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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아래 일베)는 문제 소지가 있는 디시인사이드(아래 디시)의 자료들을 (운영자가 삭제하기 전에) 미러링 기법으로 퍼날라 '모아놓던' 저장소 누리집이었다. 이후 독립적으로 서버를 확장하고 유저들이 스스로 게시물을 올릴 수 있게끔 이용지침을 바꾸면서, 오늘날 '일베'가 됐다.

인터넷 상의 저열함은 꾸준히 존재했지만, 일베는 디시의 여러 게시판에 나뉘어 있던 요소들을 '집약'하면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5.18 택배, 세월호 폭식투쟁, 단원고 어묵 조롱, 콘서트 폭탄테러 등등. 가끔 오프라인 상으로 번졌던 실존적 위협들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일베의 '일간베스트(추천을 많이 받은 자료)' 게시판에서는 끊임없이 혐오성 언사들이 오간다. '삼일한(여성은 삼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뜻)', '보X년(여성을 성기에 빗댄 혐오)', '네다홍('네 다음 홍어'의 줄임, 홍어는 전라도 특산물이지만 일베에서는 지역차별 뉘앙스가 있는 단어다)', '노운지(노 전 대통령 투신 조롱)' 등등.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 대학가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사회 운동이 한창일 때 한 일베 회원이 대자보를 훼손하고 불태워 버린 걸 인증하는 사진이다. 일베 회원임을 나타내는 표식(손가락으로 'ㅇㅂ'를 그린다)을 취하고 있다.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 대학가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사회 운동이 한창일 때 한 일베 회원이 대자보를 훼손하고 불태워 버린 걸 인증하는 사진이다. 일베 회원임을 나타내는 표식(손가락으로 'ㅇㅂ'를 그린다)을 취하고 있다.
ⓒ 일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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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베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기 때문에, 일상에서 식별하기란 어렵다. 누군가가 말투와 행동, 사고방식 등에서 '일베적 아우라'를 내뿜으며 등장할 때, 가끔 짐작될 뿐이다. 이는 '만물일베설'도 아니요, 상대가 실제로 일베 회원이냐 아니냐도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에게 이것은 차라리 이름 짓기의 문제다.

아우라는 모호하다. 모호함은 곧 불안함으로 바뀔 수 있으므로, 빨리 해소하고 싶다. 이 아우라는 갑작스레 튀어나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벌레 같다. 그렇다면 이것의 이름은 '일베충'이다. '벌레는 하찮으니까, 이제 생각하지 말자!' 이것은 널리 퍼져있는 인식이다.

'득햏'의 길

일베를 벌레 취급한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동시접속자만 2만 명에 육박하는 일베는 무시 못할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다. 일베 연구자들 대부분은, 일베 또한 나름의 의식흐름을 가진 '인간'임을 우선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모은다.

현명한 의사는 섣불리 모호함을 분명함으로 만들지 않는다. 진단을 위해서 성실하게 '가족력'을 조사한다. 디시가 일베의 조상이라면, 우리는 2010년에 발표된 문화인류학자 이길호의 <우리는 디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쪽이 넘는 이 논문은, 디시를 원시 부족사회처럼 보고 방대한 자료수집과 수년 간의 참여관찰을 거쳐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이다.

오원 장승업의 생애를 담은, 영화 <취화선>을 패러디한 포스터(좌). 당시 폐인 문화를 잘 해설한 김풍의 웹툰 <폐인의 세계>(우).
 오원 장승업의 생애를 담은, 영화 <취화선>을 패러디한 포스터(좌). 당시 폐인 문화를 잘 해설한 김풍의 웹툰 <폐인의 세계>(우).
ⓒ 디시 갈무리(좌), 김풍(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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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인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 존댓말을 썼다. 디시에는 유행하는 콘셉트들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당시에는 '개념인' 콘셉트가 유행이었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콘셉트조차 초월한 어떤 '리얼'한 경지였다. 여기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다. 논쟁에서 극단적이어서는 안 되고, 탁월한 분쟁조정 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 무엇보다 "혼이 깃든" 글을 쓰는 "품위를 유지"해야 했다.

"그는 허튼 소리를 하지도 않았으며, 되도 않는 개드립을 남발하거나, 상한 떡밥을 물어 오지도 않았다. 언제나 참신하고 획기적이며 글에 자신의 진심을 담았다. 진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이며, 어떤 글이 진실한 이유는 그냥 진실하기 때문이다."(<우리는 디씨> 34쪽)

카메라 커뮤니티로 출발한 디시의 특성상, 개념인들은 눈길을 끄는 패러디 사진 등을 만들어내는 데 특출났다. 디시인들은 이 "능력자횽(형)들"이 만든 자료들을 보고 때때로 "굽신굽신"거리며 최고의 인정을 보냈다(이렇게: ●█▀█▄).

수햏은 주류적 생활패턴을 전복하는 3가지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 과정중에 햏자들은 주류 사회로부터 무수한 비난과 핍박을 받는데, 이를 모두 견뎌내야 비로소 득햏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수햏은 주류적 생활패턴을 전복하는 3가지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 과정중에 햏자들은 주류 사회로부터 무수한 비난과 핍박을 받는데, 이를 모두 견뎌내야 비로소 득햏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 김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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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2002~2003년 '아햏햏'과 '폐인' 콘셉트가 급부상하면서 개념인 코드는 대중화 시기를 맞았다. 개념인이 되기 위한 "득햏"에 정진을 하는 수행자들을 "(수)햏자"라고도 했다.

'햏'이란 무엇인가? 불교의 공(空)이 결국 이론적으로 규정되기보다 체득돼야 하는 진리이듯, 햏은 그저 햏이며 단지 "체득"될 뿐이다.

체득은 어디서? 산에서? 아니지. 거긴 춥고 배고프니까. 컴퓨터가 있는 안락한 방으로 들어가야지. 디시인들은 이제 기성문화와 단절하고 폐인(閉人)이 됐다. 그리고 '하오체' 같은 의례들을 일상화하며 자신들의 품격을 유지하고 고유한 문화를 생산했다.

이단아 화가 오원 장승업의 생애를 담은 영화 <취화선> 포스터를 패러디한 건 아햏햏 문화의 상징과도 같다.

"세상이 뭐라하든 나는 나 장승업이오"를 "나는 나 아햏햏이오"로 변주한 건, 당시 디시인들이 '꼰대스러운' 기성문화와 스스로를 '구별 짓기'할 수 있는 정체성을 원했다는 걸 잘 드러낸다(관련 기사: 공무원 문턱에서 탈락, '일게이' 청년은 왜 그랬을까).

독한 손가락 '씨벌교황'과 '평등한 병신' 사상

그런데! 그런 디시조차 걱정거리는 있었다. 아햏햏과 하오체 조차도 태동하기 직전, 오직 존댓말만 쓰던 그 순수한 디시에…, 불청객처럼 찾아와 디시 일각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던 이른바 '씨벌교황'이라는 악플러의 존재였다.

그는 인터넷 초창기 욕설의 향연을 펼치며, 누리집들을 하나둘(디시 운영자 김유식 왈) "멍멍이판"으로 만든 인물로 유명했다. 욕설도 욕설이지만 <딴지일보>의 게시판 '1500페이지'를 혼자서 도배해버린 경악스러운 근성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운영자 제재와 법망을 너무나 잘 피해다녀, 가히 사이버 공간의 독재자로 군림했다.

어둠의 아우라에 매력(?)을 느낀 추종자들까지 생겼고, '런던귀공자' '소울 슬레이브' '다니엘' 등 1세대 악플러들이 등장해 그 못지않은 내공을 선보이며(?) 활개를 쳤다. 다음은 씨벌교황의 악플중 '극히'일부와 그에 대한 한 디시인의 회상이다.

"이시간 이후로 글 쓰는 개XXX놈의 개XX는 뒈질 줄 알아라. 뒈질 때 되면 X기미 X같은 숟가락 X나 짜증나게 탁 놓고 뒈진다 XX만한 XX들아. 쳐맞고 싶어서 발정났나? (중략) 여기서 고만 삐대고 날아가서 XXX XXX 좀 빨아 쳐무라. 행님 이제 가볼거니까 깝싸지 말고 조용조용히 놀그라 (후략)"(씨벌교황의 악플)

"디시에 쌍욕과 악플을 최초로 시작해 반말을 정착화시킨 장본인이자 악플러 중의 제왕 격이죠. 네티즌들은 처음에는 씨벌교황의 악플에 존댓말로 대적했답니다. 부자 행세를 하며 돈 없는 사람들은 인터넷 할 자격도 밥 먹을 자격도 없으니 컴퓨터 꺼라 어째라 이런 말들이, 결국 보는 사람의 뚜껑을 다 열어버렸죠."(익명의 디시인)

흥미롭게도 디시는 다른 누리집들과는 사뭇 달랐다. 씨벌교황과 추종자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마치 "잽을 맞을수록 익숙해져 강펀치에도 쓰러지지 않는 권투선수처럼 강해지고 더 강해졌다. 디시인들의 근성은 속된 말로 거지보다 끈끈하고 대단했다."

씨벌교황과 디시인들의 근성 대결은 몇 년이나 계속됐지만, 어느 순간 디시인들은 그의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지에 이른다. 결국 그는 흐지부지 사라진다. 그러나 씨벌교황 등과의 오랜 전투로, 디시의 품격있던 '개념인' 문화와 '하오체' 의례가 2000년대 중반 완전히 소멸해버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디시인들은 이미 씨벌교황 못지않은 욕설 프리토킹을 하고 있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오마주한다면, 이렇게 묘사할 수 있겠다. "누가 씨벌교황이고 누가 디시인들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한편 씨벌교황의 유산은 그뿐이 아니었다.

당시 디시에는 이 기묘한 평등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명인사들의 명언처럼 꾸민 패러디물들이 유행했다. 실제로 앨빈 토플러가 이런 말을 했을리 없지 않은가!
 당시 디시에는 이 기묘한 평등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명인사들의 명언처럼 꾸민 패러디물들이 유행했다. 실제로 앨빈 토플러가 이런 말을 했을리 없지 않은가!
ⓒ 디시인사이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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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설파하고 다닌 '인터넷 계급론'은, 디시인들로 하여금 인터넷 상의 수직적 관계 출현에 대한 강한 트라우마를 불러왔다.

그러나 이미 씨벌교황 못지않은 "멍멍이판"이 된 디시에서, '너도나도 평등한 개념인'이라는 대안은 생각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생각해낸 건 오히려 "너도나도 평등한 병신"이라는 역설적인 프로파간다였다.

어차피 디시에서는 "누구나 병신"이니까, 외부의 사회적 관계나 논리는 끌어들이지 말자는 거다. 디시인들은 이제 훌륭한(?) 글은 "참으로 병신성이 풍부하다", 글쓴이에게는 "좋은 병신(력)이다"라는 칭찬(?)을 해준다.

그렇다. 디시는 이제 한편으로 욕설 섞인 투박함과 상스러움을 일상화하며 서로를 깎아 내리기 시작하고, 또 한편으로는 찌질이·막장·꾸준글러·병맛·잉여·관심병 등 콘셉트로 설정하면서 속된 말로 경쟁하듯 "병신"이 되려고 애쓰기 시작한 셈이다.

그러한 디시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성기를 게시판에 인증하고, 누군가는 한 스님의 인터넷 방송에 쳐들어가 난장판을 만들고, 누군가는 똑같은 내용의 꾸준글을 몇 년씩 올리고…. 디시의 사건사고들은 후일 위키 계열 인터넷 백과사전에 따로 기록될 정도였다.

상업주의가 낳은 문화충돌과 예견된 '일베' 출현

한편 디시 운영자 김유식은 꽤 유명한 소녀시대 '덕후'였다. 2007년은 소녀시대·원더걸스·카라 등의 데뷔로, 그야말로 여성 걸그룹 팬덤의 전성기였다. 당시 김유식의 소위 '덕질'에 관한 대표적 에피소드는, 소녀시대갤러리(소시갤)에 멤버 태연이 인증을 하자 열정적으로 댓글들을 달다가 그의 부인이자 디시 팀장인 박아무개씨에게 딱 걸린 사건이 있다.

내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가십거리를 재탕하려는 심보도 아니고, 김유식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다만 이는 커뮤니티 운영 방향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 사건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누리꾼들이라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현재 디시는 1772개의 주제별 게시판들이 44블록에 나뉘어 배치돼 있다. 이중 5블록이 모두 연예 관련 게시판들이니, 그 비율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한번 개설한 게시판들은 웬만해서는 삭제하지 않는 디시의 운영 방식과 대중문화 산업의 급부상으로, 디시 내에서 '연예' 관련 게시판들은 꾸준히 '영토'를 넓혀온 셈이다.

마찬가지로 유명한 '다빈치코드'는 디시 본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김유식의 행적에 대해, 그의 부인 박모씨에게 일러바쳤고 이는 디시인들 사이의 큰 회자가 됐다.
 마찬가지로 유명한 '다빈치코드'는 디시 본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김유식의 행적에 대해, 그의 부인 박모씨에게 일러바쳤고 이는 디시인들 사이의 큰 회자가 됐다.
ⓒ 디시인사이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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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는 관련 게시판들의 충성도 높은 이용자들의 유입으로 이어짐으로써, 디시의 PV(페이지뷰)와 UV(순 방문자수)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상업적 관점에서 보면, 김유식의 운영 방식은 결국 디시의 수익 문제와도 직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팬덤 문화의 의례와 기존 토착세력들의 의례는 큰 차이가 있다. 양자의 문화충격을 완화하는 충분한 시간과, 통합적 의례를 구성하려는 인문적 고민이나 실천이 전혀 없이 양적 팽창만 거듭한다면 심각한 갈등이 일어날 건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일종의 부족과 부족 간의 문화충돌이었다.

특히 막장갤러리(막갤), 코미디프로그램갤러리(코갤), 스타크래프트갤러리(스갤) 등 당시로써는 '호전적인' 부족들은(이용자들은 각자의 부족 안에서 일종의 친족관계를 형성하는데, 서로를 자주 '횽(형)'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덕후" 콘셉트를 유지하며 토템인 아이돌들을 지키던 연예갤 부족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물론 그 역도 성립한다).

팬덤 문화는 그 특성상 토템에 대한 충성도와 친목 문화로 성장해왔다.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네이버 카페에서의 회원 등급제와 오프라인 정모다. 반면 코갤의 경우는 수직적 관계를 거부하며(물론 씨벌교황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친목을 금기시했는데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랜선으로는 부족원들 간의 교미를 통해 후손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부족의 원로들인 올드비(오래된 이용자)들은 꾸준히 유입되는 뉴비(새로운 이용자)들을 우대해 성숙한(?) 부족원으로 키우는 방식으로 부족의 존립을 모색했다.

'페이지(page)'는 라틴어 '파구스(pagus)'에서 유래했는데, 파구스는 '영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당시 디시인사이드의 부족들은 서로의 갤러리의 파구스를 도배하여, 상대방의 영토를 빼앗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죽였다. 갤러리 내에서 갤러들이 존재하는 방식이란, 재잘거림으로서 존재를 드러내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눈팅족의 존재는 짐작될 뿐이다). 싸움은 전지전능한 운영자에 의해, '글쓰기' 버튼이 내려지는 방식으로 종료되곤 했다.
▲ 소시갤의 코갤 침략 '페이지(page)'는 라틴어 '파구스(pagus)'에서 유래했는데, 파구스는 '영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당시 디시인사이드의 부족들은 서로의 갤러리의 파구스를 도배하여, 상대방의 영토를 빼앗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죽였다. 갤러리 내에서 갤러들이 존재하는 방식이란, 재잘거림으로서 존재를 드러내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눈팅족의 존재는 짐작될 뿐이다). 싸움은 전지전능한 운영자에 의해, '글쓰기' 버튼이 내려지는 방식으로 종료되곤 했다.
ⓒ 디시인사이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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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드비들에게 뉴비란 아직 "개념이 없는" 초딩(초등학생) 콘셉트이므로, "닥눈삼('닥치고 눈팅 삼일'의 준말로 부족의 관습에 익숙해지는 기간)"을 거쳐야 부족에 동화시킬 수 있었다. 이 끈기의 시간을 거치기도 전에, 기존 이용자들끼리의 친목을 접하고 어떤 벽을 실감하고 떠난다면 그들은 한낱 "유입종자(부족에 동화되지 못한 유입인구를 낮잡는 말)"일 뿐이라는 생각이 퍼졌다.

이제 친목 금지 부족과 덕후 부족들의 존재 방식은 충돌한다. 그리고 원수들은 서로의 영토로 몰려가 함성을 내지르며 공격한다. 쉽게 말해 '친목은 커뮤니티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와 '너희들도 친목에 참여하면 되잖아' 이념의 충돌이다!

그러나 부족의 전쟁에도 두 가지 갈등의 싹은 있었다. 첫째는 부족의 내분이다. 가령 코갤러인 동시에 소시갤러인 이용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또 순혈 코갤러로 전투 경험이 많은 전사들은 디시 외부의 아지트(가령 아프리카TV 방송이라든지)에서 전투기술들(게시판 도배, 이용자 신고, 해킹)을 전수하거나 전투를 지휘하고, 또 끈끈한 유대를 경험하면서 가치관이 흔들리지 않을까.

둘째는 운영자다. 그는 임의로 게시글들을 삭제하고, 이용자들을 차단할 수도 있으며, 게시판의 '글쓰기' 버튼을 내려버리는 등 전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수직적 관계를 거부하는 코갤 등의 강력한 반발을 산다.

이용자들은 이제 전쟁도 필요 없고, 운영자의 삭제와 차단에서 자유롭게 "모두가 병신"일 수 있는 어떤 유토피아를 꿈꾼다. 한 코갤러는 말한다. 그곳은 "코토피아"라고. 그리고 마치 일베의 출현을 암시하듯, 이길호의 논문은 다음과 같이 이들의 사상을 해설하며 끝맺는다.

"막갤이 망하면, 코갤이 망하면, '우리'는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갈 것이다. '우리'란 누구일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각 집단의 지도자나 주류 세력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러한 주류세력의 출현을 '악(권력 혹은 사회 관계)'으로 인식하고 집단의 멸망을 감지한다.

규정되지 않는 우리는 오직 그 '규정되지 않음'으로서만 식별된다. 언제나 주류 바깥에 머무는, 체계 외적 존재들, 무슨 까닭에서인지 모두 동일한 하나의 이름을 취한 사람들, 남겨진 자들, 최후의 인간, 다시 말해 바로 우리 '잉여들'은 이제 다시 한번 더 '악이 없는 대지'를 찾아, 그 알 수 없는 세계로 떠나간다. 우리는 지금 기나긴 여행 중이다."(<우리는 디씨> 218쪽 중)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우리는 디씨>(이길호 / 이매진 / 2012 / 1만7000원)
<우리는 디씨: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증여, 전쟁, 권력>(이길호 / 서울대 학위논문(석사) / 2010)
<폐인의 세계>(김풍)
<'전설의 악플러가 돌아왔다'>(김유식 / 매일경제 / 2006.2.3)
<인정투쟁>(악셀 호네트 / 사월의책 / 2011 / 2만3000원)
<소녀시대 와 DC 사장 김유식..그리고 유저들의 분노(?)>(http://goo.gl/kPytx9)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김학준 / 서울대 학위논문(석사) / 2014)
<일베의 사상>(박가분 / 오월의 봄 / 2013 / 1만3000원)
<구별짓기>(피에르 부르디외 / 새물결 / 2005 / 2만3000원)
<동물농장>(조지 오웰 / 민음사 / 1998 / 7000원)



태그:#일베, #디시, #씨벌교황, #김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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