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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자다가 화들짝 놀라 깼다. 옆에서 자던 아들이 벌떡 일어나 울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놀란 눈을 비빌 틈도 없었다. 우는 아들을 달래려 안는 순간 축축하게 젖은 녀석의 바지 감촉이 내 팔에 전해졌다. 현장 증거를 잡으려는 형사처럼 재빨리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를 보니 젖어 있는 이불. 나도 모르게 짓게 되는 한숨, 찌푸려지는 미간. 아들 녀석이 또 이불에 지도를 그린 것이다.

밤 기저귀를 아직 떼진 못했지만, 낮 동안엔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던 아이가 며칠 연속으로 실수가 잦았다. 자다가 소변을 본 것을 깨닫고 놀라서 일어난 적도 많지만, 어느 날에는 이불에 지도를 그린 줄도 모르고 불쾌하게 젖은 이불 위에서 신기하리만치 평온하게 낮잠을 이어가기도 했다.

곤히 자는 애를 깨울 수도 없어서 깰 때까지 젖은 채로 자게 놔두었던 날에는 아이가 아직 기저귀를 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엄마 욕심에 강요한 건 아닌지 고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잠들지 않은 시간에는 문제 없이 대소변을 가리는 아이를 1~2시간 낮잠 자기 위해 낮 동안에 기저귀를 다시 채우는 것이 그리 옳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 됐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밤잠을 잘 때처럼 낮잠 잘 때만 기저귀를 채우는 것. 아이에게 의견을 물어본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아이 스스로 싫다고 난색을 표했고, 억지로 다시 기저귀를 채우는 것은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돼 망설여졌다.

빨래의 늪

하트모양이 된 아들이 그린 이불지도
 하트모양이 된 아들이 그린 이불지도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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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무의식 중 소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긴 하지만 이불이 흥건하게 젖어 이불 빨래를 해야 하는 상황은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장마와 태풍이 함께하는 여름철 빨래는 늘 빨래 바구니를 넘쳐 흐르며 퀘퀘한 냄새가 나기까지 한다. 거기다 수시로 해야 하는 이불 빨래까지 더해지니 심적 부담이 의외로 컸다.

집안일의 종류와 범위는 많지만 혼자서 육아를 하며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아이 둘이서 온 집안을 어지르며 노는 것을 보면서 '그래. 집은 좀 더러워야 더 편하게 느껴져'라며 자기 합리화 짙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집안일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과 체력, 노력 등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기준을 세웠다. 꼭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집안일과, 꼭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 없는 집안일을 분리해 내 몸을 쓰기로 한 것이다.

꼭 해야 하는 집안일은 식사 준비와 설거지, 각종 쓰레기 치우는 일, 그리고 빨래였다.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집안일은 집안 물품 정리, 집안 청소 및 걸레질 등이었다.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인 빨래는 아무리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고 해도 꽤 심도 있는 노동력이 요구됐다. 빨래양이 심하게 많을 때엔 때때로 건조기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햇볕에 널어야 하는 보통의 날엔 빨래를 널다가 팔이 빠질 지경이었다.

또 많은 양의 마른 빨래를 깔끔하게 개고 분류해 서랍장에 넣어두는 일은 아이를 돌보면서 하기엔 많은 인내심을 요구했다. 아이들은 파격의 삶을 산다. 일정하게 정리해 놓은 것을 무너뜨리는 재미로 사는 얄궂은 존재들이다. 분주히 움직이다가 옷장이나 서랍장에 미처 넣어두지 못한 빨래들이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어 다시 빨아야 할 지경으로 변질된 것을 바라볼 때의 피로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정리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속 좁은 엄마는 다시 원점이 된 집안일의 무게에 좌절하고 짜증을 부리게 되었다. 삼시 세끼 고민하고 준비해서 먹이고 치우는 것만 해도 하루가 다 갈 지경이므로 빨래와 관련된 집안일은 틈 타서 재빨리 처리해야 했다. 아이들이 훼방을 놓은 날엔 정말이지 우주로 떠나고 싶어졌다.

'그게 뭐라고.'

아이들과 함께 뒤엉켜 자는 침실엔 약 한 달 전 새로 구입한 라텍스가 2개 붙어 있다. 큰 애가 태어나면서 신혼 때 쓰던 침대를 없애고 꽤 오래도록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자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잠자리가 편하다는 품평이 자자한 라텍스를 오랜 고민 끝에 거금을 들여 2개나 구입했다.

거금을 들였다는 것만으로도 라텍스에 대한 부담은 상당했나 보다. 아들과의 '이불 지도 갈등'엔 라텍스도 한몫했다. 이불 빨래도 문제지만, 비싼 돈을 써서 장만한 라텍스까지 아들의 오줌으로 금방 오염되어 수명이 단축될까 봐 하는 문제였다. 사실 라텍스 위엔 방수 속커버를 씌어 놓았고 방수 속커버 위엔 라텍스 겉 커버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이불을 깔아 놓은 것이라 속 커버의 방수 기능이 제대로라면 라텍스는 문제 없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비싼 라텍스까지 망가지면 어쩌나'하는 불안감 때문에 아이의 실수를 더 용납하지 못했다.

'그게 뭐라고 애를 잡았나.'

돈과 물질로 인한 심적 갈등은 분명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추잡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실수해도 괜찮아

얼마 전 친정 엄마가 오셔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셨다.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아이가 낮잠을 자다 자꾸만 이불에 소변을 눠서 이불 빨래 하는 것이 힘들다며 고충을 토로했는데 친정엄마는 내게 일침을 가했다.

"애들은 다 그렇게 크는 거다."
"너는 크면서 안 그랬을 것 같지?"
"너는 초등학교 들어가서까지 밤마다 오줌을 싸서 내가 날마다 이불 빨래를 했다."

기억하지 못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들추고 싶지도 않은 과거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친정 엄마. 아이들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라며 이어 말씀하셨다. 엄마로서 너그러워진다는 것은 아이들과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귀한 마음이란 것을 알기에 그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역시 애는 키우는 게 아니라 크는 것을 곁에서 지켜봐 주고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 또한 절감했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때맞춰 완벽하게 다 할 수 있는 아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여러 핑계를 무기로 아이의 작은 실수에 드러냈던 엄격함을 조금이라도 내려 놓는 일이 지금 내겐 가장 시급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깟 이불빨래 하루에 한 번이면 다행이다 여기고, 그깟 값비싼 라텍스 영 못쓰겠으면 갖다 버리고 다시 이불 깔고 지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오줌 얼룩을 볼 때의 지저분하고 자질구레한 잡념들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아들아, 실수해도 괜찮아. 그럴 리 없겠지만 자다가 이불에 똥만 싸지 말아다오.'

○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 예정입니다.



태그:#이불에 오줌 싸다, #낮잠기저귀, #기저귀 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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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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