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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시선이 궁금했습니다. 22기 대학생 인턴 기자들이 치마를 입는 남성, 임신한 여성, 남자 누드 모델 등으로 분했습니다. 그리고 시선이란 말 뜻 그대로, '눈이 가는 길'에 서봤습니다. 그 생생한 체험담을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그래도 가릴 덴 가려야 하나?'

19일 아침, 거울 앞에 서서 대일밴드를 들고 한참 고민했다. 호기롭게 '노브라'로 출근하겠다고 말한 날이었다. 그런데 막상 얇은 반팔 티셔츠 한 장을 걸치고 밖에 나가려니 두려웠다. 내 모습을 바라볼 다른 사람의 시선을 견딜 수 있을지 겁이 났다.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는 공동기획기사 주제는 '시선'이다. 가장 먼저 '노브라'가 떠올랐다. 늘 브래지어가 '답답한 속옷'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특히나 요즘 같은 여름에는 땀까지 차는, 아주 불편한 속옷. 집에 있을 때면 항상 브래지어를 벗고 생활했지만, 그 상태로 집밖으로 나온 적은 거의 없다.

기자에게 브래지어는 ‘답답한 속옷’이었다. 특히나 요즘 같은 여름에는 땀까지 차는, 아주 불편한 속옷.
▲ 색색의 브래지어들 기자에게 브래지어는 ‘답답한 속옷’이었다. 특히나 요즘 같은 여름에는 땀까지 차는, 아주 불편한 속옷.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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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게 '노브라'는 정말 편하고, 익숙한 것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노브라'의 의미는 그렇지 않다. 노브라는 민망하거나, 야하거나, 불편한 것이다. 이참에 그 시선에 저항해보고 싶었다. 노브라로 일상 생활을 한 뒤 체험기를 쓰겠다고 발제했다.

완벽한 노브라로 집을 나섰다. 집과 지하철역은 도보로 10여 분 정도의 거리. 그리고 지하철을 타면 회사까지 다시 10분. 총 20여 분의 짧은 출근길이지만, 마주치는 사람이 많았다. 집 앞까진 괜찮았는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노브라를 알아채지 못했다. 간혹, 기자의 몸을 별 생각 없이 쳐다보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리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노골적으로 바라보거나 불편한 기색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망했다. '난 당당하다, 원하던 거다'라고 스스로 생각해도, '누군가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하는 걱정과 부끄러움이 뒤섞였다.

패기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바람이 불면 티셔츠를 잡았다. 가슴의 모양이 더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일부러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고 다녔다. 그래야 노브라인 것이 덜 티가 났다. 선배 기자는 "위축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이 기획은 한나절 만에 그만뒀다. 오후에 다른 취재를 나가면서 집에 들러 브래지어를 입었다. 그제서야 편안했다. '타인의 시선에 저항 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내면의 시선조차 넘어서지 못했다.

노브라에 노조 조끼, 부끄러웠다

"처음 몸자보 조끼를 입고 화장실 갈 때 민망하긴 했어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하이디스 해고노동자 이미옥씨가 말했다. 이씨가 입고 있는 몸자보 조끼는 노란색이었고, 문구는 빨간색이었다. 조끼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몸자보 체험'을 생각한 건 조끼가 노동자를 담아내는 상징적인 물건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또 조끼에는 대개 원색 계열의 문구가 적혀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런 노조 조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궁금했다. 이씨에게 부탁해 조끼를 빌렸다.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하이디스 노조의 몸자보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하이디스 노조 몸자보 조끼를 입은 기자.
▲ 하이디스 노조 몸자보 조끼 하이디스 노조 몸자보 조끼를 입은 기자.
ⓒ 이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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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일상적인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처음 들른 곳은 대형 서점. '1000억 흑자에 정리해고 정부가 해결하라'는 문구가 빨간색으로 적혀있는 노란 조끼를 입은 채였다.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내 몸으로 꽂혔다. 

백화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백화점에 화장품 브랜드가 즐비한 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백화점 여직원 세 명의 시선이 일제히 기자를 바라봤다. 기자와 비슷한 또래였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 시선을 참을 수 있다 싶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깔끔한 옷과 화려한 화장을 한 그들과 처지가 대비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결국 빠르게 백화점을 나왔다.

노브라 때와 비슷한 느낌이 늘었다.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표현하는 시선이 없었는데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불편했다. 조끼를 빌리기 전, 이미옥씨에게 몸자보 조끼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씨는 "(조끼를 입는 것은) 우리 문제를 알리기 위해 입는 것"이기에 힘들지 않다고 했다.

어쩌면,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은 힘들고 불편한 시선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외쳐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내게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에게라도 더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불편한 시선과 부끄러움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이디스 해고 노동자들은 농성은 19일로 85일째였다. 사측의 정리해고 결정과 공장폐쇄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농성하는 동화면세점 앞 버스정류장에는 저녁이면 직장인들이 줄을 서서 퇴근 버스를 기다린다. 하이디스 해고노동자들은 오늘도 그 수많은 시선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임산부 배려? 허공에 떠도는 시선들    

노브라에 노조 조끼까지. 이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 대해 말하고자 했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오히려 불편함과 부끄러움을 느낀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20일, 기자는 임산부로 분장을 하고 지하철을 탔다. 임산부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1kg도 되지 않는 수건을 배에 넣고 다녔다. 조금 서서 가도 몸이 힘든 것은 없었지만, 같은 상황에서 실제 임산부들이 느끼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 임산부 분장을 한 기자 1kg도 되지 않는 수건을 배에 넣고 다녔다. 조금 서서 가도 몸이 힘든 것은 없었지만, 같은 상황에서 실제 임산부들이 느끼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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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서울시는 임산부 배려석을 새 단장했다. 좌석 뒤쪽엔 새롭게 개발한 앰블럼을 붙이고, 좌석부터 바닥까지 분홍색 띠를 두르는 방식이다. 지하철 승객들이 임산부 배려석을 한 눈에 알아보고, 임산부에게 양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실제 그 취지대로 이뤄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수건 등으로 임신 6개월 정도의 배를 만들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약 5시간 동안 지하철 1,2,5호선을 총 20여 번 가량 오르내렸다.

개선된 임산부 배려석이 시범으로 설치된 지하철 5호선 공덕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처음 탄 열차의 임산부 배려석에는 여성이 앉아있었고, 다른 빈 좌석이 없었다.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섰다. 그곳에 앉아있던 여성은 고개를 들지 않고 휴대전화 화면을 응시했다. 결국, 바로 그 옆자리에 앉아있던 중년 여성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은 이어졌다.

2호선 강남역이었다. 열차 좌석은 역시나 만석이었고, 임산부 배려석에는 한 남성이 앉아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좌석 옆에 있는 봉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었다. 기자가 그 앞에 섰지만, 남자는 기자를 보지 못했다. 옆에 있던 중년 여성은 임산부 배려석에 붙어있는 앰블럼과 남자를 한참 번갈아 바라보다가, 자리를 양보했다.  

열차를 20여 번 탑승하면서, 좌석이 만석이었던 경우는 8번이었다. 임산부 배려석에도 항상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때마다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섰다. 일부러 한 손으로 짚고, 배를 내밀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앉아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늘 정면이 아닌 아래, 휴대전화로 향했다.

결국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열차 좌석이 만석일 때뿐만 아니라, 다른 빈자리가 있을 때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사람들이 있었다. 임산부 배려석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좌석 제일 끝자리이기 때문이다.

열차 좌석이 만석일 때뿐만 아니라, 다른 빈자리가 있을 때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사람들이 있었다. 임산부 배려석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좌석 제일 끝자리이기 때문이다.
▲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열차 좌석이 만석일 때뿐만 아니라, 다른 빈자리가 있을 때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사람들이 있었다. 임산부 배려석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좌석 제일 끝자리이기 때문이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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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새 단장한 임산부 배려석 바닥에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다는 그 자리는, 오늘의 임산부가 앉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날 기자는 1kg도 되지 않는 수건을 배에 넣고 다녔다. 조금 서서 가도 몸이 힘든 것은 없었지만, 같은 상황에서 실제 임산부들이 느끼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일어서 있는 내 배 위치와 앉은 사람들의 시선은 거의 동일 선상에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기자의 배를 쳐다보지 않았다. 흘끗 보다가도 황급히 시선을 거뒀다.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것조차 아니었다. 임산부를 향한 시선은 대개 허공을 떠돌았다. 

덧붙이는 글 | 김예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브래지어, #하이디스, #임산부 배려석,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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