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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남북 공동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남북 공동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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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2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기자들 앞에 섰다. '무박 4일'에 걸친 남북협상이 극적 타결 됐다며 그는 남북 공동보도문 6개 항의 합의 내용을 공개했다. 김 실장은 이번 협상 결과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양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도 확인했을 것"이라며 협상 전 과정을 통해 '일관된 원칙'을 지켰다고 자평했다(관련기사: 추석 이산가족 상봉 등 6개항 합의 "북 지뢰도발 사과, 매우 의미 있다").

남북이 공개한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6개 합의 내용'에서 중요한 대목은 두 가지다. 제2항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와 제3항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 25일 12시부로 중단한다'이다.

'무박 4일'의 철야협상을 한 김 실장에 대해 언론에서는 '수척해 보였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의 수고가 합의문 내용에까지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김 실장은 합의 내용을 두고 "도발에 대한 재발방지 및 관계 발전 계기 마련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며 "북한이 지뢰 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와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지뢰 폭발사고 일으킨 주체 명시하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이 8월 2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북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필요성을 주장했다. YTN 8월 24일자 방송 화면 갈무리
▲ 확실한 '사과'와 '재발방지'는 어디로... 박근혜 대통령이 8월 2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북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필요성을 주장했다. YTN 8월 24일자 방송 화면 갈무리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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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받아냈다는 남북 합의문을 들여다보자. 제2항에 '유감'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유감을 표명한 주체는 북한이 분명하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유감 표명인가. 그들이 합의한 유감의 내용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이다. 이는 사과인가?

북한은 문장 그대로 남측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인류애적 관점'의 '유감'을 표명했고, 우리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북한은 지뢰 폭발사고를 자행한 것이 자신들임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이 천안함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에서 요구했다'며 폭로했던,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과 무엇이 다른가.

바로 이 때문에 <동아일보>는 25일자 사설 '북의 도발 사과 없는 남북협상 타결 유감스럽다'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원칙'이 확실히 지켜지지 않은 것이 '유감'이라며 "북한의 유감 표명은 우리 측 요구에 미달하는 데다 자신들이 지뢰 도발을 저질렀다고 인정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원칙을 확고하게 지키지 못했으니 '북(北) 도발-남(南) 보상'의 악순환이 완전히 단절될지도 걱정스럽다"고도 했다.

이것이 사과인가?

연평해전 관련 북한이 표명한 '유감'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 <조선일보> 2002년 7월 26일자
▲ '유감'은 사과 아니라던 <조선일보> 연평해전 관련 북한이 표명한 '유감'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 <조선일보> 2002년 7월 26일자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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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향해 포격을 주고받을 정도로 고조된 남북 긴장상태가 극적으로 타결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남북 고위급 회담 결과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보이는 의미부여는 지나치다. 일각에서는 '우리는 얻은 것 없고, 확성기만 중단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북한 측이 우리 정부에 대해 '유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 당시의 '유감'과 지금의 '유감'을 보면 공동합의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최근의 일로는 지난 2002년 6월 말, 서해에서 발생한 '제2차 연평해전'에 대해서 '유감' 표명을 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무박 4일' 철야협상을 하지도 않았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측에 세 가지를 요구했다. 사과요구·책임자 처벌·재발방지가 그것이었다. 이에 북한은 전화통지문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

김대중 정부는 "북측의 명백한 사과와 유감 표명으로 간주한다"고 밝히며 수용했다.

2002년 북한이 표명한 유감의 수준을 보자. 북한은 "얼마 전 서해 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북남 쌍방은 앞으로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간주한다"고 밝혔다.

김대중 정부의 '사과로 간주한다'는 수용 입장이 나오자 <조선일보>는 사설을 게재했다. 제목이 압권, '이것이 사과인가?'였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북측의 '유감 표명'에 대해 '도저히 사과라고 볼 수 없다'면서 북한의 전화통지문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힌 김대중 정부를 '참으로 한심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현 정부가 자신들의 체면과 입장을 살리는 데만 급급해 북한의 '얼버무린 수사학' 하나로 서해교전을 없던 일로 넘긴다면 이것이야말로 사태 재발을 부를 수도 있는 우려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북한이 처음으로? 같은 '유감' 다른 해석

<조선일보> 8월 25일자
▲ 같은 북한의 '유감', 다른 보도 <조선일보> 8월 25일자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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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처음으로 의미 있는 사과 표명을 수용함으로써 25일 오전 나흘간 이어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 <조선일보> 2015년 8월 25일 자 '사과란 말 한 적 없던 북, 이번에는 명확하게 "유감 표명하겠다" 기사 중

2015년 남북 합의문에 등장하는 '유감'과 2002년 전화통지문에 등장하는 '유감'에 대한 의미를 <조선일보>는 완전히 다르게 부여했다. 연평해전 당시의 유감을 '이것이 사과냐'고 맹렬히 비난한 이 신문은 이번 회담의 '북측 유감'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의미 있는 사과 표명을 수용했다'고 의미를 한껏 부여했다.

회담은 종료됐고 합의문은 공개됐다. '무박 4일' 동안 협상에서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 결과로 북측이 '유감'을 표명했고,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사과'했다면서 '일관된 원칙'의 결과로 해석했다. 내부에서는 벌써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향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또 다른 논란거리는 '무박 4일' 동안에 남과 북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에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전격적으로 공개한 박근혜 정부는 '무박 4일'의 회담 내용에 대해서는 6개 합의문만 공개했다. 제1야당에서는 '(우리도) 국정의 파트너 아니냐'라며 정보 소외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토로했다. 여당도 소외의 대상에서 포함돼 보인다.

정리해보자. 북한은 유감을 표명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성과로 자평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한 보수언론의 평가는 분열 조짐을 보인다. 유감이란 같은 표현을 썼지만 연평해전 당시의 유감과 지금의 유감이 다른 것처럼 해석하는 언론도 보인다.

'무박 4일' 회담의 성과를 박근혜 정부가 '유감' 표명에서 찾는다면, 북한은 사과하지 않았는데 우리만 확성기를 포기했다는 거센 '양보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이번 회담의 명백한 성과는 남북긴장은 완화됐고,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데 있다.

박 대통령의 성과는 향후 대화를 통해 찾아야 할 것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공동합의문, #북측유감, #일관된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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