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사람사는 세상 영화축제' 공식 포스터.

'제2회 사람사는 세상 영화축제' 공식 포스터. ⓒ 노무현재단


"해방 후 70년을 맞이한 올해의 주제는 '70년의 고독'입니다. 서로 미워하며 상대를 부정하는 삶은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70년 동안 한국인의 삶은 몹시도 고독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전 후 세계인들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이념과 체제의 대립과 갈등은 한국인들의 삶 속에서 가장 깊고도 고통스러운 상처를 남겼습니다. '70년의 고독'이라는 주제로 초청된 열한 편의 국내외 영화들은 바로 그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와 상생의 가능성을 일깨우고 모색하는 작품들입니다."

포탄이 날아다니고, 연평도 주민들은 대피 중이다. 남북한이 극한 대립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준전시 상태를 선포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추가 도발 시 즉각 대응"으로 맞불을 놨다. 맞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위태로이 삶을 지탱해 나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치유와 화해, 상생"을 강조하는 '사람사는세상 영화축제' 이창동 집행위원장, 그가 전하는 영화제의 개최 의도는 참으로 시의적절할 수밖에 없다. 아니, 개막을 앞둔 영화제를 위해 남북의 정권이 합심한 것은 아닌가 하고 오해(?)할 정도다.

'제2회 사람사는 세상 영화축제'(이하 '영화축제')는 이러한 정세를 반성하고 반추할 만한 영화로 채워졌다. 영화축제는 다가오는 8월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열린다. 노무현재단이 주최하는 이 영화제는 지난해 개봉한 <변호인>을 비롯해 대통령에 관한 5편의 영화를 상영하며 첫 회의 문을 연 바 있다.

노무현재단 이해찬 이사장은 "종전(終戰) 이후에도 전 세계적으로 지속하고 있는 이념, 국가, 종교, 체제의 대립과 갈등 작품들"이라고 상영작들을 소개했다. 지금이라서 더 특별한 상영작들의 면면은 분명 눈여겨볼 만하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이창동 감독과 만난다

 개막작 <침묵의 시선> 중 한 장면.

개막작 <침묵의 시선> 중 한 장면. ⓒ 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은 제6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후보작을 필두로, 전 세계 70개 영화제에 초청되고 70여 개 상을 휩쓴 화제작이다. 지난해 개봉한 이 작품은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 쿠데타 당시, 100만 명의 민중들과 지식인·공산주의자들이 학살된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문제작이다.

<액트 오브 킬링>이 가해자의 시선을 다뤘다면, 후속작인 <침묵의 시선>은 그 반대편에 선 생존자들의 이야기다. <액트 오브 킬링>에 앞서 제작된 이 작품은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100만 명의 희생자 중 유일하게 학살을 목격한 증인 '람리'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대학살의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다. 당시 감독은 생존자들에게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바 있다.

'영화축제'는 25일 개막식에 이어 개막작으로 <침묵의 시선>을 상영한다. 오는 9월 3일 정식 개봉에 앞서 '영화축제'에서 먼저 공개되며, 조슈아 알펜하이머 감독은 개막작 상영에 이어 이창동 감독, 소설과 은희경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다. 이번 '영화축제'에서 <액트 오브 킬링>이 전야제 격으로 상영된다. 이 영화가 국내 언론과 관객들에게도 찬사를 받았던 만큼, 조슈아 알펜하이머 감독의 내한과 '영화축제' 참석도 영화계 안팎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폐막작은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작인 <위로공단>이다. '노동개혁'의 시대에 노동과 여성·역사를 반추하고, 우리의 현재를 보살피게 하는 미술과 영화의 '콜라보'가 돋보이는 다큐멘터리다. <위로공단>은 28일 폐막식에 이어 상영된다. 임흥순 감독과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의원, <낮은 목소리> 시리즈와 <화차>의 변영주 감독이 상영 후 토크를 이어간다.

이밖에 총 11편의 초청작 중 눈에 띄는 작품으로는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오멸 감독의 <지슬>, 분단의 상처를 그린 임권택 감독의 <짝코>, 영국 노동당의 약진과 흥망성쇠를 그린 켄 로치 감독의 <1945년의 시대정신>, 한국 현대사의 아픈 현실인 보도연맹 사건을 그린 <레드 툼> 등이 상영된다.

나머지 상영작은 안드레스 우드 감독의 <마추카>, 시드니 루멧 감독의 <허공에의 질주>, 자자 우루샤제 감독의 <텐저린즈>,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 등이다. 각 초청작의 상영 후에는 임권택 감독, 김기덕 감독, 배우 문성근, 김홍준 감독,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사회적 메시지'에 집중하는 '사람 중심' 영화들의 향연

 '제2회 사람사는 세상 영화축제' 상영 일정

'제2회 사람사는 세상 영화축제' 상영 일정 ⓒ 노무현재단


한편 '영화축제'에 공모 부문이 올해 신설됐다. 독립예술 영화인들에게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보장하고, 시민 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총 17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201편의 응모작 가운데 선정된 본선 진출작은 극영화 12편, 다큐멘터리 5편. 이들 작품은 영화축제 기간 동안 대상·최우수상·우수상·심사위원특별상을 두고 경합하며 대상 1000만 원을 포함해 총 20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제2회 사람사는세상 영화축제'의 실무를 맡은 노무현 시민학교 정재헌 담당자에게 직접 영화제 내외의 이야기를 물었다. '광복 70주년'의 의의를 강조하는 그는 이미 노무현재단 측이 3회 이후 영화제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음은 정재헌 담당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작년 1회는 사실 '영화제' 규모는 아니었다.
"사실 작년보다 규모가 커진 것이 사실이다. 신설한 공모 부문에도 총 2002편이 응모했을 정도다. 그중 17편을 선정하기 쉽지 않았다. 작년 5편이 모두 대통령에 관한 영화였다면, 올해는 11편으로 폭넓게 늘린 것이 특징이다. 많은 시민이 관심을 가져주고 있어 감사하다. 전반적으로 신생이라 부족한 게 많지만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 공모 부문이 신설됐다. 선정 기준이 궁금하다.
"우선, 특정한 기준이나 주제를 놓고 심사했다기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담은 영화로 포괄했다고 보면 맞다. 그러다 보니 포괄적인 주제나 다양한 작품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예심에서도 만듦새나 완성도가 훌륭한 영화도 중요했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나 감독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더 관심을 기울인 것 같다."

- 초청작의 면면이 꽤 다채롭다.
"<침묵의 시선>이 미개봉작인데도 불구하고 초청이 결정돼 다행이다. 감독님까지 오셔서  이창동 감독님과 대화를 할 예정이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도 미개봉작이고, 많은 관객이 관심을 보여 초청하게 됐다. 초청 부문 역시 사회적인 메시지에 주목했으면 한다."

- 노무현재단이 주최하는 영화제다. 
"노무현이란 이름보다 역시나 '사람 중심'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제다. 올해는 특히 '해방 70주년'의 의미가 컸다. 해방 70년 동안 시민들이나 겪었던 고통, 상처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영화들을 선정하려고 노력했다. 상처 치유와 화해, 상생이란 주제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게 될 것 같다."

- 노무현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이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실무적인 일도 많이 하나.
"굉장히 넓게 관장하고 많이 관여하시는 편이다. 흔히 말하듯이 이름만 올린 건 물론 아니다. 프로그래밍이나 섭외에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많은 도움을 줬다. 영화계나 문화계 인사들의 섭외도 마찬가지였다."

- 그래서인지 임권택 감독과 김기덕 감독의 이름도 눈에 띈다. 
"김기덕 감독이나 임권택 감독 모두 평일 낮이나 오후에 모더레이터 역할을 하게 되는데, 상영관이 하나인 영화제 특성상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 있었다. 어렵게 모셨는데, 좀 더 관객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상영시간에 배정하지 못해 아쉬움도 있다. 이름만 들어도 시민들이 좋아할 분들이 많이 참여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며 초대에 흔쾌히 응해 준 것으로 안다."

- 내년 영화제 규모는 더 확대할 예정인가.
"일단 올해는 작년과 달리 공모 부문이 생겼다. 작년, 영화 <변호인> 팀이 상금을 기부해서 향후 3~4년은 공모 부문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최소한 초청 부문도 현재의 작품 수를 유지하거나 늘릴 예정이다. 올해는 평일에 개최되다 보니 시민들이 좀 더 편하게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내년엔 주말을 낀다거나 주말에 개막하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사람사는세상영화축제 이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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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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