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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이유도 없어. 진심이 없어. 사랑 같은 소리 따윈 집어 쳐. 오늘밤은 삐딱하게 내버려둬. 어차피 난 혼자였지. 아무도 없어. 다 의미 없어. 사탕 발린 위로 따윈 집어 쳐. 오늘밤은 삐딱하게."

일탈과 동경의 아이콘 지-드래곤(G-Dragon, 아래 GD)의 <피스마이너스원 : 무대를 넘어서> 전시관람 후 인터넷에서 그의 뮤직비디오를 여러 개 찾아 감상했다. 너무 집중해서 보았던가. 그 후 며칠 머릿속을 맴맴 도는 환영과 함께 했는데, 그건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와 불만 가득한 눈빛이다.

새하얗게 탈색한 머리, 무거워 보이는 금 귀걸이. 바로 쳐다볼 수 없을 눈부신 조명. 빛이 터진다. 그는 아이라인을 짙게 그린 눈을 찌푸리고 입을 삐죽이며 랩을 뱉는다. 작은 얼굴과 화려한 액세서리를 걸친 몸은 찰나의 위축됨도 없이 무대를 누비며 건방을 떤다. 나의 10대, '폼생폼사'를 외쳤던 젝스키스와는 비할 수 없는 최강의 허세와 겉멋이 정말 대단하다. 단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이유를 체감했다.

왜 GD는 안 되는 걸까

지난 6월 9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진행되고 8월 23일 곧 종료되는 그의 전시는 오픈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YG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 기획사가 공동주관하는 '스타연예인'의 전시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서 공동 기획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작가 선정ㆍ전시장 시공 잇단 잡음… 서울시립미술관 '지드래곤 전시' 논란확산(헤럴드 경제)", "미술관에 들어온 GD, 예술인가 상업주의인가(조선일보)", "현대미술 지드래곤과 만나다(서울 경제)", "지드래곤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보며 <베베> 영감 얻었다'(마이데일리)" 등 6월 8일 기자간담회 이후 언론매체들은 일제히 기사를 업데이트했다.

CBN뉴스 문화부의 왕진오 기자는 "'지드래곤 예술가 만들기'에 안방까지 내준 서울시립미술관의 꼼수"라는 기사를 썼는데 "조선시대 돈 많은 중인들이 돈으로 양반을 샀지만, 결국 직위만 얻었을 뿐 양반 고유의 가치는 소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기자가 빗대어 말하고자 하는 '예술가' 고유의 가치는 무엇일까? 1년에 10억 원에 가까운 저작권료를 버는 GD는 '예술가'가 아닌 걸까? 조선후기 계급사회에서 돈으로 신분상승을 꾀했던 중인들과 비교하며 GD가 돈으로 예술가가 되려고 한다는 식의 비판은 현명하지 않다.

현대미술은 이미 거대자본의 마케팅으로 경영되고 있는 것이 자타공인 현실이다. 유명인사가 미술에 관심을 갖는 것이나, 돈과 예술의 긴밀함은 그다지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GD에 대한 가십거리를 생산하는 투박한 문장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현명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기성품에 작가가 사인하고 제목을 붙여 미술관에 전시함으로써 작품이 된 마르셀 뒤샹의 '샘'으로부터 모더니즘은 시작되었다. 캔버스에 현실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기성품을 매개로 작가 개인의 철학적 발언이 시작된 1917년. 지금으로부터 98년 전, 서양미술사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던 역사적 사건을 재연한 것에 지나지 않는 <(논)픽션 뮤지엄>이었다.

GD의 무대의상과 소품, 그리고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의 네온 작품 등과 직접 디자인한 오브제들이 캡션과 함께 진열되어 있었고, 화이트큐브가 아닌 블랙큐브의 조명과 반짝거림이 눈부셔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에 들어선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논)픽션 뮤지엄> 전시는 모더니즘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 현대미술의 문법을 너무나 정직하게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논)픽션 뮤지엄> 전시현장 모습. 사진촬영이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논)픽션 뮤지엄> 전시현장 모습. 사진촬영이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 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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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기 전 GD라는 예술가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으려 노력했다. GD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논란이 생기는 상황이 불편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작품과 전시가 훌륭하기를 기대했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라는 구호를 정책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대이지 않은가. 국경을 넘어 많은 대중들로부터 음악으로 인정받은 젊은이의 패기 넘치는 도전을 반갑게 생각할 수는 없을까? 이미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는 '스타'가 좋은 예술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쏟아지는 가십기사들과는 대조적으로 전시에 대한 진지한 평론조차 찾아보기 힘든 현황에서 미술계의 인색함이 느껴진다. 엘리트주의의 텃세는 아닌지 조심스럽게 염려해본다.

이 평론은 세 부류의 독자를 가정하고 작성되었다. 첫 번째는 전시를 보지도 않은 채 '볼 가치도 없다'는 편견을 가진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다.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는 문화예술인들마저 한 인간 그리고 그의 예술에 접속하려는 노력도 없이 편견으로 재단한다면 그것은 분명 다양성의 인정과 교류를 통해 풍부해지는 발전의 길이 아니다. 섣부른 편견과 재단은 무한한 가능성마저 가로막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시에 대한 평가는 무엇보다 작품을 바탕으로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 번째는 GD를 통해 처음 현대미술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대중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타 예술 장르보다 유독 '미술' 언어를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가능하다면 이들과 함께 '미술'에 대해 논하고 싶다. 과연 현대의 미술은 우리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문화와 예술을 소비하는 우리들이 좀 더 능동적으로 그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꿈을 꿔본다.

마지막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예술가와 동참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미술평론'의 몫을 다 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GD,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이번 전시에서 무엇보다 아쉬운 부분은 우리가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GD의 모습 그 이상의 깊이를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대중들이 예술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GD는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수많은 인터뷰들과 그가 만들어온 음악 등 그의 감각과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경로가 인터넷을 통해 다양하고 편리하게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예술장르는 표현방식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 소통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술'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전시가 아닐 수 없다.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이상과 현실, 무대의 이면, 선과 악, 자연과 인공, 진짜와 가짜 등의 키워드들에 대한 표현이 너무나 1차원적이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일시적인 필요에 의해 많은 것들을 소비해 버리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잔인한 존재이다. 예술가 스스로가 소비되어 사라지는 상품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자 한다면 좀 더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3살 때부터 대형 엔터테이먼트에서 동고동락하며 훈련을 받고 정상의 자리에 오른 한 청년의 영혼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그가 생각하는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갈증의 깊이를,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통찰력을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었던 것일까.  

 ‘사진 조각’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국내외 미술계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는 권오상 작가의 "무제의 지-드래곤, 이름이 비워진 자리"
 ‘사진 조각’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국내외 미술계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는 권오상 작가의 "무제의 지-드래곤, 이름이 비워진 자리"
ⓒ 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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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기종의 <어느 멋진 날, 한 낮의 짧은 꿈>
 진기종의 <어느 멋진 날, 한 낮의 짧은 꿈>
ⓒ 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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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각'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국내외 미술계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는 권오상 작가의 <무제의 지-드래곤, 이름이 비워진 자리>는 매우 키치적이다. 악마와 싸우는 성미카엘 대천사의 도상을 패러디한 형태에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GD의 무수히 많은 사진들을 이어 붙여 조각을 완성하였는데 사방이 거울로 막혀있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가벼운 이미지들의 환영은 매우 낯간지럽다.

진기종의 <어느 멋진 날, 한 낮의 짧은 꿈>과 사일로랩과 GD가 함께 제작한 <Room No.8>은 어떠한가. 재현의 대상이 GD이기 때문일까,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상품 이미지의 확대재생산일 뿐이라는 안타까움과 한계가 여실히 느껴졌다. 모든 작품들이 하나같이 GD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진짜 내면엔 접근하지 말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표지판이 있는 것 같았다. 이상과 현실의 교차점, 무대를 넘어서고 싶었으나 미술관을 또 다른 무대로밖에 만들지 못했다.

특히 전시 말미에 있는 <지-드래곤에게 말걸기를 시도하세요>라는 작은 방이 전시를 보며 들었던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단숨에 압축해 버리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는데, 포스트잇 등을 통해 GD에게 팬레터를 작성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전시장을 방문했을 당시 7월 2일) 작품도판과 평론 등이 실린 전시도록을 찾아볼 수 없었고, 도록조차 없는 미술관에서 GD와 관련한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이 씁쓸하게 기억에 남았다. 이는 '이것은 예술이 아니라 상업'이라고 비판했던 사람들의 편견을 더욱 공고히 하는 팬서비스가 아니었나 싶다.  

 전시 말미에 있는 "지-드래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하세요" 수많은 메모에는 "오빠 사랑해요" 류의 GD찬양글이 가득했다.
 전시 말미에 있는 "지-드래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하세요" 수많은 메모에는 "오빠 사랑해요" 류의 GD찬양글이 가득했다.
ⓒ 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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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권지용을 주눅들게 하나

여러 가지 아쉬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8세, 청년 권지용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앨범 자켓, 뮤직비디오와 무대의상 등 심미적 감각을 필요로 하는 작업들을 보면 그가 왜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는지 자연스럽게 납득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서 GD 스스로 '미술을 아직 잘 모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입을 여는 것을 보고 그가 실제로 문외한이라서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현실이 주는 눈칫밥이라고 느꼈다.

소위 미술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외국유학까지 미술계 엘리트코스를 밟은 사람이라 한들 자신 있게 '현대미술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의 비율이 몇이나 될까. 이미 미술은 1964년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 이후 종말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상자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시각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예술'이라 명명하는 작가의 변에 더 비중을 두면서 이 혼란은 시작되었다.

1911년 피카소가 시도한 콜라주 기법은 어떠한가. 완전한 창조란 존재하지 않으며 예술이란 언제나 이미 존재하는 문화의 차용과 재편성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미 모든 것이 예술이고 누구나가 예술가인 시대, 더 이상의 새로운 형식과 철학이 존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동시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예술은 무엇일까? '시각예술언어'가 갖고 있는 고유의 힘은 과연 존재하긴 하는 걸까?

GD의 전시 이후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울컥한 심정이 들었다. 28세에 감당해야 할 부와 명예 이면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왔을 그의 15년 인생은 어떤 것일까 짐작하기 어려웠다. 꽤 많은 시간을 외모를 가꾸는데 투자해왔을 것이며, 사생활은 보장되지 않고 '너무 잘나가기' 때문에 순수하고 폭 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기도 어려움이 있었겠지…. 방송에서의 모습이 본래의 내 모습인지 구분되지 않는 혼동 속에서 형성된 자아의 갈증을 음악으로 분출해 왔던 것은 아닐까.

'나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아'(HEARTBREAKER), '네 형, 네 누나. 잘나가서 죄송해요'(ONE OF A KIND), '맨 정신이 난 힘들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맨 정신)와 같은 그의 가사들은 굉장히 당돌하지만 한 편으로는 너무 진심으로 느껴져 안타깝다. 연애, 육아, 결혼을 포기하는 것에 더해서 인간관계, 안정적인 주거, 희망, 꿈을 포기하며 미래에 대한 낙관 없이 하루살이에 만족하는 청년세대 혹은 그런 청년세대를 앞두고 있는 청소년들은 화려하고 당당한 무대 위 그의 모습으로 대리만족하고 열광한다. 우리는 평생 절대 누릴 수 없을 것 같은 허세와 당당함이 많은 이들에게 짜릿함을 준다. 하지만 GD가 느끼는 무대 뒤의 허무함과 고독함은 동세대와 맞닿아 있다.

대중음악가로서 정점에서의 안주가 아니라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것이 온전히 그의 선택이었다면) 그의 진정성에 조금 더 관대한 시선으로 지켜볼 만하다 생각된다. 그의 솔직하고 감각적인 예술언어에 '영원한건 절대 없'다는 허무함을 넘어선 미래를 향한 참된 '혁명'을 얹어가는 일에 아주 미미한 영향을 미칠지라도 평론계의 몫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 글을 썼다.

많은 대중문화들이 삶의 현실과는 무관한 일회성 쾌락에 집착하고 있다. 인생을 함께 걷는 동반자로서의 인간관계가 아닌 성적 쾌락, 진솔한 대화 없는 밀고 당기기의 고수만 넘쳐나는 듯 보이는 사회. 그 허무함엔 내일이 없다. '혁명'을 액세서리로 차용하는 '힙'한 상품이 아닌, 사회적 현실과 예술적 발언의 '힙합'정신이 살아있는 통찰의 예술을 기대하는 것은 GD에 대한 과대평가일까?

 <피스마이너스원>의 일부인 2인 컬렉티브인 방&리의 작품
 <피스마이너스원>의 일부인 2인 컬렉티브인 방&리의 작품
ⓒ 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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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순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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