 백악관에서 그들이 불렀던 노래를 유튜브에서 찾아 음을 익히고 가사는 따로 적어갔다. 우리에게 잠자리를 제공했는데,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지.

And everyone beneath the vine and figtree
Shall live in peace and not afraid(반복)
And into plowshares turn their swords
Nations shall learn war no more(반복)

모두가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아래서
평화롭게 두려움 없이 살게 되리(반복)
그들의 칼을 녹여 쟁기로 만들면
국가는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않으리(반복)

"소비자의 선택? 폭탄 탑재 가능 비행기 때문에 전쟁난다"

보잉사 앞에서 피켓 시위 중인 '평화 어머니'
 보잉사 앞에서 피켓 시위 중인 '평화 어머니'
ⓒ 고은광순

관련사진보기


캐시 할머니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갔고, 우리는 보잉사로 출발했다. 우리도 극성이지만, 대체 28년간 한결같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주 월요일 아침 이 자리를 지켜온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귀하고 감사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얼른 눈물을 훔쳐내고 펜타곤 코앞에 있는 보잉사로 향했다.

보잉사는 펜타곤과 아주 가까운 곳이면서도 묘하게 외진 곳에 있다. 다른 차량들이 마구 지나다니지 않는다. 캐시 할머니는 그곳도 펜타곤과 다름없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우선 경찰이 보이지 않으니 한결 만만해(?) 보였다.

외진 곳이니 근처에 있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은 모두 보잉사 관계자일 것. 자리를 잡고 서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세 남자가 다가온다. 경험상 이럴 때는 먼저 선수를 치는 게 낫다. "하이~!"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중 노란 옷을 입은 자가 어정쩡하게 미소를 지으며 답례했다. 잠시 후 길을 건너간 그가 내 맞은편에 서 있는 평화 어머니 은숙씨의 피켓을 찍길래 내 것도 제대로 찍으라면서 웃으며 포즈를 취해줬다.

다시 그가 내게 다가왔다. 보잉사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을 처음 봤는지 상당히 의아해했다. 자기네는 상업적인 비행기 따위와 일부 군용비행기를 만들고 있으며 그 상품을 사는 것은 전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일 뿐이란다.

"소비자의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펜타곤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보잉사나 록히드 마틴사로 이직한다. 그들은 정치권에 로비해서 무기를 사게 한다. 보잉사에서 만든 F15도 우리나라가 사서 쓰고 있지 않나? 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비행기 때문에 전쟁이 계속 지속되는 거 아닌가."

우리가 이렇게 말하니 그는 너무나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지났다. 미국이 우방이라면, 분단으로 인한 고통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데 분단의 골을 계속 깊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최근에는 미군이 탄저균도 들여왔다. 한국 국민에게 사전에 알리지도 않았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증오의 정치, 증오의 교육이 사라져야"

보잉사 앞에서.
 보잉사 앞에서.
ⓒ 고은광순

관련사진보기


그는 또다시 보잉사를 합리화했다. 전쟁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반박했다.

"부부싸움을 보자. 남편과 아내가 문제가 있으면 소통하고 또 소통해야 한다. 상대를 설득시키고 귀담아 들으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멍청하고 모자라면 소통에 실패하고 주먹이 나가고 폭력을 쓰게 되는 것 아닌가? 남북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무기팔기에 골몰하지 말고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한국에서 나가야 한다.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 무기를 생산하는 사람들, 무기장사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전쟁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남과 북은 소통에 힘을 쏟게 될 것이고 통일이 되면 한반도는 지혜로운 국민들에 의해 멋진 나라로 거듭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다시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북한이 통일을 원하겠느냐는 것.

"물론이다. 지난 5월 노벨평화상을 받은 여성들과 평화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북에서 남으로 DMZ를 통과해서 걸어 내려오는 행사를 기획했을 때 북은 금방 허락했지만 오히려 남은 쉽게 허락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DMZ를 걸어 내려오지 못하고 개성을 통해 버스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남쪽에서는 북에 대해 조금이라도 호의를 표현하면 '종북'이라고 몰리고, 자칫하면 감옥에 가게 된다. 남쪽에는 오직 우익만 허용되며 좌익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평화의 에너지' '사랑의 에너지'가 널리 널리 퍼져 분단으로 인한 '증오의 정치' '증오의 교육'이 사라져야 한다. 우리 평화 어머니가 이곳에 온 이유다."

그는 크게 고개를 끄떡이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모든 문제가 이렇게 대화로 쉽게 풀리면 얼마나 좋으랴.

또다시 간다... 백악관으로

백악관 앞에서 피켓 시위 중인 평화 어머니
 백악관 앞에서 피켓 시위 중인 평화 어머니
ⓒ 고은광순

관련사진보기


이날 오후, 우리는 백악관으로 향했다. 이곳에 오고 나서 하루도 빼지 않고 그곳에 갔으니 열하루째다. 평일이지만 세계 각지에서 관광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많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을 불러 우리 피켓 내용을 읽어주며 설명해주는 가족·커플들도 있었다(그들에게 축복 있으라).

잠시 후에 경찰들이 관광객들을 밖으로 내몰기 시작했다. 오바마가 휴가에서 돌아왔다더니, 그가 오가는 시간에는 관광객들을 백악관 정면에 있는 라파옛 공원 밖으로 몰아내는 모양이었다.

백악관 정면에 비닐 움막을 짓고 1981년부터 34년간 반전평화를 외치고 있는 콘셉시온 할머니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찾아오는 자원봉사자 닐 할아버지가 물과 음식이 담긴 박스를 들고 앞장서 걸었고, 할머니는 며칠 전 선물 받은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뒤를 따랐다.

'경찰이 그녀에게 빨리 걸으라고 못되게 군다'는 소문이 있더니 이런 상황을 가리켜 나온 이야기인가 보다. 콘셉시온 할머니는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했다. 한국의 시골할머니들이 밀고 다니는 유모차 같은 게 있으면 훨씬 편하실 터인데….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영어 이렇게 5개 국어를 할 줄 안다는 이 영민한 할머니는 노벨 평화상 수상을 받고도 남을 사람이다.   

28년간 펜타곤 앞에서 반전평화시위를 하는 가톨릭 워커들, 34년간 백악관 앞에서 반전평화를 하는 콘셉시온 할머니…. 전쟁을 부추기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아. 제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당신들은 고작 100년도 못 살 인생, 그동안 좀 더 많이 움켜쥐고 싶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 아닌가. 반전평화를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맑고 깊은 영혼은 그대들이 가진 부보다 훨씬 반짝이는 귀한 것임을 모르는구나.

▲ 경찰에 밀려나오는 콘셉시온
ⓒ 고은광순

관련영상보기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평화어머니, #미국원정기, #백악관, #펜타곤, #보잉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