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예술'의 몸부림, '배우'들의 몸부림

공연을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몸부림'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정말 극단적인 연극이었다. 조명, 커튼, 무대의 변화가 없었던 현장. 그 외의 배경 등 무대장치는 최소한으로, 아니 없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디아트홀 공. 공장 건물의 2층은 <게공선>의 무대로 더 이상의 장치가 필요 없어보였다.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폰에 설치되어 있는 어플 '길 찾기'가 가르쳐준 곳에 도착하니 그곳은 극장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공장 앞이었기 때문이다. '인디아트홀 공'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1가 218번지'는 금형·사출공장 20여 곳이 모여 있는 건물이었다. 오후 8시. 늦은 시각이었지만 공장의 기계는 여전히 가동되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입구와 겨우 켜져 있는 듯 보이는 전구의 노란 불빛. 거친 시멘트벽과 간간히 들려오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 현장의 모든 요소들이 이 공연을 위해서 준비된 무대장치 같았다.
 인디아트홀 공 입구1
 인디아트홀 공 입구1
ⓒ 박민희

관련사진보기


 인디아트홀 공 입구2
 인디아트홀 공 입구2
ⓒ 박민희

관련사진보기


 연극 시작전 공연장 모습
 연극 시작전 공연장 모습
ⓒ 박민희

관련사진보기


우리가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배우의 몸뚱이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 공간에서 점점 땀에 젖어가는 배우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 것은 강렬한 인상이었다. 소품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우리는 게공선 위에서 그물을 수선하고, 바다에 그물배를 던지고, 끌어올리고, 통조림을 만드는 등의 광경을 체험할 수 있었다. 뚝-, 뚝- 바닥으로 무겁게 떨어지는 배우들의 땀으로부터 '노동'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배우가 첨예한 집중력으로 몸의 감각을 깨워 연기를 하는 만큼, 관객 또한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소설 <게공선>, 그리고 세월호

<게공선>은 일본의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 작가인 고바야시 다키지의 소설이다. 1929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캄차카 바다로 나가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배 안의 엄청난 강도의 노동과 착취를 고발한 작품이다. 게공선은 일본 북부와 러시아의 가장자리에 있는, 오호츠크해와 베링해 사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캄차카 반도부근의 거대한 해양생태계를 무대로 작업했다.

이는 '공장선'으로 '선박'이 아니기 때문에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았고 순수한 '공장'이었지만 바다 위에 떠있는 배였기 때문에 '공장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경계에서 존재했다.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뿐인 노동자들은 '자본주의라는 지옥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싣는다. 감독은 한 명이고, 노동자는 최소 100배. 왜 수적으로 월등하게 우세한 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에 순응하는 것일까. 몸의 피로가 극에 달해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이성은 깨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게공선>을 통해 '세월호'를 보았다. 게공선의 많은 배들이 러-일전쟁 때 파손된 배들을 개조하여 만들어졌고, 언제 침몰해도 이상하지 않을 낡아빠진 고물선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배에 타고 있는 사람 한명 한명의 목숨보다는 자본의 이윤확대가 목적인 기업과 자본의 민낯이 바닥까지 닮아있다.

공연이 후반으로 가면서 절제된 말 들이 좀더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미조직 노동자, 구제불능 술고래.라는 대사는 세월호뿐만 아니라 눈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들, 예술노동자 스스로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연이은 폭염에 하루 종일 땀 흘리며 서울을 누비다 공연장에 도착해 피로감을 업고 자리에 앉은 나 같은 사람들은 등받이가 없어 다소 불편한 객석에서 상당 시간 마임으로 이루어진 공연에 집중하려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난 후부터는 허리도 아프고 뻐근해 몸을 배배꼬기 시작했다.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진 순간에 기묘한 경험을 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공터(무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노동하고 있는 '예술 노동자'가 보였던 것이다. 더불어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나'의 존재 역시 몸뚱이를 벗어날 수 없구나 생각했다.

노동과 예술노동

그들은 그물배를 띄워 게를 잡고 통조림으로 만드는 '작업(연기)'을 하며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각자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까불지마 감독!'을 외친다. '미조직 노동자, 구제불능 술고래.' 이 현장이 캄차카 바다 앞 게공선이라는 몰입에서 깨어나니, 연극이라는 현장에서 연기라는 예술노동이 진행 중이었다.

2011년 1월 젊은 유망주였던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가 생활고로 숨진 뒤 예술계는 비통함과 먹먹함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후 생겨난 일명 최고은 법, 예술인 복지법 시행령이 2012년 11월 18일에 실시되었고 예술인 복지재단이 출범한지 이제 3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올 해 6월, 또 다시 생활고로 숨진 배우가 고시원에서 5일 만에 발견되었다.

우리사회에서는 아직 '예술노동'이 노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 '돈도 벌 수 있는 일'은 욕심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최저임금'을 높이는 일이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급부상해도, 최저임금은커녕 '생계비'를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가짐이 관성처럼 퍼져있어 모든 노동 상식이 빗겨가는 곳이 바로 예술이 벌어지는 현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술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는 현장이 얼마나 많은가. 너희(예술가)들은 '하고싶은 일을 하니까 돈을 적게 줘도 되겠지(최저임금제 무시)' 혹은 '시간될 때 재능을 기부해줘', '예술노동은 즐거우니까 돈 대신 밥으로 줄게'라는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예술가라고 해서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예술가들 또한 동시대, 똑같은 체제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필요로 인해 교환되는 모든 노동의 대가는 그 가치창출만큼 정당하게 지불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게 재능기부를 강요하는 사회에 오롯이 가진 것 제 몸뚱이 하나로 노출되어 있는 예술가들.

다수의 노동자들이 또 한 명의 노동자일 뿐이었던 동료의 장례식을 치른다. 그의 죽음이지만, 곧 나의 죽음으로 다가온다. 혹독한 현실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어버린 그를 그저 의지박약의 나약한 인간으로 낙인찍어 하찮게 만드는 이들 누구인가? 정녕 죽음마저 그의 잘못일까. '미조직 노동자, 구제불능 술고래'인 예술 노동자들이 단결, 파업, 투쟁으로 스스로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다른 미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 몸뚱이 하나로 세상에 던져지는 동시대의 수많은 사람들.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연극을 권한다. 100년 전 발표된 작품이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는 것, 오늘 날 우리들의 노동에 대해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5년 7월 21일부터 8월 2일까지 진행된 제 17회 서울변방연극제 폐막작으로 초연을 올린 연극 <게공선>의 관객비평문입니다. 극단 동의 <게공선>은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6기 동인의 기획초청공연 '세월호' 프로젝트에서 재공연됩니다.

위 글은 누구나 필진이 되어 글을 올릴 수 있는 독립매체 '크리틱-칼 http://critic-al.org/'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