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미디어에서는 '통쾌한 액션'을 베테랑의 흥행요소로 꼽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재벌', '갑질', '을의 눈물' 등의 단어를 내세우며 이 흥행의 사회적 분석을 내놓으며 호들갑 떨기에 바쁘다. 나 역시 이 영화를 그러한 관점으로 재미있게 관람했기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분석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우리는 다시 극장을 나와 조태오(유아인 분) 같은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아양을 떨어야 한다. 또 우리 자신이 조태오 같은 인물이 되어 누군가에게 갑질을 해대며 살아가기도 한다.

황정민이 유아인을 통쾌하게 두들겨 패주는 마지막 장면들은 기분을 좋게 해준다. 이는 잘 짜인 시나리오가 관객을 제대로 롤러코스터에 태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훌륭한 영화다. 그러나 이를 보고 너도나도 '을의 서러움'을 들먹이며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현상들은 불편하다. 이 영화로 무언가 우리 사회의 큰 변화가 오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모두가 "나는 을이다"

당신은 갑인가, 을인가? <베테랑>을 통쾌하게 본 사람들은 황정민을 응원하며 저마다 자신이 '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2015년 1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0~60세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했다. 자신이 갑인지 을인지 물었다. "항상 갑이다"가 1퍼센트, "나는 을이다"가 85퍼센트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가상의 관객을 상상해본 것이다.

동네서점의 사장 A씨는 대형서점들의 골목상권 침해를 떠올리며 영화에 몰입했다. 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의 직원들은 최저임금도 안 주고, 최소한의 휴식공간도 제공하지 않는다. 청년 B는 영화 속 노동자(정웅인)의 억울한 죽음을 보며 분노했다. 그리고 '지잡충'이 열심히 스펙을 쌓은 자신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려는 현실에도 투덜거린다. 정의감에 사로잡혀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 D는 팝콘과 콜라를 자리에 두고 나왔다. 치우는 건 영화관 직원들 몫이다.

"이들이 단지 나이 때문에 반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이런 사람들도 화장실 앞에서 (훨씬 어려 보이는) 다른 손님과 부딪치면 점잖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운전석에 앉기만 하면 주유원에게 육두문자를 날리는 쌍놈의 새끼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런 행태에 익숙해지면 직업엔 분명히 귀천이 존재하며 신분의 차이라는 것 역시 실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한승태, 인간의 조건: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푸어 잔혹사, 2013)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갑질을 해대지만, 정작 자신만은 을이라며 징징거리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영화 <베테랑>에 대한 언론과 대중들의 호들갑스러운 분석이 수긍은 되지만 불편하다. 나 역시 그 중 한명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우리 일상에서 마주치는 불의들을 외면하지 말자'는 주장은 골방에서 책으로 세상을 배운 지식인의 외침만큼이나 공허하다. 나부터가 당장 직장과 사회의 지위체계 아래에서 서도철처럼 "돈은 없어도 가오있게" 살 자신이 없다.

일단은, 이렇게 답답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다.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갑에게 삿대질 하는 자들이 있다. 무언가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바꿔보려 노력하는 세상의 서도철들에게 응원을, 아니 최소한 냉소는 보내지 않는 것.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고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액션영화 <베테랑>에서 끄집어낼수 있는 진짜 교훈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베테랑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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