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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즐겁게 놀 수 있는 사람은 즐겁게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아이들도 글공부 아닌 글놀이를 할 적에 새로운 이야기를 짓습니다.
 즐겁게 놀 수 있는 사람은 즐겁게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아이들도 글공부 아닌 글놀이를 할 적에 새로운 이야기를 짓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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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마음

그림은 누가 그리는가 하고 생각해 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이 그립니다. 이야기는 누가 들려주는가 하고 헤아려 보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들려줍니다. 노래는 누가 부르는가 하고 짚어 보면,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이 부릅니다.

그러면, 사진을 누가 찍는지 환하게 알 만합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이 사진을 찍어요. 아름다운 사진은 누가 찍을까요? 사랑스러운 사진은 누가 찍을까요? 참을 숨기면서 거짓을 드러내는 사진은 누가 찍을까요? 웃음이나 눈물이 피어나는 사진은 누가 찍을까요? 스스로 하려는 사람이 언제나 스스로 씩씩하게 합니다.

상자 하나로도 하루뿐 아니라 며칠 뿐 아니라 두고두고 재미나게 놀 수 있는 아이들 마음처럼, 작고 가벼운 사진기 한 대로도 얼마든지 재미나게 사진놀이를 즐기면서 내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습니다.
 상자 하나로도 하루뿐 아니라 며칠 뿐 아니라 두고두고 재미나게 놀 수 있는 아이들 마음처럼, 작고 가벼운 사진기 한 대로도 얼마든지 재미나게 사진놀이를 즐기면서 내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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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참을 수 없어

큰 종이 상자에 들어간 두 아이는 저마다 다르게 놉니다. 한 아이는 큰 종이 상자에 작은 걸상을 들여놓고 책을 펼칩니다. 한 아이는 큰 종이 상자에 스스럼 없이 드러눕습니다. 히죽거리고 깔깔거리면서 놀다가, 슬쩍 종이상자를 들여다보니 작고 귀여운 아이는 눈을 질끈 감고서 '안 보이는 척'합니다.

얘야, 네가 눈을 질끈 감는대서 남이 너를 못 보겠니? 그저 스스로 즐겁게 놀 때에 즐겁고, 그저 스스로 즐겁게 찍을 때 즐겁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알맞춤한 빛'을 맞추어야 하거나 '예쁜 모델'을 만나야 하거나 '멋진 곳'을 찾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코앞을 보면 됩니다.

내 마음 속 빨래터

사라져 가는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는 빨래터이고, 시골사람으로서는 우리 마을에 늘 있는 삶으로 마주할 수 있는 빨래터입니다. 나는 아이들하고 시골마을 시골내기로서 우리 마을 빨래터를 아낍니다.
 사라져 가는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는 빨래터이고, 시골사람으로서는 우리 마을에 늘 있는 삶으로 마주할 수 있는 빨래터입니다. 나는 아이들하고 시골마을 시골내기로서 우리 마을 빨래터를 아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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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빨래터를 놀이터로 삼아서 하루를 누립니다. 빨래터 물이끼를 걷고, 빨래터 옆 샘터에서 물을 마시며, 손발이랑 낯을 씻고, 한여름에는 물놀이를 즐깁니다. 아마 다른 고장에서는 빨래터를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을 텐데, 오늘 우리가 보금자리로 삼는 이 고장 이 마을에서는 늘 보는 모습이니 '내 마음속' 빨래터가 됩니다. 내 마음속에서 흐르는 이야기터가 됩니다. 내 마음속을 밝히는 꿈터가 됩니다. 내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을 포근하게 다스리면서 가꾸는 쉼터가 됩니다.

범나비한테 다가서기

짝짓기를 하는 범나비를 찍으려고 다가섭니다. 그런데 제 사진기에 붙인 렌즈는 작고 가볍기에, 가까이 다가서더라도 크게 찍기 어렵고, 찰칵 하는 소리 때문에 꼭 한 번만 찍을 수 있습니다. 오직 한 장을 얻으려고 발소리를 죽이면서 살금살금 다가섭니다.
 짝짓기를 하는 범나비를 찍으려고 다가섭니다. 그런데 제 사진기에 붙인 렌즈는 작고 가볍기에, 가까이 다가서더라도 크게 찍기 어렵고, 찰칵 하는 소리 때문에 꼭 한 번만 찍을 수 있습니다. 오직 한 장을 얻으려고 발소리를 죽이면서 살금살금 다가섭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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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는 틀림 없이 '더 좋은' 렌즈가 있어서, '더 좋은' 렌즈를 쓰면 사진이 그야말로 한결 눈부셔 보이곤 합니다. 게다가, '먼 곳에 있는 모습을 가까이 잡아당겨서 찍도록' 하는 렌즈가 있어요. 이런 렌즈가 있으면 발소리를 내지 않고도 먼발치에서 사진을 어렵잖이 찍습니다. 그러나 나한테 있는 렌즈로는 '가까이 다가서지 않으면' 크게 보이도록 찍을 수 없습니다.

숲에서 범나비가 짝짓기하는 모습을 찍자니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서야 합니다. 범나비는 '찰칵' 소리로도 놀라기 때문에 꼭 한 번만 찍을 수 있습니다. '더 좋은' 렌즈나 '당겨 찍는' 렌즈는 없지만, 나는 '내 작고 가벼운' 렌즈에 몸을 맡겨 내 나름대로 바라보는 범나비 몸짓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가시내이든 머스마이든

우리 집 작은아이를 보며 가시내인지 머스마인지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큰아이도 그런 말을 내내 들었습니다. 아이들 성별이나 어른들 성별이 얼마나 대수로울까요?
 우리 집 작은아이를 보며 가시내인지 머스마인지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큰아이도 그런 말을 내내 들었습니다. 아이들 성별이나 어른들 성별이 얼마나 대수로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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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작은아이가 머리핀을 하거나 빨간 가방을 메거나 분홍 웃옷이나 바지를 입으면 으레 '가시내'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옷을 입지 않아도 가시내인 줄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시내하고 머스마를 가르는 잣대란 무엇일까요? 가시내하고 머스마를 갈라서 무엇이 재미있거나 즐겁거나 멋질까요?

아이는 아이 그대로 예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가시내뿐 아니라 머스마도 머리핀을 해서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누나한테서 물려받지 않았어도 빨강이나 분홍을 좋아할 만합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즐거운 삶을 짓는 예쁜 숨결입니다.

제비하고 사는 집

이른봄부터 한여름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며 자라던 제비가 떠나기 앞서, 빨랫줄에 오래도록 앉았습니다. 여느 때에는 사진으로 찍기도 어렵고, 찬찬히 바라보기도 어려웠지만, 우리 집(제비로서는 둥지)을 떠나는 날, 아주 오랫동안 빨랫줄에 조용히 앉아 주면서 서로서로 지켜보았습니다.
 이른봄부터 한여름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며 자라던 제비가 떠나기 앞서, 빨랫줄에 오래도록 앉았습니다. 여느 때에는 사진으로 찍기도 어렵고, 찬찬히 바라보기도 어려웠지만, 우리 집(제비로서는 둥지)을 떠나는 날, 아주 오랫동안 빨랫줄에 조용히 앉아 주면서 서로서로 지켜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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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에는 삼월 끝무렵부터 제비가 찾아듭니다. 새끼 제비는 두 달 남짓 처마 밑 둥지에서 자란 끝에 어미 제비를 따라서 날갯짓을 익히고, 이때부터 하늘을 가르느라 신이 나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싱싱 가르는 기쁨을 맛본 제비는 처마 밑 둥지는 까맣게 잊습니다.

하늘을 날며 먹이를 잡아채는 솜씨까지 갈고닦으면 이제 '제비집'은 너른 들과 숲입니다. 기쁨이 어린 신나는 날갯짓으로 이곳저곳 마음껏 누비는 제비는 이윽고 바다를 건너가는데, 이듬해에 다시 찾아와 주렴 하고 손을 흔듭니다. 제비집(제비가 사는 집)을 떠나려는 새끼 제비가 빨랫줄에 앉은 모습을 마지막으로 지켜봅니다.

저만치 멀리 가는구나

나는 아이들 앞에서 달릴 수 없습니다. 언제나 아이들이 앞에서 달립니다. 아이들 뒤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몫이 어버이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달릴 수 없습니다. 언제나 아이들이 앞에서 달립니다. 아이들 뒤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몫이 어버이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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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처음 걸음마를 뗀 뒤부터 뒤를 보지 않습니다. 아이는 처음 걸음마를 떼기 앞서 바닥을 볼볼 기듯이 다닐 적에도 뒤를 보지 않습니다. 아이는 처음 이 땅에 태어난 날부터 언제나 앞을 바라봅니다. 한 걸음을 딛고 두 걸음을 딛으면서 늘 새로 나아갑니다. 몸이 자라고 키가 크면서 아이들은 아주 빠르게 내딛습니다.

어느새 저 앞으로 달려가니 개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저 앞으로 멀리 내달린 뒤 돌아옵니다. 제 어버이 품을 고요하며 포근한 보금자리로 여깁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나는 아이들이야말로 나한테 고요하며 포근한 보금자리로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나무하고 함께 있는

나무를 타며 노는 큰아이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서 무척 고맙습니다. 나도 어릴 적에 나무를 타며 놀았으나, 내 모습은 사진으로 남지 않습니다. 다만 내 마음속에는 내가 어릴 적에 타고 논 나무 모습이 또렷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사진도 남겠지만, 사진에 앞서 이 아이들 가슴에 이야기가 남겠지요.
 나무를 타며 노는 큰아이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서 무척 고맙습니다. 나도 어릴 적에 나무를 타며 놀았으나, 내 모습은 사진으로 남지 않습니다. 다만 내 마음속에는 내가 어릴 적에 타고 논 나무 모습이 또렷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사진도 남겠지만, 사진에 앞서 이 아이들 가슴에 이야기가 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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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하고 함께 노는 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나도 어릴 적에 나무하고 함께 놀았습니다. 내가 살던 마을에 꽤 커다랗게 잘 자란 나무가 있어서, 내 또래 어린이가 여럿 올라타도 거뜬했습니다. 어디만큼 올라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높이 높이 올라가서 '아 좋다!' 하다가, 밑으로 내려갈 때쯤 되어 '어라, 어떻게 내려가지?' 하는 생각에 까마득한 적이 잦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수백 해 묵은 나무는 언제나 아이들한테 고마운 놀이터가 되고 따스한 품을 베풉니다. 우리 고장 읍내에는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가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곧잘 나무한테 찾아가서 인사합니다. 오랫동안 짙푸른 바람을 베푼 숨결을 함께 느낍니다.

춤추는 글씨

글씨가 춤을 춥니다. 아이 마음이 춤을 추기 때문일 테지요.
 글씨가 춤을 춥니다. 아이 마음이 춤을 추기 때문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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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작은아이가 그리는 글씨가 춤을 춥니다. 함께 글씨 놀이를 하다가 하하 웃음이 나옵니다. "잘 그리네. 잘 쓰네. 거 봐, 이렇게 잘 쓸 줄 아네" 하고 말하면서 웃는다. 다섯 살 작은아이도 빙그레 웃으면서 "자 봐! 다 썼어!" 하고 외칩니다. 작은아이 글씨가 왜 춤을 추는가 하고 생각해 보면, 스스로 춤추면서 노니까 글씨가 춤을 추지 싶습니다.

나중에 이 아이가 자라서 글씨를 반듯반듯 쓴다면, 그때에는 걸음걸이가 반듯반듯 야무지면서 멋지기 때문일 테지요. 오늘은 그저 춤추듯이 뛰놀고 싶은 마음이니 그야말로 넓직하게 춤을 추는 글씨를 그립니다.

자전거를 보는 자전거

경운기가 아닌 자전거로 들일을 다니는 할배를 보면, 도시에서도 자가용 아닌 자전거를 몰며 일터를 오가는 아재와 할배가 떠오릅니다. 두 다리에 날개를 달아 주는 자전거는 더없이 사랑스럽습니다.
 경운기가 아닌 자전거로 들일을 다니는 할배를 보면, 도시에서도 자가용 아닌 자전거를 몰며 일터를 오가는 아재와 할배가 떠오릅니다. 두 다리에 날개를 달아 주는 자전거는 더없이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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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삶 그대로 바라볼 때에 삶이 됩니다. 삶을 삶 그대로 바라보아 온 하루가 참말 삶다운 삶이라면, 언제나 사랑스러운 말이 흐르고 사랑스러운 생각이 피어나며 사랑스러운 꿈이 자랍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가는 길에 이웃마을 할배가 타는 '들일 가는 자전거'를 만납니다.

나는 자전거에 타면서 다른 자전거를 바라봅니다. 옆구리에 삽 한 자루를 낀 '시골자전거' 또는 '들자전거'를 봅니다. 내가 달리는 자전거도 '시골 자전거'일 텐데, 여기에 '아이자전거'라는 이름을 새롭게 붙일 만합니다. 아이들하고 어디라도 달릴 수 있으면서 함께 노래하고 웃는 자전거인 '아이 자전거'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진노래, #사진 이야기, #사진읽기, #사진찍기,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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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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