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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옆에 쪼그리고 앉아 같이 힘을 주고 있다.
▲ 변기에 앉아 힘주는 첫째의 모습 엄마도 옆에 쪼그리고 앉아 같이 힘을 주고 있다.
ⓒ 송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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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재우던 엄마도, 설거지하던 아빠도, 하던 일을 즉각 멈추고 달려가게 하는 마법의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쉬, 응가!"

바야흐로 기저귀 떼기 딱 좋은 계절, 여름이다. 날씨가 더워 집안에서 가볍게 팬티 한 장만 입힐 수 있고, 행여 아이가 실수하더라도 빨래가 잘 마르기 때문에 여름은 여러모로 배변 훈련 하기 좋다.

성공적인 배변 훈련 위한 엄마의 밑밥

사실 이번 여름에 기저귀와 작별하기 위해, 그동안 몇 가지 밑밥을 깔아두었다. 첫째를 낳기도 전에 임신·육아교실에서 경품으로 받은 유아 변기는 지난 봄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첫째가 변기와 친해지게 하려고 인형도 앉혀보고, '저건 뭐지?'라고 물으며 관심을 유도하기도 했다. 종종 소변기를 대주고 쉬해 보도록 유도했는데 몇 번 성공하니, 여름이 오기도 전에 기저귀 떼는 거 아니냐며 설레발도 쳤다.

그런데 틈날 때마다 '쉬'를 시키는 엄마에게 아이가 지쳐 버린 걸까? 어느 날 첫째가 갑자기 소변기에 쉬하기를 거부해 버린다. 아쉽지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하는 마음으로 유아 변기는 다시 창고로 들어갔다.

'똥'은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최초의 물건이다. 자기 몸에서 무언가가 쑥 나와 덩어리져 있는 모습은 아이들에겐 마냥 신기한데 어른들은 더럽다며 코를 막는다. 그러곤 얼른 물을 부어 사라지게 한다. 아이들에게 그 경험은 작은 상처가 된다. 심한 경우 제 것을 빼앗아 간다는 생각에 어른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똥 누기를 거부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어서 똥을 누기도 한다.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서천석 지음) 중

기저귀 떼기를 위한 엄마의 은밀하고도 처절한 밑밥은 계속된다. 아이가 똥에 대해 친근하게 느끼도록, 똥이 나오는 온갖 그림책을 빌려다 보았다. 첫째는 <응가하자 끙끙>(최민오 지음)을 볼 때면 자기도 똥을 눌 것처럼 힘을 주었다. 그림책 <똥떡>(이춘희 지음)에서 주인공 아이가 뒷간에 빠져 똥 범벅이 되는 장면은 너무나 좋아해서 몇 번이고 되돌아보며 깔깔 웃곤 했다.

그 중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는 아이가 요새 푹 빠진 그림책이다. 간단히 대화체와 의성어만 읽어주는데도 아이는 이 책을 무척 좋아한다. 사건은 바깥으로 나온 두더지 머리에 누군가 똥을 싸면서 시작된다. 두더지는 '운이 나빴어!'하고 자신을 토닥이기 보다는, 반드시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인다. 덕분에 비둘기, 말, 토끼 등 참 많은 동물이 용의자로 등장해 자신의 똥을 보여주며 결백을 증명한다.

재미있는 것은, 다들 자기 짓이 아니라고 발뺌만 할 뿐 응가 테러를 당한 가엾은 두더지를 위로하는 동물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두더지도 자신의 머리에 떨어진 똥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면 뒤끝 없이 자리를 떠난다.

중간에 두더지의 부모가 나타났다면 '속상했겠다, 집에 가서 씻겨줄게!', '엄마 아빠가 반드시 범인을 찾아서 혼내줄게!'하고 달래줬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싱겁게 끝났겠지. 하지만 두더지는 다행히도(?) 그렇게 친절한 어른을 만나지 못한다. 덕분에 끈질기게 상대의 똥을 검증하고 파리들의 도움을 얻는 기지를 발휘한 끝에 통쾌한 복수에 성공한다.

결국 개의 머리에 응가하며 멋지게 복수에 성공한 두더지처럼, 우리 첫째도 제힘으로 깔끔하게 변기에 응가하는 날이 올까? 이제 기저귀 떼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씀이 신호탄이 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린이집과 집에서의 배변 훈련 협공이 시작됐다.

첫째가 팬티 바람에 쉬를 하면, '괜찮아, 축축하니까 싫지? 다음부터는 쉬한다고 말해줘!' 하고 세상 어디에도 없을 다정한 엄마 코스프레가 이어진다. 사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디 침대나 소파에다 소변 테러를 할까 봐 매의 눈으로 늘 첫째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첫째가 응가라고 해서 헐레벌떡 변기에 앉혔더니 '아니'라며 일어날 때면 이 깜찍한 양치기 소년에게 속았구나 싶다. 같이 응가하자는 첫째의 말에 함께 쪼그려 앉아 응가 하는 척 끙끙댈 때는 이 무슨 '웃픈' 상황인가 싶다. 첫째가 팬티만 입고 자다가 이불에 오줌 지도를 그린 다음 날은 꼭 비가 내린다. 어린이집 차를 탈 때 기저귀 하기 싫다고 떼를 써서, 기저귀에 소방차와 딸기 등 온갖 그림을 그려 주며 어르고 달래 겨우 입혀 보낸 적도 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조심스레 배변 연습을 했더니, 기적이 왔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쉬' 하겠다더니 변기를 대줄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린다. 그런가 하면 응가를 하겠다더니, 변기에 앉아 제힘으로 변을 본다. 밥 먹고 똥 싸는 일이 이렇게 대수로운 일이었을까? 감격한 엄마 아빠는 물개 박수를 치며, 응가 사진을 기념으로 남긴다.

안녕, 기저귀!

베르너 홀츠바르트 지음 , 볼프 예를브루흐 그림
▲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겉표지 베르너 홀츠바르트 지음 , 볼프 예를브루흐 그림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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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금씩 기저귀와 작별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여름이면 등허리에 땀이 가득 차서 기저귀 채울 때마다 안쓰러웠던 시간은 이제 오지 않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싸게 기저귀를 사려고 오매불망 핫딜을 기다리던 시절도 안녕이다. 허벅지가 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남은 기저귀가 아까워 어떻게든 채우며 버티던 시절도 이젠 안녕. 어디 갈 때면 한 짐 가득 챙기던 천 기저귀와 비닐봉지도 이젠 작별이다.

그러나 아뿔싸, 나에게는 둘째가 있다! 하지만 첫째 때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남은 20개월을 잘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 처지에서 보면 성장 과정은 끝없는 훈련의 연속이다. 먹는 것부터 시작해 수면, 뒤집기, 앉기, 이유식, 서기, 걷기 등 숱한 훈련을 거쳐 조금씩 제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간다. 거기에 부모의 미치고 팔짝 뛸 만한 환장과 좌절과 인내는 필수 양념이다.

배변이라는 산을 넘었으니, 또 다른 육아의 산이 우리 앞에 서 있겠지. 우리가 넘어야 할 새로운 산에 좌절하기보다는, 방금 산 하나를 함께 넘었다는 즐거움과 보람에 흠뻑 빠져 본다. 그 산 정상에 아이와 함께 올라 웃었던 달콤함이 우리 앞의 또 다른 산을 넘게 해줄 힘이 되리라. 오늘도 아이를 따라다니며 열심히 쉬, 응가를 시키는 부모들이여 함께 힘냅시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 기사에 소개한 그림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사계절 펴냄.



태그:#배변훈련, #그림책 육아일기, #육아일기,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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