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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의 정은조 대표가 아름드리 자란 나무를 부둥켜안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나무는 그의 부친이 심은 것이라고.
 윤제림의 정은조 대표가 아름드리 자란 나무를 부둥켜안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나무는 그의 부친이 심은 것이라고.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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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나무를 심고, 수십 년 키워서 원목을 팔아 돈 버는 시대는 지났어요. 경제성도 없고요. 6차 산업화해야죠. 산에서 생산하고, 만들고, 체험하고, 파는, 그러니까 1차, 2차, 3차 산업이 모두 더해진 산림경영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 모델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보성의 초암산과 주월산 자락에서 대(代)를 이어 윤제림을 가꾸고 있는 정은조(64·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수남리) 대표의 말이다. 지난 11일 보성 윤제림을 찾아가 정 대표를 만났다.

모범 임업인으로 한국산림경영인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 대표는 부친(정상환·2005년 작고)이 일군 산림을 이어받아 산림경영의 본보기 숲으로 가꾸고 있다. 한국산림경영인협회는 15㏊ 이상 산지를 소유한 전국의 산주 360명으로 이뤄져 있다.

보성 윤제림 풍경. 편백과 삼나무 빼곡한 숲 사이로 임도가 다소곳이 나 있다.
 보성 윤제림 풍경. 편백과 삼나무 빼곡한 숲 사이로 임도가 다소곳이 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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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조 대표가 윤제림 현황판 앞에서 윤제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정은조 대표가 윤제림 현황판 앞에서 윤제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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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산은 녹화의 대상이었어요. 앞으로는 수익을 내야죠. 나무를 베서 팔면 목돈을 만지겠지만, 그 다음엔 어쩝니까. 다시 나무를 심어서 원목으로 자랄 때까지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하잖아요. 이래서는 산림의 미래가 없어요."

정 대표가 산림경영의 모델을 만들고 있는 이유다. 산림을 국민과 공유하고, 산림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도 보탬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정 대표는 복합영농을 시작했다. 임산물을 생산·가공해 직거래하기 위해서다.

곰취, 산마늘 등 산나물과 표고버섯 등 임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 체험단지도 만들었다. 행글라이더와 ATV(험한 지형에서도 탈 수 있는 오토바이)를 겸할 수 있는 산악레포츠 단지도 만든다. 숲속 유치원과 도서관도 구상하고 있다.

숲속 야영장과 함께 색다른 야영 체험장도 별도로 조성한다. 참가자들이 산막을 직접 조립해서 생활하고 해체까지 체험하는 곳이다. 여기서 생활과 숙식을 함께 하는 단체 훈련장이다. 관광객들에게 재미와 보람까지 선사하고 유·무형의 소득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수익도 공익에 쓴다는 방침이다.

윤제림에 들어앉아 있는 표고목. 정은조 대표가 소득과 체험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윤제림에 들어앉아 있는 표고목. 정은조 대표가 소득과 체험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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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조 대표가 윤제림에 설치된 모노레일을 운전해 보이고 있다. 모노레일도 산림의 6차 산업화를 위한 시설이다.
 정은조 대표가 윤제림에 설치된 모노레일을 운전해 보이고 있다. 모노레일도 산림의 6차 산업화를 위한 시설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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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다 할 생각은 없어요. 할 수도 없고요. 지역사회와 같이, 지역주민들과 함께 해야죠. 운영도 같이 하고 소득도 나누고요. 저는 지출을 줄이고 주민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전남도정의 목표인 '청년이 돌아오는 전남'에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창조경제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정 대표의 확신이다.

정 대표의 자신감은 윤제림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된다. 윤제림이 자리하고 있는 보성의 여건도 좋다. 편백, 삼나무, 전나무 빽빽한 초암산은 철쭉 군락지다. 주월산은 패러글라이딩장을 갖고 있다. 차밭과 갯벌도 넓고 천연염색과 판소리 자원까지 보유하고 있다. 6차 산업화의 전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윤제림을 찾은 관광객들이 산에서 트레킹과 등산을 즐기고요. 청정 임산물과 함께 웰빙 음식을 맛보도록 하고요. 힐링도 하고, 체험과 교육 기회까지 두루 제공하는 복합 산림산업으로 키우려고요."

정 대표가 그리고 있는 윤제림의 미래다.

정은조 대표의 부친(정상환·2005년 작고)이 1960년대 민둥산이었던 지금의 윤제림 터에 나무를 심다가 작업 인부들과 함께 쉬고 있는 모습이다. 정 대표가 보여준 사진이다.
 정은조 대표의 부친(정상환·2005년 작고)이 1960년대 민둥산이었던 지금의 윤제림 터에 나무를 심다가 작업 인부들과 함께 쉬고 있는 모습이다. 정 대표가 보여준 사진이다.
ⓒ 정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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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조 대표가 지난 11일 주월산 정상에서 윤제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은조 대표가 지난 11일 주월산 정상에서 윤제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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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윤제림은 1960년대 중반부터 조성됐다. 정 대표 아버지의 손에서 녹화사업이 시작됐다. 당시 그의 부친은 주조장과 극장 운영으로 번 돈을 여기에 다 쏟아 부었다. 민둥산에 편백과 해송, 참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를 심었다. 헐벗은 산을 푸르게 가꾸는 게 살길이라는 사명감에서였다. 산림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와 연구로도 밤을 지새웠다.

시간이 흘러 밤나무가 유실수로서의 기능을 다하자 수종 갱신에 나섰다. 참나무와 굴참나무를 많이 심었다. 편백과 삼나무, 목백합, 육송, 고로쇠나무, 그리고 구상나무, 전나무 등 조경수를 심었다. 1960, 70년대 산림녹화의 주역으로 살았던 아버지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정부로부터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아버지께서 정말 고생하셨어요. 날마다 새벽 6시면 집을 나가서 날이 어두워져야 돌아오셨거든요. 두꺼운 청바지를 입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집에 들어오시면 다리에 박힌 가시를 빼내고 소독약을 바르는 게 일상이었어요. '저렇게 힘든 일을 왜 사서 하시나' 싶었죠."

정 대표의 회상이다.

정은조 대표가 지난 11일 윤제림에서 아름드리 자란 나무를 부둥켜 안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정은조 대표가 지난 11일 윤제림에서 아름드리 자란 나무를 부둥켜 안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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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한 숲 사이로 임도가 단장돼 있는 보성 윤제림 풍경. 정은조 대표의 아버지와 정 대표가 대를 이어 가꾸고 있는 숲이다.
 빼곡한 숲 사이로 임도가 단장돼 있는 보성 윤제림 풍경. 정은조 대표의 아버지와 정 대표가 대를 이어 가꾸고 있는 숲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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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를 졸업한 그는 바로 대기업에 들어갔다. 미국과 영국, 싱가포르, 두바이 등지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미국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을 마치고 무역업을 하면서 제법 돈도 벌었다. 그럼에도 부친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대를 이어 산림을 가꾸라고 주문했다.

부친의 잇단 설득에 정 대표는 1989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일군 산림을 빛내고, 고생한 대가를 후대에 남겨야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마을의 이름을 따서 '수남농장'으로 불리던 산림의 이름도 아버지의 호를 따서 '윤제림'으로 바꿨다.

정 대표는 산림의 면적을 조금씩 늘려 337㏊(100만 평)까지 넓혔다. 나무도 꾸준히 심고 있다. 그 공로로 지난 2012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아버지가 훈장을 받은 지 20년 뒤였다. 대를 이어 산림을 가꾸면서, 대를 이어 훈장을 받은 셈이다.

정은조 대표가 자신이 직접 심은 나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정 대표는 아버지가 가꾼 숲은 계속해서 가꾸면서 빈 터에는 나무를 꾸준히 심고 있다.
 정은조 대표가 자신이 직접 심은 나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정 대표는 아버지가 가꾼 숲은 계속해서 가꾸면서 빈 터에는 나무를 꾸준히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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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윤제림, #정은조, #보성, #산림경영, #사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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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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